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 정다훈의 문화스코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뮤지컬이란 뭘까? 현실을 잊게 만드는 판타지한 무대와 이야기, 흥겨운 노래와 춤, 후련한 눈물 모두를 맛 볼 수 있는 꿈의 장르 아닐까. 그러나 뮤지컬을 보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신선함은 반감되고 헛헛함이 늘어가기 마련이다. <구텐버그>는 바로 이런 관객들에게 권할 만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무대에 오른 뮤지컬 <구텐버그>는 관객들의 가슴을 다시 한 번 벅차오르게 했다. 인쇄기를 발명한 구텐베르크로 인해 이성(理性)에 눈 떴듯, 뮤지컬 <구텐버그>로 인해 관객들은 꿈과 웃음을 되찾게 됐다. 특히 21세기 돈키호테를 한명도 아닌 두 명이나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가 멀고 험한 꿈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한 사내의 이야기라면, <구텐버그>는 뮤지컬이란 꿈을 향해 ‘하하 호호’ 웃으면서 달려가는 두 사내의 이야기다. 두 작품 모두 꿈의 뮤지컬이란 건 맞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구텐버그>의 더그와 버그 안에 이상주의자 돈키호테, 그의 환상 속 여인 알돈자, 현실주의자 산초, 비관론자 까라스코 뿐 아니라 도지사와 친절하고 동정심 많은 여관주인이 다 들어있다는 사실. 이제 우리는 라만차의 기사가 아닌 ‘구텐버그의 후예들‘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구텐버그>는 두 신인 뮤지컬 작곡가와 극작가인 버드와 더그의 백커스 오디션(Backer’s Audition, 투자 계약을 따내기 위해 잠재적인 투자자 혹은 제작자들 앞에 서는 것)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청년이 들고 온 극중 극 <구텐버그>는 ‘구텐버그’라는 포도즙을 짜던 평범한 사람이 활자 인쇄기를 만들어 내기까지의 과정을 코믹하게 풀어낸 스토리. 그 안엔 구텐버그를 짝사랑하는 헬베티카와 그녀를 이용해 활자기를 없애려는 사악한 수도승, 학대 받으면서도 변함없이 그를 따르는 젊은 수도승이 있다.



극장에 들어서자 마자 만날 수 있는 수십 개의 모자 속엔 두 젊은이의 꿈이 방울방울 달려있을 것만 같다. <구텐버그> 속 ’모자‘는 뮤지컬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앙상블‘이자 친절한 가이드이기 때문이다. 20개가 넘는 이 모자들은 코러스 라인도 ’모자라지 않게‘ 만들어 내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한다. 수줍은 듯 과감한 피아노 연주자 ’찰스‘ 또한 이 작품의 기둥을 단단히 받쳐주고 있다.

2인극 <구텐버그>의 매력은 재미와 감동의 환상적 앙상블에 있다. 단순한 말장난으로 웃기려는 코미디극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진정한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동을 이끌어 내고 있다. 모자를 벗고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들을 수 있는 두 청년의 리얼 이야기에도 귀 기울일 것. 또한 <스위니 토드>, <위키드>, <지킬 앤 하이드>, <레 미제라블>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이 1막에서는 잔뜩 힘을 주고, 2막에서는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었음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패러디 하는 장면 역시 압권이다.

<환상동화> 연출가 김동연의 따뜻한 손길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첫 오프닝과 클로징 장면이다. 특히 정말 꿈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을 선사하며, 꿈의 날개를 달아주는 마지막 장면은 왜 김동연 연출과 <구텐버그>의 조화가 환상적 궁합인지 알게 했다.

버드 역 송용진·장현덕, 더그 역 정상훈·정원영의 연기 변신이 놀랍다.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타이밍을 본능적으로 아는 듯 했다. 웃음의 엑기스를 압착해서 뽑아내는 달인들로 인해 객석은 웃음바다다. 1막 마지막을 장식하며 ‘내일이면 인류 역사의 운명이 바뀔 것’을 노래하는 'Tomorrow is Tonight'이란 넘버의 여운도 진하다. 뮤지컬의 역사를 새로 쓴 <구텐버그>는 11월10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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