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써니’의 흥행 성공이 예상되는 이유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새영화가이드] 보니 엠의 노래 제목을 딴 영화 <써니>를 보고 있으면 이 작품을 만든 강형철 감독이 꽤나 영리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전작인 데뷔작 <과속 스캔들>에서 그는 그랬다. 매우 엉뚱하고 특수한 얘기를 오히려 재미있고 일반적인 감성으로 녹여낼 줄 알았다. 그건 분명 연출자로서 재능이자 재주다. <과속 스캔들>은 한 남자가 고등학생 때 낳은 딸이 이번엔 중학생 때 아이를 낳아서 아빠를 찾아 온다는, 3대에 걸친 희한한 코미디다. 꼭 유교적 통념을 들먹이지 않아도 있을 수 없거나 있을 법하지 않은 설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과속 스캔들>은 현대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의미를 꽤나 즐겁고 경쾌하게, 한편으론 가슴 찡하게 풀어낸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800만에 이르는 대규모 관객을 모았던 건 그 때문이다.

신작 <써니>는 그에 비해 이야기의 설정은 훨씬 단순해졌다. 고등학교 때 ‘써니’라는 이름의, 이른바 7공주 서클의 멤버들 이야기다. 시점은 현재다. 그러니까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지금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때의 모습들은 플래쉬백(과거 회상장면)으로 처리된다. 그렇다고 이 플래쉬백이 진부한 모양새를 띠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강형철의 카메라는 그보다 훨씬 속도감있게 현재와 과거를 빈번하게 오간다. 카메라가 한번 패닝(panning)하거나 360도 회전하는 순간 주인공들은 40대에서 10대 후반으로 혹은 그 반대가 된다. 마치 우주평행이론처럼 과거의 다분히 불량기 넘쳤던 청소년 7명과 이제 중년으로 변해 버린 여인 7명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를 동일한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 그래서 마치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란 알맹이만큼은, 곧 내용적으로는,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특징이자 미덕이다.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만들어지는 때는 바로 10대 후반이다.

그런데 이런 설정들이 한편으로는 꽤나 상업적인 코드로 읽혀진다. 관객 연령대의 스펙트럼이 대폭 늘어나기 때문이다. 영화 <써니>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훌쩍 넘어 40대 심지어 50대까지 관객층이 확장될 것이다. 이 영화의 흥행규모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1990년대 후반에 나왔던 곽경택 감독의 <친구>의 설정을 여러 면에서 역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친구>는 극단적인 남성성을 전면에 내세워 1990년대 후반의 남성관객들을 빨아 들였다. <써니>는 전적으로 여성들을 내세운다. 그런 면에서 <써니>는 <친구>와 매우 다르다. 여기저기 같은 구석이 있는 척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면모를 보인다. 무엇보다 지난 20여년간 우리사회와 시대가 남성 중심에서 확실히 그 축을 여성 쪽으로 많이 가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써니>는 이제 명실공히 알파 걸 시대가 됐음을 우회적으로 암시하는 영화다.

<친구>처럼 청소년기를 거칠게 보내는 인물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서적으로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라는 것도 차이다. 종종 면도날을 입에 무는 소녀가 나온다든가 여자 애들답지 않은 주먹다짐과 각목질, 저급한 욕설이 난무하긴 하지만 그렇게 목불인견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귀여워 보인다. 그게 사실 이 여자아이들의 본질과 본성이 아니라는 듯, 그럴 때마다 영화는 보니 엠의 ‘써니’를 틀어 준다. 감미롭지만 그래서 손발이 오그라는 듯한 느낌이 드는 리처드 샌더슨의 ‘리얼리티’, 신디 로퍼의 ‘타임 애프터 타임’ 등등을 흘린다. 이건 그냥 옛날 얘기라는 식이다.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야기의 시작은 잘 나가는 남편 덕에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던 주부 임나미(유호정)가 우연히 암으로 신한부 삶을 살아가는 옛 친구이자 서클 ‘써니’의 리더였던 하춘화(진희경)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나미는 친구를 위해 예전의 멤버들을 한명한명 찾아 주기로 하고 뚱보 장미(고수희)와 욕쟁이 진희(홍진희), 금옥(이연경)과 복희(김선경)을 차례로 찾아내기에 이른다. 이들 중에서 여고생 잡지표지로 나올 만큼 예뻤던 수지만이 행방이 묘연하다. 어떤 친구는 보란 듯이 잘살고 있지만 어떤 친구는 그렇지 못하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술집 작부로 전락해 있기도 하다. 나미가 찾아 낸 친구들이 춘화를 순회 문병을 오면서 이들 7명의 이야기는 한가지씩 차례로 꽃을 피운다.

청춘은 혼란이다. 혼돈의 약을 먹고 살아간다. 영화 속 7명의 여자아이들에게도 그건 마찬가지다. ‘써니’의 멤버들은 종종 같은 학교의 다른 그룹 혹은 다른 학교의 ‘폭력서클’과 맞짱을 뜬다. 그런데 마침 그 대결의 장이 극렬한 시위현장 한복판이다. 강형철은 아이들의 폭력을 시대의 폭력에 겹쳐 놓음으로써 두 가지가 그렇게 떨어져 있는 얘기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80년대의 풍경같지만 그건 지금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강조한다. 특이하고 재밌는 것은 아이들의 싸움이나 혹은 대학생과 전경의 싸움이나 당시 실제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나중에는 여자아이들과 전경, 학생들이 뒤엉키게 되는데 그 모든 게 느린 화면의 슬랙스틱이어서 마치 판타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실은 그렇게나 공포스럽고 힘들었던 기억이지만 25년쯤 지나면 그것도 추억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써니>는 영화가 이야기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외에도 그 보족의 장치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정교하게 준비돼야 하는지, 그러면 그럴수록 영화의 모양새가 얼마나 훌륭해지는지를 보여준다. 일단 캐스팅 작업에서 <써니>는 작금의 영화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공을 들이고 그 효과를 봤다. 유호정,진희경,홍진희,이연경,고수희,김선경 그리고 단 한컷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특별출연의 윤정(수지의 성인 캐릭터)까지 <써니>는 캐스팅이 승리인 영화다. 이들의 청소년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눈과 마음이 간다. 특히 유호정의 청소년 캐릭터 역의 심은경은 이 영화로 두고두고 칭찬을 받을 만하다. 음악의 역할도 여느 영화에 비해 매우 컸던 작품이다. 그만큼 음악 선곡과 전체 구성이 깊은 인상을 준다. 올드팝송이 훌륭하게 재해석돼 사용됐다.

<써니>는 무엇보다 재미 때문에 사람들을 즐겁게 할 영화다. 전체 구성을 상황 코미디, 에피소드 드라마로 엮으면서 살짝살짝 감동의 얘기들을 양념처럼 넣어 놓았다. 웃다가 울다가,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 할 것이다. 엄마와 딸, 혹은 가족들이 모처럼 즐길 만한 영화가 나온 셈이기도 하다. 그것도 촌스럽지 않게. 진부하거나 훈육조가 아니면서. 영화속에서 10대의 나미는 미래의 자기에게 영상편지를 남긴다. 우연히 그걸 40대의 나미는 마치 자기만의 시네마천국을 바라보듯 눈물을 흘리며 바라본다. 과거로부터 날아 온 편지. 그 회한의 내용들. 하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이야기들. 영화 <써니>가 유쾌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을 살며시 적시는 영화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사진=영화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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