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GV에 참여하는 당신을 위한 조언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얼마 전 부산국제영화제의 시간표가 발표됐다. 영화제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간이 시작된 것이다. 시간표를 붙잡고 앉아 스케줄을 짜는 일 말이다.

영화제 때에도 이 흥분이 유지될 수 있을까? 그건 순전히 운에 달려있다. 공들여 고른 영화가 망작일 수도 있고, 영화 자체를 놓칠 수도 있고, 영화 외적인 일로 작품에 집중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영화의 경험을 망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는 바로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이다. 자신의 작품을 들고 전세계에서 수많은 영화인들이 찾아오고, 국제영화제는 바로 그들이 국내 관객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런데 이 기회가 손발이 오글거리는 악몽으로 변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그런 악몽을 방지하기 위해 영화제 GV 질문자들을 위한 가이드를 내놓는다. 이 가이드는 일반 시사회의 질문에도 어느 정도 유용할 것이다.

우선 잘난 척을 하지 말자. 질문을 하겠다고 해서 마이크를 주면 온갖 까다로운 고유명사를 들먹이며 자기 영화 지식을 장황하게 자랑하다가 이걸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무리가 있다. 이런 부류들은 그러면 자기가 굉장히 멋있게 보일 줄 알겠지만, 대부분 관객들은 짜증을 내거나 민망함으로 죽어갈 뿐이다. 자신을 대학교수나 평론가라고 소개하면 변명이 될 것 같지만 민망함은 오히려 배가 된다. 짧은 감상을 이야기하는 건 좋다. 하지만 질문자의 역할은 질문을 하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자. 그걸 넘어서면 주변 관객들도 괴롭고 대답하는 사람도 괴롭다. 그 안에서 괴롭지 않은 사람은 그런 연설을 해도 괜찮을 줄 아는 눈치없는 질문자 자신뿐이다.

이들 중 가장 최악은 앞에 있는 감독이나 배우에게 훈수를 둔다. 대부분 그건 제대로 훈수 노릇도 못한다. 올해 부천 영화제에서 상영한 <현실의 춤>은 근사한 영화였고 관객들의 반응도 엄청나게 좋았는데, GV에서 질문을 하겠다고 손을 흔들어놓고 "영화가 너무 난해하고 길이도 길다. 현실적인 내용을 다루려고 한 것 같은데, <볼링 포 콜롬바인>이나 <슈퍼사이즈 미>처럼 쉽고 재미있게 만들 수는 없었나"라고 떠들었던 관객이 그 분위기를 완전히 깨버렸다. 한국 관객들을 만나러 온 주연배우 브론티스 조도로프스키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관객들은 황당해서 '쟤 뭐야?'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 참사의 현장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쉽게 나오니 한 번 구경해보시라. 참, 영화제에서는 GV 현장을 카메라로 찍고 있으니 멍청한 질문은 꽤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공부를 하자. <현실의 춤>의 질문자가 최악의 GV 질문자로 아직까지 기억되는 건 질문의 공격성 때문이 아니라 영화라는 점을 제외하면 전혀 연결점이 없는 <볼링 포 콜롬바인>이나 <슈퍼사이즈 미> 같은 영화를 비교대상으로 놓아도 말이 통할 거라 믿은 순진함에 있었다. 최소한의 하한선을 생각을 하고 질문을 하자. 국제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은 어느 정도 기본 수준은 되는 사람들이다. 이들 앞에서 당신은 쉽게 바보처럼 보일 수 있다. 기본 교양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요새는 많이들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니 질문 전에 최소한 관련 검색은 해볼 수 있다.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자. 그러는 동안 진짜 재미있는 질문을 찾아낼 수도 있다.



주제에서 벗어나지 말자. GV는 막 상영된 영화에 대해 영화인과 관객들이 대화를 나누는 자리이다. 얼마 전 <장화, 홍련> 10주년 상영회에서는 김지운 감독에게 엉뚱하게 <라스트 스탠드>에 대한 장황한 질문을 한 관객이 있었다. 김지운 감독이 마침 그 영화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건 할 질문이 아니었다. 할 질문과 하지 않을 질문을 구별하자.

무엇보다 예의를 지키자. 본 영화가 정말로 맘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감독에게 그 영화를 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표현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제는 축제이지 인터넷 게시판이 아니다. 진짜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고, 당신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축제에 초청받은 손님들이다. 여기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천안함 프로젝트> GV 현장, 한국영상자료원]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