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청개구리 아들딸에게 들려주는 '선녀씨 이야기'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전래동화 <선녀와 나뭇꾼> 속 선녀는 양 팔에 아이 둘을 낀 채 하늘로 훨훨 올라간다. 하지만, 2013년 선녀는 이 땅을 떠나지 못한다. 왜? 청개구리 아들딸이 넷이나 됐기 때문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머니의 어깨 위에 놓인 인생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제 30회 전국연극제 5관왕 수상작인 연극 <선녀씨 이야기>가 지난 16일 개막했다. 15년을 밖으로 돌다 영정사진 앞에 선 아들 종우의 시선에서 바라본 어머니 선녀씨의 삶과 현대 가족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연극이다.

‘어머니를 주제로 한 연극이 거기서 거기겠지’ 하는 오해는 막이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진다. 사실과 판타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극 전개, 한 명의 엄마를 두 배우가 연기하는 독특한 설정, 아들을 극 전체의 관찰자로 둔 이야기 구성, 인형을 활용한 동화적 설정이 객석에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선녀씨 이야기> 속 어머니의 이름은 ‘선녀’이다. 이삼우 작가 겸 연출은 중의적 의미를 숨겨 놨다. 아들보다 먼저 태어난 딸이란 의미로 ‘선녀(先女)’라 이름 짓기도 했지만, 평생 한 사람의 아내, ‘어머니’로만 살다가 끝내 별이 되지 못한 채 시리디 시린 겨울 속에 살아 온 이 시대 모든 선녀(어머니)들에 바치는 찬가란 의미도 담겨있다. 선녀씨 인생의 봄이 언제였는지 찾아보는 따뜻한 재미도 있다.

작품의 방점은 ‘이야기’에 찍혀있다. 불효자의 모습을 그대로 드라마 안에 가져오기 보다는, 장례식장에서 뒤 늦게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아들 종우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췄다. 극 중 아들은 중반이 넘어가도록 큰 대사 없이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언뜻 보면 ‘아들의 비중이 왜 이렇게 작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세상 모든 청개구리 아들딸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듣는 기회’란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객석과 무대 위 모두에 청개구리 자식들이 앉아있는 것이다.

매번 ‘부모님께 잘해야지’ 마음 속으로 다짐하지만, 마음과는 다른 행동들이 튀어나온다. 그런 자식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가만히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닐까?



극 후반 종우가 ‘엄마가 보고 싶어서 돌아왔다’고 말 하는 장면에서 ‘울컥’ 하던 감정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달라질까’라고 되묻는 엄마의 모습에서 울음을 폭발시키기 보다, 속으로 속으로 삼키게 만든다. 그래서 더 진한 공감이 전해지고 어머니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고 싶게 만든다.

극 중 어머니의 모습은 젊은 '선녀'(이재은)와 노모 '선녀'(고수희) 이렇게 2인 1역으로 표현된다. 무조건 희생하는 나이든 어미의 모습이 아닌 새색시처럼 새초롬한 어머니 모습에서 주름이 겹겹이 쌓인 어머니까지 다양한 어머니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 소주 한잔에 서러움도 사르르 녹을 것 심정을 리얼하게 표현 한 이재은, 첫 아들을 가슴에 묻고 마치 송곳이 가슴을 찌르는 듯한 기분에 매일 매일 곱게 잠 들 수 없었다고 울부짖는 고수희의 모습이 뜨겁게 가슴을 덥혀준다.

청개구리 아들로 분한 배우 임호와 진선규의 색채도 달랐다. 임호는 ‘엄마 가슴에 못 박고 집 나간 아들’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며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한다면, 진선규는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아들 종우의 과거를 돌아보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듯 했다. 무대 양쪽을 가르며 펼쳐지는 청자인 아들의 태도, 화자인 어머니의 모습을 번갈아 볼 수 있는 점도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다.

연극 <선녀씨 이야기>는 9월 15일까지 대학로 아트 센터K에서 만날 수 있다. 배우 한갑수, 이혜미 신지현 김하림 이양지 김진성 지혁 김태훈 안지영이 출연한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주)PS엔터테인먼트, 극단 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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