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나무가 되고 싶었던 극작가 고 윤영선은 생전에 “작품을 한다는 것은 한웅큼의 바늘을 집어삼킨 뒤 노래를 하는 것 같다. 입을 벌린 순간 바늘귀에 끼워진 실을 누군가 잡아당긴다. 내 몸 어디에선가 절망하지 말자는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글을 쓰고 연극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늘 삼킨자의 노래를 들어주는 관객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극단 백수광부의 <죽음의 집2> 역시 바늘 삼킨자의 노랫소리, 아픔과 부끄러움이 들어 있었다. 제목만 봐서는 어두운 공포 영화를 상상하게 하지만, 실제 작품은 무섭기 보단 기묘한 통증을 느끼게 한다.

고 윤영선 작가의 유고작 <죽음의 집2>(재창작 최지언 연출 이성열)가 2013년 극단 백수광부 첫 번째 공연으로 올려졌다.

한 여름 밤 미친 꿈을 꾸고 나면 이런 기분일까? 비가 쏟아지던 늦은 밤, 벙어리 여인의 손에 이끌려 찾아온 의사의 왕진 가방엔 청진기 대신 밧줄이 들어있다. 환자의 집은 더욱 가관이다. 스스로 집 안까지 굴러 들어온 커다란 바위(롤링스톤)가 문 앞을 가로 막고 있지 않나. 의사가 치료해야 할 환자는 쥐로 둔갑한 아들이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병원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마구 달리지만 결국 다시 당도한 곳은 벙어리 여인의 집이다.

왜 이렇게 황당한 일이 계속 일어날까? 황당하면서도 자꾸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윤영선 작가의 극작술과 이성열 연출이 제대로 만났다. 오랜만에 80분 내내 몰입해서 연극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환상적 리얼리즘의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난 <죽음의 집2>는 수상한 냄새와 소리가 나는 연극이다. 어디선가 달달한 다방커피 냄새가 나고, 라면 냄새도 흘러나온다. 속살이 하얀 쌀밥이 김을 모락 모락 내며 냄새가 풍기는가 하면, 여름 밤에 제격인 옥수수도 냄새도 나는 것 같다. 그렇게 냄새에 취하다보니 노릇하게 구워진 쥐고기 냄새도 ‘스멀 스멀’ 올라오는 것 같다. 이젠 ‘찍찍’거리는 쥐 울음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그런 쥐를 잡아먹기 위해 족제비, 아니 돼지, 도룡뇽이 출동하기도 한다.

작품은 시종일관 기묘한 분위기와 수상함을 상기시키며 관객의 호흡을 쥐락펴락 했다. 구지 상류층과 하류층의 대립, 계층간의 간극과 갈등을 그린 사회문제극이라는 부연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연극은 ‘콕콕 지르는 뭔가’를 던져준다. 카프카의 작품 <시골의사>의 한국적 변형 혹은 극단 백수광부 레퍼토리인 <야메의사>의 또 다른 버전 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다만 극 중 사내 역의 대사 중에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장면들이 있는 점이 아쉽다.

이 작품은 윤리적 딜레마 속에 던져진 한 인간의 자기 구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극 속에서 의사는 환자를 고치려고 하기 보단 시골 보건소 계약직을 어서 끝마치고 서울로 올라가고자 한다. 이런 의사에게 환자를 맡길 수 없다. 아니 보여줄 수 없다. 아니 절박한 심정으로 보여주기 싫다. 벙어리 여인이 오빠에게 보여준 ‘희생’과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극은 동물을 잡아먹다 결국 동물로 변해버린 사람 이야기, 그리고 다시 사람이 사람을 물어뜯게 되는 현실을 그로테스크하게 들려준다. 이 모든 이야기가 오래된 액자 속 조상들의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점 역시 흥미롭다.

거대한 바위는 점차 이 집을, 이 사회를 이 세계를 짓누른다. 그리고 의사는 ‘왜 하필 저입니까?’라 말하며 악몽 같은 현실에서 나가고자 한다. 다시 달린다. 그렇게 연극의 막은 내렸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됐을까? 롤링스톤의 복수는 여전히 끝나지 않아 의사가 기거하는 보건소를 향해 돌진하지 않았을까? 극단 백수광부의 공동창작극 <죽음의 집3>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죽음의 집2>는 22일까지 선돌극장에서 공연된다. 배우 김학수, 정은경, 김현영, 정훈, 김원진, 유시호, 민해심 등 극단 백수광부 단원들의 탄탄한 연기 호흡이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코르코르디움, 극단 백수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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