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MBC <내 마음이 들리니>가 주말 드라마 1위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약진의 중심에 여주인공 황정음이 있다. 화제 만발인 정보석 씨의 명품 연기는 물론 윤여정, 이혜영 씨를 비롯한 중견들의 연륜 덕이기도 하고, 남자 주인공들의 깊이 있는 눈빛과 미소 또한 한 몫을 하긴 했지만 만약 여주인공이 청순한 척, 예쁜 척이나 하려 들었다면 과연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황정음이 거친 세상풍파를 헤치며 살아가는 가난한 여주인공 ‘봉우리’ 역을 맡게 되었다고 했을 때 솔직히 잘해낼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나 SBS <자이언트>를 통해 황정음의 재발견이라는 소리를 듣긴 했으나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식의 캔디 연기가 가능할지 걱정이 됐던 것. 왜냐하면 <우리 결혼했어요>부터 지금껏 이어져온 이미지가 돈이 있든 없든 쓰고 보자는 분위기이지 고생 고생해가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스타일은 아닌 터, 아무래도 극의 몰입을 방해하지 싶었으니까.

더구나 봉우리의 어린 시절을 똑 부러진 아역배우 김새론이 연기한다니 걱정은 배가 될 밖에. 지금까지 눈부시게 빛나는 아역으로 인해 초라해진 성인 연기자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아니나 다를까, 김새론은 그냥 어려운 형편에 눈칫밥 먹으며 지내는, 하지만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 시골 여자아이 그대로였다. 그래서 무대가 16년이 흐른 시점으로 바뀌던 날 사실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이때껏 잘 봐오던 드라마를 여주인공 하나 때문에 포기해야 하나 해서. 김재원이며 남궁민, 이규한 등, 만만치 않은 청년들이 동시에 봉우리에게 끌리게 된다는데, 여자 연기자가 대충 어설픈 매력을 보여서야 납득이 가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웬걸, 황정음이 절치부심, 준비했나 보다. 놀랍게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어린 봉우리를 뻥튀기 해놓은 양 소탈하고, 씩씩하고, 마음이 맑아 보이는 아가씨가 눈에 쏙 들어오는 게 아닌가. 적재적소에 맞는 감정 연기와 눈빛도 좋았고 열심히 연습한 수화에도 감탄했지만 그중 돋보인 건 여느 캔디 역할의 연기자들처럼 설정만 궁핍한 형편일 뿐 실제로는 명품을 걸치고 나오는 우를 범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의상의 가격대까지야 알 수 없으나 늘 즐겨 신는 빨간 운동화부터 시작해 자주 받쳐 입는 체크 셔츠도 정겹고 요즘엔 어디서 보기도 힘들어진 폴더폰도 친근감을 더했다. 언젠가 오갈 데 없이 가난한 주인공이 PPL 때문인지 고가의 신형 스마트폰을 당당히 사용해 황당해 했던 게 기억났다. 강부자, 김영옥 씨 같은 선생님 급 연기자들께서 극중 배역에 맞는 옷이며 소품을 손수 갖춰 오신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직 한참 예쁘게 보이고 싶을 젊은 연기자가 이처럼 트렌드와 한참 거리가 먼 차림새를 고수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게다.

수수한 옷 몇 가지와 현실적인 헤어스타일, 화장기 없는 얼굴로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왔던 <옥탑방 고양이>의 정다빈, 그리고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윤은혜가 생각난다. 아마 황정음 또한 이 두 연기자의 뒤를 이어 두고두고 회자되며 칭찬받지 싶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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