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춤의 공공적 역할을 되새기며 커뮤니티와 접속하고자 한다. 현대무용이 대중과 친밀해 지기 위해서는 무용가들의 안무 의도나 상징성을 친절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대중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자신의 감정을 단 한번이라도 본인이 실제로 움직임으로 표현해 보면, 현대무용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

최근 국립예술단체 공연연습장 현대무용스튜디오에서 취임 기자간담회를 연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은 “계층과 지역, 세대를 아울러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열린 현대무용의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고 전했다.

안 감독은 정형화된 블랙박스 극장 춤의 한계 극복, 춤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커뮤니티 댄스(Community Dance)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연제작을 중심으로 구성된 프로그래밍에서 관객들을 보다 적극적인 경험자, 해석자, 창조자, 토론자로 참여시킬 수 있는 열린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이다. 워크숍, 지역에 직접 찾아가는 커뮤니티 프로그램, 주제별 강연 등의 부대 프로그램을 계획 중 이다.” 추가적으로 “발레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처럼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현대무용 작품을 12월 경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프로젝트마다 3~4개월간 단기로 유지됐던 무용수의 계약 기간이 11개월로 늘어날 예정이다. 안 감독은 “프로젝트 단원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11개월 단위로 늘리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갖고 작품이 진행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 오디션을 거쳐 무용수들을 뽑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날 취임간담회는 오는 9월 5일부터 8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안애순 예술감독 첫 번째 프로젝트 <11분>쇼케이스와 겸해서 열렸다.

<연금술사>의 저자로 잘 알려진 파울로 코엘료의 동명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현대무용 <11분>은 나이 30세를 전후한 젊고 촉망받는 춤꾼 김보람, 이준욱, 지경민, 허효선, 최수진의 개성 넘치는 무대로 꾸려진다. 5인의 무용가 외에 시인이자 극작가인 김경주가 드라마트루그로 참여하고 김희재(무대 디자인), 류백희(조명 디자인)이 함께 한다. 음악작곡 및 연주는 조윤성(피아노), 황호규(베이스), 이상민(드럼) 세 명의 뮤지션으로 구성된 K-Jazz Trio가 맡는다. K-Jazz Trio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콘서트를 열고 재즈계의 떠오르는 유망주라는 평을 듣고 있는 그룹이다.

안 감독은 “다섯 명의 무용수 모두 각자의 컬러가 있는 독특한 30대 안무가이다. 이들이 공동 연출가와 무용수로서 하나의 무대에서 만났을 때 어떤 완성도 높은 공연을 만들어 낼지 기대해 달라”고 작품에 대해 기대감을 표했다.

‘걷지 말고 춤추듯 살아라’란 부제가 붙어있는 소설 <11분>은 브라질의 한 시골도시에서 자란 마리아라는 젊은 창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성의 의미’를 담아낸 작품. 반면 무용 <11분>은 ‘땅콩’ ‘물 위에 떠있는 소녀’ ‘여기’ ‘나쁜 여자’ ‘연필 빌리는 아이’ 등 5개의 개별 작품으로 구성된다.



작품 속 주인공 ‘마리아’를 바라보는 다섯 개의 시선이 흥미롭다. 허효선 안무가는 “귀찮을 수 있는 땅콩 껍질 까는 행위를 예로 들어 비루한 삶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이준욱 안무가는 ”‘마리아’라는 이름이 주는 양면성, 영혼 없는 육체와 철저하게 외로운 영혼을 물위에 떠 있는 소녀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김보람 안무가는 “‘’완전한 혼자‘로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는 육체의 주인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여기’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인간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고 밝혔다. 최수진 안무가의 ‘나쁜여자’는 ‘마리아가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는 화가 '랄프'의 곁을 떠나려고 하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 최 안무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고자 하는 진정한 자유를 그린 작품“이라고 전했다.

네 명의 안무가가 ‘마리아’라는 인물의 내면에 집중했다면, 지경민 안무가는 소녀의 마음 속에 있는 첫사랑 소년에 더 집중했다. 실제 소설 속에서도 ‘연필 빌리는 아이’가 등장한다. 단, 하고 싶은 것을 늘 주저했던 소녀의 마음 보다는 소설을 더 확장시켜 소심한 소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점이 이목을 집중시킨다. 지경민 안무가는 “소심한 이 소년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자면, 그도 실은 그녀의 백마 탄 왕자가 되어 여생을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에 연필을 빌려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라는 해석을 내 놓았다. 이어 “소녀가 화 내는 모습에 풀이 잔뜩 죽어 겁먹은 소년은 더 이상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게 아니라 말을 걸 수 없는 소년이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국립현대무용단은 “<11분> 정식공연에 앞서 지난 7일 연극, 음악, 평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을 초청해 작품에 대한 평과 자문을 받았다.”며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개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여 보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안애순 예술감독의 의지가 반영되었음”을 전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국립현대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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