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 빠진 한국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개구리’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노예들과 함께 부르는 '룩 다운(Look down)', <영웅>의 단지 동맹 등 유명 장면이 연극 속에서 패러디 되자 실실 웃음이 흘렀다. ‘공권력’이란 벽에 부딪쳐 암행어사 출두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몽룡이 등장하는 판소리 ‘춘향가’ 앞에서 씁쓸한 웃음이 터졌다. 촌철살인의 대사를 날리며 설전을 벌이던 배우들이 곧 음악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뮤지컬, 음악극, 판소리, 패러디, 만담 등 맛있는 개구리 반찬이 그득한 연극 <개구리>가 찾아왔다.

연극의 첫 인상은 수 십 마리 개구리의 울음소리처럼 시끌벅적했다. 지루할 틈 없이 흥미 있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재미있는 연극을 찾는 사람들에게 적격일 것 같았다. 그런데 <청춘예찬>,<경숙이, 경숙 아버지>,<너무 놀라지 마라>를 직접 쓰고 연출한 박근형이 누구인가? 인간에 대한 ‘유머’와 지금 이 곳의 우리 삶을 건조하지만 범상치 않게 불러와 불편함을 함께 가져오는 작가이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들이 정치인들의 얼굴로 보이는 순간 이 개구리 반찬이 쉽게 접하기 힘든 오만가지 맛이 담긴 식단이었음을 깨닫자 다시 한 번 불편한 웃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박근형 연출은 “연극이란 기본적으로 사람들한테 쉼을 주는 거다. 재미가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시대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쉼이란 의미가 없다. 2013년의 어수선한 사람들에게 희랍극을 빌어 연극의 역할, 사회적 기능, 특히 동시대에 관심을 갖게 하고 싶다.”고 연출의도를 전했다.

국립극단 2013 가을마당 <그리스 희극 3부작>은 그리스 희극의 대표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개구리>. <구름>. <새>이다. 첫 번째 <개구리>는 수렁에 빠진 대한민국을 유쾌하게 고발하는 정치풍자극이다. 신문과 방송 뉴스에서 만난 웃지 못할 코미디가 웃음의 리얼리티란 새 옷을 입고 연극 속에서 살아났다.



원작 <개구리>는 2500년 전 패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조국 그리스를 위해 쓰여 진 작품이다. 국력이 바닥난 아테네의 재건을 위해 디오니소스가 3대 비극시인이었던 아이스퀼로스와 에우리피데스 중 한 사람을 되돌려오려고 저승으로 길을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연출가 박근형은 <개구리>를 2013년 대한민국으로 시점을 옮겨왔다. 원작의 뼈대는 그대로 살리는 대신, 과감한 생략과 인물 창조를 통해 웃음과 사회풍자라는 두 개의 고리를 엮었다. 원작이 아테네에 필요한 위대가 작가 찾기 여정이라면, 2013<개구리>는 국가를 구원할 수 있는 ‘그 분’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해 스님, 동자승, 광대들의 삼보일배가 시작된 것.

연극의 신인 디오니소스는 ‘신부’(박윤희)로 디오니소스의 제자 크산티아스는 신부의 조카 ‘동자승’(심재현)으로 뒤바뀐다. 삼촌과 조카의 저승 여행에는 아코디언과 하모니카, 드럼을 연주하는 광대들(임진웅 심원석)이 동참한다.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에 놀러 가더라”란 신동엽 시인이 쓴 ‘산문시1’을 읊조리던 신부는 ‘그 분’이 돌아갈 이승이 식육이 세상이 아닌 희망과 구원의 세상이 되길 바란다. 원작과는 다른 결말도 끝까지 지켜보길.



‘난간도 없이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나아가는 배’, ‘청문회 보다 화병 난 사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게 가장 큰 죄’, ‘시대가 변해도 사랑이 변하지 않는 변신의 천재인 카멜레온 사또’의 등장을 보며 누군가는 이 연극이 상당히 부조리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혼 없는 저승세계와 다를 바 없는 이승 세계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을 듯 하다. 결국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울부짖고 있는 송장 개구리는 우리의 다른 얼굴이었던 것이다.

연극 <개구리>는 15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된다. 배우 박윤희, 김동곤, 윤부진, 유승일, 이종윤 임진웅, 권혁, 박주용, 태항호, 우정원, 심원석, 김동원, 허유미, 심재현, 강기둥, 한기장 16명의 배우들이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도깨비와 개구리를 넘나들며 관객들을 동시대 희극의 세계로 안내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국립극단,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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