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떼아뜨르 노리의 <드라마 전시 시즌3-노크하지 않는 집> 포스터는 많은 관객들의 눈길 그리고 발길을 사로잡았다. 20대로 보이는 여섯 명의 여인들이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채 뒷모습을 공개한 사진이다. 좀 더 자세히 보자. 여섯 명 중 세 명은 브래지어의 후크가 풀려있다. 어찌 보면 상당히 도발적이다. 당시 일행이었던 남자 분은 포스터를 찬찬히 보더니, “왜 아무도 노크를 하지 않았을까?”란 장난스런 멘트를 던지기도 했다. 이렇게 <노크하지 않는 집>은 호기심으로 먼저 다가온 공연이었다.

‘드라마 전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그녀의 방(Her Room)’ 세 번째 시리즈<노크하지 않는 집>은 한마디로 훔쳐보는 공연이다. 짜릿하다. 배우의 속옷은 물론 맨 살을 볼 수 있는 연극이다. 궁금하다. 여섯 명의 여인들 뿐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전시되는 드라마 전시이다. 확실히 침이 고인다. 분명 노크하고 싶어지는 멀티스타일 공연이다.

실제로 작품은 그녀들의 방을 관람하는 전시 섹션과 그녀들의 삶을 훔쳐보기 공연, 이렇게 두 가지 섹션으로 꾸려졌다.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미디어아트 이렇게 여섯 가지 장르 모두를 체험할 수 있다.

이번 작품은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 포함된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을 이야기 전개의 모티브로 삼고 있다. 한 건물, 한 층의 단칸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인은 다섯 명. 여기에 비정규직 학원선생(이승희)을 하고 있는 ‘침녀’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후배녀’가 등장해 실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여인은 총 여섯 명이 된다.



김애란의 소설 속에서 만났던 20대 초반의 쓸쓸한 주인공들이 소설을 뛰쳐나왔다. 고시원과 편의점 그리고 마트를 전전하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던 그녀들이다. 얄팍한 벽 하나를 두고 동거하고 있지만, 그녀들은 서로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 완벽한 타자이자, 비슷한 현실 속에 갇힌 무언의 동지들이다.

직접 만나 본 <노크하지 않는 집>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 김애란 작가가 어딘가에 숨어서 여섯 명의 청춘들에게 말 걸기를 시도하는 작품이었다. 특히 기타선율(박세환)이 처연한 영화 <그녀에게>의 주요 테마가 흘러나오고 윤푸름의 안무에 맞춰 웅크렸던 배우들이 마침내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때의 잔향이 인상적이다. 연출가의 목소리가 읽혀지는 지점이기도 했다.

<노크하지 않는 집>이 더욱 마음에 들었던 점은 김애란 작가의 <침이 고인다>의 아쌀한 추억을 그대로 환기시켜준 점이다. 인삼 껌을 씹으며 오지 않은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는 어른이 된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되면 침이 고인다. 소설 속의 상상 장면이 배우 윤소영의 체온과 민병훈 감독의 영상으로 더욱 매력 있게 탄생했다. 마트녀의 손에 들린 가위로 무참하게 잘린 화초, 공간만 바뀐 채 계속 되는 청춘들의 일상이 씁쓸하지만 공감의 웃음을 흘리게 했다. 지난 시즌에서 만날 수 있었던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랗고 불안한 노란 목도리’는 불면증녀(박인영)와 함께 다시 관객을 만났다.



이항나 연출은 “'드라마 전시'라는 형식적 실험들을 이야기 안에 숨기고, 여섯 여자의 사소한 일상과 살아 숨 쉬는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싶었다”며 “그녀들의 방을 들여다보고 훔쳐보고 하는 행위를 통해, 주변을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기를 원한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무대 디자이너 이진석의 손을 거친 <노크하지 않는 집> 무대는 꼭 노크하고 들어가서 냉장고도 열어보고, 편하게 뒹굴면서 TV도 보고 싶게 만들었다. 실제와 똑같은 샤워실과 화장실도 직접 이용해보고 싶을 정도로 무대가 흥미롭다. 여섯 청춘들의 사소하면서도 고달픈 일상에서 "내"가 보여 자꾸 훔쳐보게 된다. 그녀들의 분주한 외로움에 익숙해질 때 쯤, 불안한 인생을 깨우는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린다. 얄팍한 벽 하나가 없어 진 걸까?

한국공연예술센터 ‘새개념공연예술시리즈 선정작’이자,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활성화 다원예술부문 선정작’ <드라마 전시 시즌3-노크하지 않는 집>은 오는 2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배우 이승희, 최솔희, 김원정, 윤소영, 안하나, 강윤석, 박인영 등이 출연한다.

‘세상 사람들이 가끔 아무도 모르게 도-도- 하고 우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 때 <노크하지 않는 집>이 떠오를 것 같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떼아뜨르 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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