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22일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이단자들>(연출 박혜선)은 ‘친환경주의’의 음모론을 살피고 반기를 든다는 점에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떠오르게 했다.

살짝 언질을 주는 부분도 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주인공 맥 머피 역을 맡은 잭 니콜슨이 말더듬이 빌리를 여자와 교제시켜서 고쳐놓았듯, 연극 속 주인공 다이앤도 거식증에 걸린 딸을 남자와 교제시키고자 한다.

‘이공계 연극’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딱딱하고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실제 연극은 과학적인 비유와 문학적 비유를 절묘하게 오고 가 두뇌와 가슴을 동시에 자극했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기발하고 핫한 희곡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리차드 빈(Richard Bean)이 쓴 연극 <이단자들>은 돈독하던 동료학자에 대한 불신, 스승과 제자의 유대관계, 거식증에 걸린 딸을 보호하려는 엄마, 사회가 만들어 놓은 이념을 지키려는 개인들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삶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하는 작품.

요크과학기술대학 고기후학과 교수인 ‘다이앤’은 논쟁을 벌이는 것이야말로 과학 그 자체라고 주장하며 실험 결과를 그대로 믿기보다는 복제실험이 수반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인물. 수년간 몰디브 해수면 리서치를 통해, ‘해수면 상승의 기우는 현재 과학적으로 예견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논문을 준비 중이다. 그녀의 논문 발표를 저지하려는 세력과 그 안에서 불안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을 등장시켜 인간 본질의 행복에 대한 물음을 제시한다.

극단 사계탐사의 창단작인 <이단자들>은 세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먼저 연극이라는 상황 안에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사실들을 채워, 저탄소 에코산업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두 번째로 지구멸망, 빙하스캔들에 대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몇 편으로 지구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 친환경주의 현대인들에게 ‘지구는 구해지길 바라지 않아’라고 시원하게 한 방 날리고 있는 점. 마지막으로 과거를 탓하거나 불확실한 대중심리, 현대판 전체주의인 친환경주의에 휩쓸리기 보단, 이 지구에 태어난 모든 남자와 여자는 행복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와 개인을 탐사하자.’란 의미로 이름 붙여진 ‘사개탐사’는 현재의 사회와 개인을 샅샅이 더듬어 조사하고, 더 나아가 미래의 인간 삶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려 노력하는 극단이다. 150분간의 연극 <이단자들>의 막이 내린 뒤 극단의 취지와도 잘 어울리는 작품임이 느껴졌다.

즉각적으로 웃음이 터지기 보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사건을 통해 서늘한 웃음을 유발하는 블랙 코미디 연극이다. TV뉴스 속에서 흘러가는 얼음을 건너다녀 불쌍하다고 여기기 쉬운 북극곰의 입을 통해 듣는 항변, 과학적 불확실성에 대한 사고 없이 무조건 흑백논리를 들이밀며 결과론적인 해석을 원하는 정치가들, 기이한 행복의 물결에 섞이지 못한 채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부유하는 친환경주의자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다.

대중의 권위와 상식에 반하는 과학자 역을 안정감 있게 소화한 서이숙(다이앤 카셀)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배우 장선우(벤 쇼터), 신사랑(피비), 류태호(케빈 말로니), 신문성(제프), 이태린(캐서린 틱켈)모두 제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정다훈 기자, 문화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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