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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축지법’으로 찾은 명성황후의 ‘얼굴’
기사입력 :[ 2013-09-26 14:03 ]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이 작품, 앞자리는 피하는 게 좋을 듯싶다. 깊은 무대 자체가 또 하나의 주인공이니 말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명성황후라는 텍스트에 시리디 시린 배우의 몸, 미궁 같은 무대가 더해져 한 편의 시 같은 뮤지컬이 빚어졌다. 아니, 눈을 감고 무념무상상태에서 경험하는 ‘생각의 축지법’으로 찾은 명성황후의 ‘잃어버린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22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서울예술단의 <잃어버린 얼굴 1895>(작가 장성희 연출 이지나)는 열강들의 칼날 위에 자신의 장례식을 세 번을 치를 정도로 위태로운 생을 살았던 ‘명성황후’를 새롭게 그린 작품.

기존 ‘명성황후’ 관련 작품들이 ‘을미사변’(1895년) 위주로 진행되는 것과 달리 1930~40년대 일제 강점기 시대의 낡은 천진사진관을 무대로 불러냈다. 이 사진관은 명성황후의 혼령이 들르는 길목이다. 그녀의 남겨지지 않은 사진에 대한 미스터리 한 에피소드가 이야기의 한 축을 장식한다.

실제로 대한제국 이전부터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고종이 죽기까지 꽤 역사적 사진이 전해진다. 그러나 명성황후에 대한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명성황후로 추정되는 사진은 모두 허위임이 밝혀졌고, 남겨진 사진들을 두고 벌이는 진위 논쟁은 우리 역사의 비어 있는 페이지이자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작품은 미스터리 판타지 팩션(Fact+Fiction)의 형식을 빌어 그 진실을 찾아간다.



<윤동주, 달을 쏘다>에 이은 서울예술단의 2013 가무극 시리즈 두 번째 <잃어버린 얼굴>은 조선의 마지막 황후였던 한 여인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찾고자 했던 ‘잃어버린 얼굴 찾기’ 여정을 그리고 있다. 또한 당대를 살았던 인물들인 대원군, 고종, 김옥균 등의 선택을 들여다본다. 단순한 역사물, 영웅적 시각에 그치지 않고, ‘역사란 결국 개인이 만들어내는 스토리’라는 정의를 떠올리게 하는 점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다. 민찬홍 작곡가는 피아노, 현악기와 타악기를 모두 이용해 현대적인 스타일과 클래식한 스타일의 음악을 함께 선 보여, 고루한 역사물로 흐르는 걸 미연에 방지했다.

작품 속 주인공은 명성황후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과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가 폐족시킨 마을 출신의 사진사 ‘휘’이다. ‘민영익’이란 실존 인물이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명성황후의 이면을 찬찬히 들려주는 이라면, 가상의 인물 ‘휘’는 ‘명성황후’에 얽힌 국민들의 애증을 드라마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휘’를 통해 권력과 민중이 과연 화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 역시 던지고 있다.



‘사진은 가끔 그 사람의 숨겨진 얼굴, 더 나아가 영혼까지 보여 준다.’ 작품은 이런 사실을 모티브로 삼아 여러 개의 액자 틀을 무대(무대 디자인 오필영)에 걸어 봉인된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를 보여주고 들려준다. 이 액자와 함께 하는 장면과 그렇지 않은 장면의 차이점을 눈여겨 본다면, 작품이 더욱 다채롭게 이해될 듯 하다. 또한 상하로 움직이는 계단식 무대가 다채로운 질감을 만들어낸 작품이다.

왕비는 어떤 왕후로 기억되길 바랐을까? 민초들이 만들어 내는 거짓소문에 눈물의 연못을 만드는 여인, 척족권력을 휘두르며 조선의 명줄을 끊어버릴 정도로 독한 황후, 뱃속으로 낳은 새끼와 지아비는 물론 시부모의 사랑도 받아보지 못한 불행한 여인 등 이 모든 얼굴이 다 그녀의 얼굴이다. 그리고 그녀의 혼을 위로하는 한판 굿이 펼쳐진다. 구슬프게 울리는 타악소리와 명성황후의 고뇌와 슬픔의 정서를 보다 극대화 시킨 안무의 잔향이 강하다. 영상(정재진) 또한 미니멀한 핸드드로잉 스케치에 공간을 나눈 꼴라쥬 형태의 프로젝션 맵핑 방법을 사용했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사건과 장면이 긴밀하게 연결되기 보다는 이미지적으로 풀어냈다. 어찌 보면 불친절한 극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관객의 상상력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특히, 죽음의 세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을 상징하는 ‘서천꽃밭’에서나마 사진을 찍고 싶어 한 국모의 모습을 아련하게 불러낸 장면, ‘조선이 조선으로 바로 서는 날 사진을 박겠다’고 말한 ‘명성황후’의 어둠 속 목소리를 들려주며 마지막을 장식한 장면 등이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토월극장 모퉁이 모퉁이마다 황후의 잃어버린 얼굴 조각들이 떨어져있다. 그걸 어떻게 맞춰 볼 것인지는 관객의 몫이다. 황후는 대부분 장옷을 쓰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다. 하지만 황후 역 배우 차지연의 세포 하나하나, 터럭 하나하나까지 보이는 뮤지컬이다. 극한의 냉기와 한을 불러낸 점이 박수치게 만들었다.

배우 박영수, 조풍래, 금승훈, 김도빈, 김건혜 등이 제 몫을 해내고 있다. 젊고 단단한 배우 조풍래의 발견도 반가웠다. 다만 황후와 대척점을 두며 무게 중심을 잡아줘야 할 ‘휘’역 손승원 배우의 스펙트럼이 다소 넓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공연기간이 짧다. <윤동주 달을 쏘다>와 같이 곧 다시 돌아오길 기대해본다.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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