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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시극은 언어로 빈 공간 만드는 것”
기사입력 :[ 2013-09-27 23:38 ]


서울시극단 <나비잠> 작가 김경주 인터뷰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서울시극단 2013 서울의 혼 시리즈 첫 번째 작품<나비잠>(연출 김혜련▪테오도라 스키피타레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의 사대문이라는 공간을 무대에 옮겨 외로운 현대인들의 회복과 달램의 이야기를 담아낸 연극이다.

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로 잘 알려진 젊은 시인이자 극작가인 김경주가 지난 19일 개막한 서울시극단의 신작 <나비잠>의 극작을 맡았다. 김경주 작가는 최근 뱃속의 아이에게 10개월 동안 자장가를 글로 쓴 태교책 『자고 있어, 곁이니까』출간에 이어, 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11분>의 드라마투르기로 참여하기도 했다. <나비잠> 첫 공연을 보고 작가 김경주와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 가여워서 돌볼 수밖에 없는 ‘운명’ 이야기 <나비잠>

<나비잠>의 주요 키워드는 ‘모성’이다. ‘모성’은 ‘4대문 바깥의 축성 과정’ 과 ‘4대 문 안에서 들려오는 자장가’라는 두 가지의 형식으로 구체화 된다.

조선후기 4대문 도성의 완공 과정을 묘사해가며 축성시기의 마을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보여주고 이를 신나라 작곡가가 작곡한 11곡의 자장가를 통해 이미지와 음악극의 형식으로 풀어냈다.

-첫 공연을 2시간 15분으로 끊었는데, 이후 러닝타임을 더 줄여나간다고 들었다. 작가들은 자신이 쓴 글이 각별할 텐데, 대본이 잘려 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가

“기획 단계부터 함께 작품의 정서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엮어간다고 생각했으니 아쉬움은 없어요. 극을 쓰는 작가의 최종은 작품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인쇄된 형태로 책이 출간되기 까지는 무대언어로서의 희곡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작가가 지면이라는 평면 속에 부여한 작품의 공간이 연출의 상상력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극이 올라가는 동안 작가로서 느끼는 가장 큰 충일감이라 생각해요.

-상징적 대사들이 많다. 특별히 더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장면보다는 대사로서 좀 더 애착이 가는 부분이 있어요. 대목수가 제사장에게 하는 대사 중에 ‘운명은 가여운 것이어서 자네가 돌보고 있지 않은가..”라는 부분입니다. 이 이야기는 가혹한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대사에 쓴 처럼, 가여워서 돌볼 수밖에 없는 게 운명이고, 고향이 없어 늘 떠도는 게 운명이란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어요.”



-<나비잠>의 큰 구조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큰 의미로 말하자면, 어미를 잃은 두 형제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두 형제의 가혹한 운명을 어미가 없이 태어나 젖동냥으로 자란 말더듬이 소녀가 달래는 인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병든 어미의 젖을 먹고 자랐지만 전염병으로 죽은 어미의 시체를 데리고 살던 형은 자라서 대목장이 되어 흙으로 어미를 다시 쌓아올리는 꿈을 갖게 되요. 반면 잃어버린 어미를 잊고자 바람을 따라 떠난 아우는 어미의 젖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자신의 상처를 음악으로 극복하려 합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내면에 깊이 자리한 그리움은 끊을 수가 없어요. 결국 그들은 도성이라는 원형적 공간에서 달래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서 각각 자신들의 깊은 상처와 모성을 발견해가게 됩니다.”

-극중 나오는 젖동냥 장면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어떤 의도와 어떤 상상력으로 그 장면을 써내려갔나
“이 이야기는 젖동냥으로 자란 한 아이가 젖동냥을 돌려주는 모성의 순환에 관한 이야기 이기도 하지만, 모성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어요. 텍스트를 보면 젖은 여인으로부터 나오는 것 만은 아닙니다. 남녀노소 모두에게서 젖이 나온다고 설정했는데 결국 모성은 누구에게나 있음을 이야기하려 했어요.

-대목장, 악공, 제사장, 스님 이렇게 네 명이 이끌어가는 구도다. 각 인물의 상징성을 좀 더 설명한다면? 추가적으로 ‘어색하게 생긴’(이 장면은 유독 어린 관객들이 즐거워하며 반응했다) 천문사관이란 인물, 어린 병사들에 대해서도 설명 해 달라.
“대목장은 운명을 망각과 집착으로 끝까지 극복하려고 하는 인물입니다. 악공은 운명을 예술로 극복하려 했으나 실패하지만 마지막엔 혼신의 힘을 다해 극복해보고자 해요. 제사장은 운명을 바꾸고자 하나 어렵다는 것을 아는 인물로 볼 수 있어요. 스님은 운명을 바꾸거나 극복하기 보다는, 달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천문사관이요? 그는 먹물로 하늘을 읽으려는 인물입니다. 어찌보면 요즘 정치인들로 읽혀질 수도 있어요. 망루의 어린 병사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깊은 곳을 바라보고,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바라보고, 가장 무덤덤한 곳에서 가장 슬프고 참혹한 곳을 응시하는 인물입니다. 천진함과 잔혹함의 동화적 세계를 보여주죠. 극의 전개상 각 장이 시작되기 전 중요한 복선적 역할도 하고 있어요.“



-무거운 머리카락이 계속 자라나는 ‘달래’라는 인물은 불면을 겪는 모든 이들을 달래는 존재로 보였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대목장, 악공, 달래 이 세 인물들은 각각 잠들지 못한 자들의 세계를 갖고 있어요. 집착으로 인한 악몽(대목장). 상실로 인한 허무(악공). 원초적 불면(달래)을 대변한다고 보면 됩니다. 달래는 운명의 순환성을 의지도 반의지도 아닌 모성의 존재로 품는 인물입니다.”

-<나비잠>이란 작품이 어떤 이미지, 촉감, 질감 등으로 다가갔으면 하는가?
“4대문의 축성을 완성하려는 대목수의 건축적 상상력과 망상은 악공의 소리 즉 음악과 연주를 통해 허물어져요. 대목수와 악공 모두에게 들려오는 자장가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이야기를 정서적으로 감싸게 돼요. 극의 진행은 몽환적이면서도 알레고리적 분위기로 진행돼요. 이야기에서 알레고리로, 대화에서 침묵으로 나아가는 각각의 질감을 다양하게 가져가셨음 해요.”

-희곡을 같이 실어놓는 프로그램 북이 많지는 않지만 가끔 있다. 연극으로 음미하고 희곡으로 또 한 번 음미할 수 있어 좋더라. <나비잠>도 프로그램 북 안에 대본집이 같이 들어 있었음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저야 늘 좋겠지만...늘 작품바깥의 환경은 제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인 듯합니다.”

■ “시와 극에 숨어사는 이끼들을 통해 오래된 감정의 자연을 발견할 수 있어요”

-좋아하는 희곡 작가들은?
“주로 고대 희랍 비극 작가 등의 작품을 좋아해요. 열심히 읽었던 현대 작가들은 하인리이 폰 크라이스트, 아르토, 하이너뮐러, 욘포세, 마리아 콜테스, 아라발, 테레야마 수우시, 프랑수와 비용, 이근삼, 베게트 등등 너무 많아요.”

-‘시를 읽는 것은 행간을 읽는 것’이라고 했다. 희곡을 읽는 것도 같은 의미로 이해하면 되는가
“행간을 읽는다는 것은 시와 시극<희곡>이 가지는 ‘사이와 침묵’이 쓰여져 있거나 말해져 있는 것 못지않게 중요성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답을 찾는 독서의 방식에서 벗어나 느낌을 잃어버리지 않고 질감을 찾는 독서의 방식을 가지고 시와 희곡은 유효성을 오래가져 왔음은 물론 그 역사를 스스로 보존해왔어요.

조급한 관객이나 독자들이 ‘상징’을 난해한 것으로 오해하고 불편하고 폭력적인 것이라고 말해버릴 때 그러한 무의식의 층리에는 우리교육의 모법답안 찾기에서 비롯된 목적이나 의미 지향적 태도를 예술의 영역에게까지 삼투시키려는 혐의가 짙습니다. 사회에서 성공하려는 태도를 왜 예술에서도 그대로 적용해야 하죠? 예술은 성공이나 우월 열등을 벗어나 고유성의 문제이며 스스로 그것이 아니면 안 되는 지점을 향한 창작자의 고민과 상상력이 숨 쉬는 공간입니다. “



- ‘관객들의 이해’와 ‘관객과의 소통’ 측면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소통은 질의 문제이지 양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통이란 의미보다는 ‘감염’ 된다는 의미가 더 좋아요. 성급한 이들은 자신의 잃어버린 감수성을 찾는 것 보다 자신의 감수성이 항상 열려있지만 예술가들이 그것을 깨워주지 못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예술은 타자와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가려진, 이 세계가 가지고 있는 다른 진실. 혹은 다른 차원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시와 극은 티비 드라마나 개그쇼나 스타강사들의 처방전 특강처럼 답을 주지도 원하는 목적지로 데려가주지 않습니다. 요즘 흔히 듣게 되는 힐링이라는 단어 역시 본연의 의미가 퇴색됐죠. 오히려 그것에 대해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 우리의 마음에서 움직이고 있던 오래된 감정의 자연을 발견 할 수 있는 생태계가 시와 극에 숨어사는 이끼들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이 왜 시를 읽고, 왜 극장에 간다고 생각하는가
“시적인 것이 궁금하고 극적인 것이 거기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가끔 시집 속엔 시인이 넣지도 않은 귀뚜라미가 들어가 울고 있기도 하고, 극장엔 연출과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보아 뱀이나 코끼리가 무대에 나와 어슬렁거리거나 어른거리기도 합니다.”

-시와 연극은 한 몸이라는 말을 했는데, 시와 시극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제가 작업을 하는 경우로만 한정하면, 시가 시적인 순간이나 착시. 현기증까지 도달하려는 언어의 밀도에 집중하는 방식이라면, 시극은 시적인 언어로 만나는 공간의 길이와 호흡의 문제에 집중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언어로 언어를 비우는 거지만 시극은 언어로 비어있는 공간을 만드는 겁니다.”

-‘시극운동’이란 테마를 가지고 계속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 시극운동이란 뭔가
“침묵의 질을 표현하는 극운동입니다. 시는 말할 수 있는 것 보다 말하지 못하는 부분을 쓰는 겁니다. 시극이란 상징. 사이. 침묵. 같은 시의 속성이 살아있는 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와 속도의 위장에 질식되어가는 극의 흐름에서 시극은 이야기의 목적성보다 이야기의 가능성을 찾습니다. 무엇보다 언어가 인간 속에 살아있는 드라마를 지향합니다.”

■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을 지켜가는 ‘순정의 작가’ 김경주

-첫 희곡 작품은 뭐였고, 지금까지 오면서 작품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처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처음엔 대학로라는 공간에 별로 매력을 갖지 못했고 몇 년간 주로 대안공간을 찾아다니며 실험극과 시극, 무언극, 음악극, 낭독극 등을 직접 쓰고 연출했어요. 홍대의 클럽과 카페에서부터 버려진 공장, 들판, 옥상, 비행기 격납고, 버려진 창고, 부두, 길거리 등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대학로에 올린 것은 2006년 워크샵 형태로 혜화동 1번지에 올린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가 있습니다. 그 뒤로 밀양연극제를 비롯 통영국제음악제. 국제공연예술제 등 여러 페스티벌에 참여하기도 했고요.

이 시대의 기형성. 불구성. 원형성. 등이 제가 관심을 가져온 주제이며, 언제나 저는 인간은 왜 불안한가? 우리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지 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글을 쓰고 있어요.“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와 <블랙박스> 두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하자면.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는 장애 아이를 낳아 자해 공갈단을 꾸리는 어미와 아들의 우화이며 <블랙박스>는 한 시간 동안 구름 속으로 들어간 비행기 안에서 두 승객이 앉아 불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부조리극입니다. 둘 다 알레고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블랙유머 이야기의 층을 가지고 있어요.”

-지난 10년 넘게 대학로의 폐쇄성 때문에도 힘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부조리극 <블랙박스>에 관객이 들지 않아 이민도 생각했다고 하던데, 지금 심경은?
“ 20여년 넘게 연극에서 종사해온 배우 한 분이 데뷔 후 두 번째 겪는 에피소드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관객이 한명도 없어 공연을 못 올린 날이 5일정도 되었어요. 작가로서 참담했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 사건으로 동시대성에서 연극이 가지는 현재의 가치는 무엇이며 내 언어가 만들어내는 공간 안에 인간이 걸어 들어오기 위해서 내가 놓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언인가?에 대해 솔직하게 질문을 던져보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의미의 질문일 수도 있겠다. 2012년 당시 <블랙박스>연극에 대한 정보를 전혀 듣지 못했다. 객석이 차지 않는 이유가 1차적으로 홍보의 문제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나

“홍보와 마케팅의 점유율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점점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적은 예산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을 소극장에서 올릴 수 있었던 연출부와 기획하는 친구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있어요. 시기적으로도 작년 12월은 매우 추웠고 대선기간이라 대중의 집중도가 분산되었고 극장의 포지션이나 여러 가지 시스템과 환경을 조밀하게 생각했을 때 작품이 많이 알려지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홍보부족이라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못한 갈증이 남아 있어요. 우리가 얼마나 더 넓게 소통하려고 했느냐의 부분이죠. 새로운 작품과 텍스트가 노출되었을 때 외부의 시야는 얼마나 열려있는가? 대중의 능동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소통까지를 고민한다면 할 말이 많고, 많은 논의가 필요하죠. 소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보통 이루어지는 3-4일이나 2주가 아닌 한 달이라는 공연기간 동안 저희의 선택과 시간은 어떤, 무엇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기에 나름 충분하다고도 봅니다. 당시 관객이 없어 추웠고 스태프와 배우들이 함께 대기실에서 입김을 나누며 잠시 의기소침해졌지만 실패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현재 준비하는 희곡이 있는지
“<블랙박스2>와 모노드라마 한편을 준비 중 입니다. 저는 기내극이라는 작은 저만의 장르를 개척해가는 중입니다.”

-지금의 꿈은?
“악몽이 되지 않는 꿈은 없습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다른 인터뷰에서 ‘순정의 연극’, ‘순정적인 작업’ ‘순정을 간직한 사람들’ 이란 말을 자주 쓴 것 같다. 김경주에게 ‘순정’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잔인해지지 않도록,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을 지켜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 김경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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