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이 선사한 웃음의 힘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세상이 잘 돌아 가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볼 만한 연극이 없는 것도 같고 그렇다고 못 볼 것도 없고...이럴 땐 한판 쉬어가야 합니다.”

8월 26일 막이 오른 연희단거리패의 <탈선 춘향전>(이주홍 작, 이윤택 재구성과 연출)의 주인공 방자 역 배우 김미숙이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라 웃을 일이 없는 서민들에게‘ 한 판 쉬어 갈 것’을 당부했다.

1949년에 세상에 나온 한국형 토종코미디 <탈선춘향전>은 해방 한국연극사상 최초의 재담극 양식으로 수 백 차례 공연되었고, 시나리오로 개작되어 영화화되기도 한 작품. 2006년 극작가 이주홍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으로 초연된 이후로 서울, 부산, 밀양에서 최고 인기 레퍼토리로 공연되었다.

가진 자와 남성 중심 한국사회를 한바탕 뒤집어보는 연극이다. 가장 이상적인 한국의 여성상으로 그려져 왔던 춘향이가 핫 팬츠 트레이닝 복과 어깨선이 훤히 드러나는 나시 원피스를 입고 욕 잘하는 처녀로 변신한다. 공부는 안하고 여색을 쫓아다니는 총각 이몽룡은 개구멍을 드나드는 양반으로 등장하다 결국 혼인빙자간음으로 고소를 당하기까지 한다.

원작 그대로 이몽룡이 수청을 요구하자 욕쟁이 처녀 춘향이는 기도 차지 않다며 빈정거린 뒤 욕설을 퍼붓고 몽룡을 구타한다. 변학도의 수청 요구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객석에선 입에 담을 수 없는 엄청난 욕에 놀라움도 잠시 ‘키득 키득’웃음 소리가 넘쳐났다. 춘향이가 욕을 하는 이유에 공감하자 절로 웃음이 나온 것이다.

전체 4막 중 1, 2막은 방자가 끌고 가 '방자전'으로 불릴 정도다. 아니 ‘환상의 콤비 방자와 향단전’이 더 어울려 보인다. 방자가 깨돌이 아비가 되는 원작 그 뒷 이야기도 맛 볼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4막의 싱글맘들의 이유 있는 촛불집회, 해피엔딩에 대한 고전 뒤집기까지 촘촘한 풍자 포인트가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 즐기게 했다.

소학지희(小謔之戱)의 현대적 재현, 우둔한 상전과 영악한 하인의 전복된 관계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인물대비와 민중극적 구성이 남녀노소 모든 관객들의 숨통을 틔워줬다.



방자 역 배우 김미숙과 향단이 역 배우 배보람이 춘향이로 등장하는 그날까지(?) 계속 사랑받을 만한 작품이었다. 임현준 서영은 김연지 오동석 황설하 김호윤 등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의 신명나는 놀이판이 커튼콜까지 계속되니 끝까지 지켜볼 것을 권한다.

한국공연예술센터 주최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은 누구나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연극’의 참맛을 선보이기 위해 기획된 축제이다. 지난 8월 15일 개막한 제 3회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은 '고전 그리고 재발견'을 주제로 '안진사가 죽었다' '삼도봉 미스터리' '14인 체홉' '탈선 춘향전'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2' 등 총 5편을 무대에 올리는 중이다.

극단 이안 오경택 연출의 <14人(in) 체홉>은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홉의 단편 희곡 4편을 묶은 옴니버스 연극. 지난 해 6월 프로젝트박스 시야가 ‘SEEYA PLAY’라는 이름의 기획공연시리즈(부제 : 14인의 배우, 체홉을 만나다)로 첫 선을 보인 바 있다.

초연과 달라진 점이라면 단편소설 <불행>이 빠지게 된 점. 결과적으로 배우 박정자, 최용민, 박상종, 김태훈, 유준원, 서정연, 정수영, 전미도, 김태근, 구도균, 이창훈, 이은 이렇게 12인 체홉이 됐지만 작품 취지를 살려 원래 제목을 그대로 사용했다.



6일 공연 대부분 만석을 기록하며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모두가 떠난 텅 빈 무대에 홀로 남겨진 노배우의 이야기를 다룬 <백조의 노래>를 책임 진 배우는 박정자, 박상종. 삶과 연극, 일상과 비 일상의 경계를 허물며 체홉이 그려내고 있는 삶의 생생한 모습을 배우와 관객이 함께 느낀 탓일까. 커튼콜 때 체홉(사진)과 함께 등장한 두 배우에게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창작 공간 스튜디오블루의 <안진사가 죽었다>(김시번 작·연출), 극단 청국장의 <삼도봉 미스터리>(김신후 작, 김한길 연출) 두 작품 모두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를 캐는 수사물이다.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에서 시작된 연극은 이내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미궁에 빠진 조선시대 실제 살인사건을 수사해가는 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사법체계를 통렬하게 풍자하고 비판하는 <안진사가 죽었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각 마을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삼도봉(三道峰)을 배경으로 미국산 양곡 창고에서 발견된 머리만 없는 의문의 토막 시체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시사코미디 <삼도봉 미스터리>는 현재 대한민국의 웃음과 아픔을 함께 느끼게 하는 작품.



특히 2009년 초연 된 <삼도봉 미스터리>(고선웅 연출 초연 시 제목은 삼도봉 미(美) 스토리)의 변화가 눈에 띈다. 초연이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미국산 쌀 수입을 반대하는 FTA 이후 농촌 현실을 꼬집는데 좀 더 초점을 맞췄다. 2013년 공연은 큰 틀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시대 상황에 맞춰 농촌이 당면한 문제와 농민들의 절절한 심정에 더 무게감을 뒀다. 아크릴 판을 이용한 오싹한 반전보다는 음악극의 훈훈함이 더 강조된 점도 눈에 띈다. ‘대가리는 없이 몸통만 고통 받아왔다’는 위정자에 대한 고도의 풍자 감각은 여전했다. 배일천 역 배우 이동용의 코믹 연기가 일품이다.

<대학로 코미디 페스티벌>의 마지막 작품은 8월 28일 개막하는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시즌 2>(김정숙 작, 권호성 연출)이다.

7년간 33만의 관객을 동원하며 각종 수상과 더불어 호평을 받은 국민연극인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시즌2가 첫 선을 보이는 자리다. 선량한 소시민의 대명사인인 세탁소 주인 강태국(김정호) 마저 점점 인간미를 잃어가는 모습을 희화적으로 그려 보임으로서 관객들로 하여금 동병상련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품이다. 극작가, 배우, 연출을 종횡무진 누비는 선욱현이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로 등장해 큰 웃음을 선사한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한국공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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