[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일교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습니다. 목감기가 떨어질 듯 떨어질 듯하면서도 여전히 저를 귀찮게 합니다. 어제 점심 시간에 몸을 추스리면서 감기를 떼어놓을 요량으로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달렸습니다. 몸은 거뜬해졌습니다만, 이번 감기는 여간 독한 놈이 아닌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운동 후 점심 식사는 치즈 몇 장으로 대신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저는 일주일에 몇 번은 식사를 간단히 때웁니다. 주말 한 끼 정도는 허기만 면하는 정도로 만족합니다. 몇 년 전 어떤 분이 “주말에 한 끼는 거른다”고 한 말을 전해 들은 뒤 ‘언제 나도 따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이제 실천해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건 먼저, 불어나기만 하려는 체중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입니다. 또 다음 끼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주말 집에서 빈둥대며 ‘빈속에’ 이것저것 읽었습니다. ‘가톨릭 다이제스트’라는 매거진이 고 박완서 작가의 옛날 인터뷰를 다시 실었더군요. 반갑고 공감되는 부분과 마주쳤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저는 요새 건강 문제도 있고 해서 대개 저녁은 안 먹으려고 해요. 아침에 일을 많이 하니까 일찍 일어나는데, 그 때 배고픈 느낌이 좋아요. 배가 고프니까 ‘뭘 맛있게 먹어야지’하는 생각도 들고 소박하게 먹어도 맛있고 그래요. 늘 그득하면 그런 맛을 모르잖아요.”

그는 요즘 세태로 이야기를 넓혔습니다. “뭘 맛있게 먹으려면 우선 배가 고파야 되는데 요즘은 배고플 새가 없어요. 부모가 자꾸 먹이니까 아이들이 아쉬운 줄 모르잖아요. ‘결핍의 결핍’이죠.”

그는 “배고픈 맛도 맛봐야 한다”며 “자녀들한테 가난을 못 느끼고 살게 한 데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식사 시간이 지나도 밥 달라는 얘기를 안 합니다. 틈나는 대로 냉장고에서 간식 거리를 꺼내 먹어 배가 빌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초등학생은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라는 구절이 들어간 시를 썼죠.

‘요즘 결핍의 결핍이 문제’라는 그의 인식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는 그러나 가난과 관련해서는 그와 입장이 다릅니다. 저는 그가 받은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물론 떳떳한 심경은 전혀 아닙니다만. 아이들에게 상대적으로 풍족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저는 아이들에게 죄스럽지는 않지만 상당히 미안합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없던 시절에 오히려 많았던 배려’를 그리워합니다. 고기 맛보기 어렵던 시절, 시어머니는 불고기 거리를 건넬 때면 늘 “굽지 말고 볶아 먹자”고 말했다고 들려줍니다. 구우면 맛은 더 좋지만 이웃에 냄새를 풍기니….

고 박완서 작가의 유족이 서울대 인문대에 13억 원을 기증했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 “가난한 문인이 많으니 부의금을 절대 받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내 것 채우기에 열심인 세태 속에서 그는 ‘비움과 나눔’을 보여 주었습니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cobalt@joongang.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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