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사람을 꿈꾸는 <구텐버그> 정상훈 인터뷰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돌직구 인터뷰] “천재보다는 순수한 사람이 연기를 잘 해요. 천재는 빨리 해 놓고 쉬어요. 반면 순수한 사람은 쉬지 않고 매 배역마다 충실하게 다가가요. 또 작품이 끝나면 그릇을 깨끗이 비워요. 퐁퐁으로 깨끗이 설거지 하는 것도 잊지 않죠. 깨끗이 비워 또 다른 것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게 좋은 연기이고, 좋은 배우인 것 같아요.”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무대에서 공연 중 인 뮤지컬 <구텐버그!>(연출 김동연)는 ‘버드’와 ‘더그’라는 두 신인 뮤지컬 작곡가와 극작가의 브로드웨이 진출기를 담고 있는 작품. ‘구텐버그’가 포도즙을 짜다 인쇄기를 발명했다는 황당한 설정에 그가 만든 인쇄기를 없애려는 사악한 수도승과 구텐버그를 짝사랑하는 헬베티카의 삼각관계가 얽혔다. 두 배우는 “뮤지컬 구텐버그”의 이야기와, 뮤지컬 작가로서의 자신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 애잔함과 열정 그리고 꿈을 일깨우는 <구텐버그>

-<구텐버그> 무대에 16회 선 현재, 소감이 어떤가
“대본이 똑똑하고 음악이 좋아요. 배우로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열차처럼 정확히 정거장에 내릴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뮤지컬 마니아들에겐 작품에 대한 정보가 이미 많이 알려져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더더욱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얼마만큼 제대로 보여주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구텐버그>는 관객들에게 꿈과 웃음을 되찾게 하는 것 같다.
“‘구텐버그’엔 꿈을 꾸는 사람들이 흘리는 웃음, 그리고 눈물이 있어요. ‘구텐버그’ 속 두 젊은이들을 보고 있으면 짠해요. 꿈 그게 뭐라고... 스타벅스 아르바이트를 하고, 양로원 노인들의 속옷을 빨면서까지 브로드웨이 무대에 자신들의 작품을 올리는 꿈을 이루려고 할까요. 이들을 보며 순수한 꿈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요. ‘서른’이라는 과도기를 거친 분들은 더더욱 공감 될 겁니다. 공연 중에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도 많아요.”

-작품의 기본적인 메시지 외에 배우의 땀이 더더욱 특별한 공연이지 않나
“‘버드’와 ‘더그’라는 인물 이전에 배우 송용진 장현덕, 정상훈 정원영이 있어요. 또 그 전에 젊은이들의 땀이 있어요. 저희 작품은 소품을 따로 준비해주는 스태프가 없어요. 중간에 물 마실 시간도 거의 없을 정도로 저희들이 직접 다 하죠. 땀에 흠뻑 젖어서 얼굴은 벌게지고 메이크업은 다 뭉개져요. 마이크는 땀을 먹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어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애잔함과 열정이 느껴져요. 거기서 <구텐버그>의 매력이 나옵니다.”

-‘더그’와 마찬가지로 정상훈의 꿈도 진행 중인가
“배우가 되고 싶었던 꿈은 이뤄졌어요. 이젠 좀 더 좋은 영향력 있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게 꿈이에요.”

-‘좋은 배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배우는 연금도 없는데...80세까지 아프지 않고, 딴일 하지 않아도 되고, 꾸준하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인 기본적인 바람입니다. 또 <구텐버그>에서 장난스럽게 ‘권력’이란 말의 의미가 나오기도 하는데, 후배들한테 제가 지금까지 알게 된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어요. 좋은 배우라면 그게 맞는 것 같아요. ”



-<구텐버그>는 배우에게 쉽지 않은 2인극이다.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춰야 할 부분이 많아요. 그렇다고 상대에게 무조건 맞춰준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에요. 어느 한 명이 극을 이끌어가는 건 좋지 않죠. 상대가 힘들 때 끌어주고, 안 힘들 땐 웃음주고. 공생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해요. 어느 한 배우에게 편중 되는 게 가장 안 좋은 2인극이겠죠. ‘저 아이는 잘 하는데, (또 다른) 저 아이는 뭐니?’ 이런 관객 반응이 나오게 된다면 재미없는 2인극으로 남을 것 같아요. 상대가 실수할 지라도 감싸줄 수 있는 윈윈 전략이 필요한 게 2인극입니다.”

-고정 페어로 가지 않고 섞여서 무대에 오른다. 더 힘들지 않나
“배우로선 페어가 섞이니 더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페어가 섞이는 게 맞다고 봐요. 늘 똑같은 페어만 보면 관객도 재미 없잖아요. 또 더 넓게 보면, 이런 시스템이 배우를 항상 긴장하게 만들어요. 고정된 상대 배우가 생기면, 연기도 연기지만 호흡이 익숙해져 느슨해지게 되요. 배우로선 할 일이 더 많아 지는 거지만 내 안의 다른 걸 더 끄집어 낼 수 있게 해줘요. ”

-<구텐버그>를 쇼 코미디로 예상하고 오는 분도 있을 것 같다
“장르요? 유쾌발랄 2인극이란 수식어는 달지만, 쇼 코미디는 아닙니다. <구텐버그>는 쇼잉이나 개인기에 의존하는 작품이 아니거든요. 애드리브 구간도 거의 없어요. 철저히 구획된 작품이죠. 제 개인적으론 ‘꿈과 열정에 관한 정극’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 “배우는 천재보다는 열등생이 더 낫다”

배우 정상훈은 서울예술대학교 개그클럽에서 활동하다, 개그맨 선배인 이영자를 통해 방송에 입문했다. 1998년 SBS 드라마 <나 어때>로 정식 데뷔한 정상훈은 드라마 <그린로즈>, <황진이>, <푸른물고기>, <장길산>, 영화 <화산고>, <영어완전정복>, <목포는 항구다>, <결정적 한방> 등으로 얼굴을 알렸다.

뮤지컬과의 인연은 2001년 <가스펠>로 시작됐다. 그 후 2005년 <아이 러브 유>로 뮤지컬 배우로서 기쁨을 느꼈다. 17년 차 배우 정상훈은 뮤지컬 <싱글즈>, <젊음의행진>, <이블데드>, <점점>, <기발한 자살여행>, <올슉업>, <김종욱 찾기>, <폴링 포 이브>, <카페인>, <전국노래자랑>, <두 도시 이야기>, <어쌔신>, <스팸어랏> 등에서 주 조연을 넘나들며 관객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인물. 연극 <아트>와 <키사라기 미키짱>으로도 호평을 받았다. 최근엔 tvN ‘SNL 코리아’의 크루로도 활동 중이다.

-11월에 개막하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준비로도 바쁘겠다. <구텐버그>와 주제 면에서 닮은 구석이 많지 않나
“<구텐버그>가 실질적인 꿈에 관한 이야기라면, <맨 오브 라만차>는 진솔한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종교재판으로 어려운 시대에 짓눌리는 상황에서도 꿈 꿀 수 있는 이상과 도전이 담겨있죠. ‘임파서블 드림’ 같은 노래는 음악 뿐 아니라 메시지가 너무 좋잖아요.”



-조승우▪정성화 배우와 함께 출연한다. 특히 뮤지컬 배우의 길로 이끌어 준 정성화 배우와 함께 <맨 오브 라만차>에 출연해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언젠가는 함께 작품을 하겠지 했는데, 이렇게 <맨 오브 라만차>에서 만나게 됐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한번 상상해 봐요. 어떤 길을 가는데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하는 순간이 찾아와요. 그렇게 뒤돌아봤는데 엄지를 들며 ‘너 여기까지 잘 왔어요. 너만 믿고 있어’라고 말하며 절 지지해줘요. 이런 동반자가 있다면 아무리 시간이 많이 걸려도 포기할 수 없지 않겠어요. 성화 형과 저와의 관계가 그래요. 극 중 산초가 부르는 ‘좋으니까’ (I LIKE HIM) 노래에 이런 마음이 다 담겨있어요. 좋으니까. 그냥 좋으니까란 대사가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죠.”

-‘산초’에 이어 ‘돈키호테’역으로도 출연하고 싶지 않은가
“‘돈키호테’는...아직은 제 욕심이죠. 나이가 더 들어 성화 형처럼 훌륭한 성량을 갖게 되고 실력이 늘면, 김문정 음악감독님께 당당히 ‘돈키호테’ 역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때가 되면 출연료를 거의 받지 못해도 할 겁니다.(웃음)”

-배우의 실력은 어떻게 늘어날 수 있게 되는 건가
“제가 노력한 만큼 남들도 다 노력하죠. 그렇다고 경험 때문에 배우의 연기력이 쌓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안다고 자만하지 않고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열정과 패기를 가지고 겸손하게 무대를 대해야죠.”

-배우는 겸손해야 된다는 의미인가
‘배우는 똑똑하지 않으면 부지런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배우로 타고난 천재가 있어요. 쉽게 말해 신 내림 바로 밑 단계에서 순식간에 도둑이 되기도 하고, 또 바로 형사가 되기도 하는 천재 배우요. 하지만 전 그런 천재가 아닙니다. 배역 하나 하나를 내 것으로 만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요. 하지만 배우는 천재보다는 열등생이 더 낫다고 봐요. 천재는 해 놓고 쉬어요. 반면 열등생은 부러움 때문에라도 계속 뭔가를 찾아 나서고 무던히 노력을 해 끝까지 지치지 않아요. 지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 문학소년 정상훈과 웃음의 절묘한 조화

-<스팸어랏>을 3개월이 넘게 장기 공연 했다. 원 캐스트로 무대에 서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스팸어랏>은 코미디의 미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어준 작품이에요. 오랜 시간 공연을 하다 보니 내가 ‘랜슬럿’인지 ‘정상훈’인지 헷갈리게 되더군요. <스팸어랏> 포스터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웃긴 뮤지컬’이란 문구가 있어요. 그 문구처럼 원 없이 웃겨드려야죠. 그런데 그렇게 웃기고 났더니 공허해지더군요.”

-<스팸어랏> 마지막 공연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하던데, ‘공허함’과도 관련이 있는가
“정극이면 관객 반응이 없어도 대본대로 가면 돼요. 하지만 <스팸어랏>은 코미디잖아요. 정해진 장면에서 객석 반응이 안 터지고, 피드백이 없으면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80회가 넘게 공연하면서 ‘배우로서 하기 싫을 때’도 있고, ‘객석의 관객이 덜 찰 때’도 있고, ‘관객의 반응이 잘 오지 않을 때’, ‘배우들의 화합이 잘 되지 않을 때’ 등 여러 경우의 수가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공연에서 상한가를 때려야 해요. 마지막 공연 커튼콜 무대에 섰는데 여러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어요. 목 놓아 울음이 터져 나오더군요.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없구나란 생각까지요.”



-말을 참 잘 한다. 단순히 달변이 아니라 문학적 감수성도 풍부한 것 같다.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인가
“예전엔 책을 많이 읽었지만 요즘엔 읽을 시간이 없어서 많이는 읽지 못하고 있어요. 몇 년 전 성화 형과 작업실을 꾸며 함께 습작을 한 적이 있어요. 대본도 7~8편을 썼어요. 아직은 연습생 작품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그 작업으로 인해 배우로서 많은 공부가 됐어요. 대본의 시퀀스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드라마투르기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 캐릭터 연구는 어떻게 할 수 있게 되는지 등 대본을 보다 넓고 깊게 볼 수 있게 됐어요. “

-배우로서 꾸준히 하고 있는 건 없나?
“제가 배우가 된 뒤 빼놓지 않는 습관 중 하나가 메모하는 습관입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스쳐지나가는 장면, 문구 등이 생기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메모를 해요. 저 캐릭터는 여기에 필요 할 것 같고, 저 경험은 저기에 써 먹고, 메모를 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죠.”

-밝고 유쾌한 배우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색하는 남자의 이미지도 비춰진다.
“제 성격이 밝다고 하는데, 일부분은 살기 위해 밝아진 것도 있어요. 가만히 있으면 누가 날 알아주겠어요. (여기서 바로 시연에 들어갔다.) ‘성적도 중간, 성격도 평범해 있는 듯 없는 듯한 아이’를 보며 교수님이 ‘가만히 있어봐. 너 이름이 뭐니? 이 평범한 아이를 위해 모두 박수’라고 말 할까요?‘ 배우라면 자신을 알려야죠. 물론 가끔 힘들 때는 내성적인 성격이 돼요. (웃음)”

-웃음기 싹 뺀 정극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만약 제가 트위터에 ‘오늘 이후로 전 코미디를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을 했다고 쳐요. 그렇게 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백이면 백 ‘역시 정상훈이야. 또 웃기려고 그러지’란 반응을 먼저 보일 겁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코미디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물론 여기서 슬쩍 슬쩍 다른 모습이 보이게 되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폭 넓은 배우구나’란 생각을 갖게 될 것 같아요.”

정상훈은 <구텐버그>는 “대세남들의 땀과 열정을 볼 수 있는 뮤지컬, 구텐베르크가 발견한 인쇄기 이상의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뮤지컬” 이라고 말했다. “최근에 원영이는 <여신님이 보고 계셔>로 대박 났어요. 용진 형과 현덕이는 <마마 돈 크라이>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어요. 저는 대세남은 아니지만 대극장 뮤지컬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구텐버그> 관객 반응을 볼 때마다, 2013 대세 뮤지컬은 <구텐버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봐요.”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쇼노트,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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