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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필 “연극에 ‘다시’가 어디 있나요?”
기사입력 :[ 2013-09-30 17:39 ]


“혼자 소극장 100석을 채우는 배우가 되고 싶다”
연극 <클로저> 배우 김영필 인터뷰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야구 경기를 한번 보세요. 타자가 공을 쳤는데 아웃이 됐어요. 그런데 누가 ‘다시 칠게요’란 말을 해요? 더 나아가 운이 따르지 않으면 쓰리아웃이 돼 나도 죽고, 너도 죽고 팀 전체가 죽게 돼요. 연극도 마찬가지입니다. 라이브가 생명인 연극에 ‘다시’가 어디 있어요? 그건 배우 스스로 감당할 부분이죠. 그것도 1시간 50분 동안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면서. 그래서 배우가 한 순간 무너질 수 있는 곳이 무대라는 공간이기도 해요. 결국 지금 이 무대에서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지금 그 배우의 모습입니다.”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 중인 연극 <클로저>(CLOSER)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열정과 소유욕에 불타는 남자 ‘래리’역을 맡은 배우 김영필을 만났다.

■ 상처를 감춘...순수하고 유쾌한 ‘래리’를 만나다.

영국의 젊은 극작가 패트릭 마버(Patrick Marber)의 대표작 <클로져>(연출 추민주)는 뉴욕 출신의 스트리퍼 앨리스(이윤지▪진세연▪한초아), 부고 전문기자 댄(신성록▪이동하▪최수형), 사진 작가 안나(차수연▪김혜나), 피부과 의사 래리(서범석▪배성우▪김영필), 이렇게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끝없는 갈망을 그린 작품이다.

-<클로저> 출연 배우들과의 호흡이 좋더라
“연극 작업이라는 게 결국 사람 만나는 일인데, 함께하는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 불편 한 게 없어서 더 재미있어요. 배우들과의 호흡도 좋고 작품도 괜찮아서 즐겁게 작업하고 있어요. 그런데 혹시나 제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을지는 모르겠네요(웃음)”

-이전 시즌 <클로저>를 본 적이 있나
“희곡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영화 <클로저>를 먼저 접했어요. 희곡을 읽은 건 이번 작품을 통해서였고요. 캐스팅 제안이 왔을 때, 희곡을 읽고 너무 마음에 들어 개런티 이야기도 하지 않고 바로 ‘합시다’란 대답을 했어요.”

-희곡을 읽고 ‘래리’란 인물을 어떻게 머리 속에 그렸나
“음...우선은 ‘순수하다’란 말이 먼저 떠올랐어요. 또 계산적이지 않다. 열정적인 순정파다. 그런데 전 어떤 작품에 대해서, 혹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요약해보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정말 약해져요. 순간순간 정서나 느낌은 알겠는데, 그걸 말로 표현하기는 너무 힘들거든요. 제가 문학적인 면이 좀 부족한가 봐요. 저와 이야기하는 순간 실망스러워질텐데 어쩌죠.”

-작품의 함축적인 의미를 짧은 문장 안에 담아내는 건 글쟁이들도 쉽지 않다
“자기가 추구하고자 하는 걸 분명히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과정일 겁니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막연하게 알고 있으면 막연하게 표현 될 수밖에 없는 게 ‘연기’잖아요. 그래서 배우란 무궁무진하게 공부를 해야 하는 매력적인 직업이지요. 이 공부란 게 누군가 시켜서 해야 한다면 재미없을 텐데, 자신이 맡은 작품과 배역을 위해서 스스로 뭔가를 배우고, 공부하니 얼마나 즐겁겠어요?”



-래리의 대사 중에 ‘나 착한 거 잊지 마’란 대사가 강렬했다. 이 장면의 의미는?
“‘래리’는 어찌됐든 유쾌한 인간입니다. 슬픔을 감추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하는 인물이죠. 안나에게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받지 못해서 어떻게든 관심을 받고 싶어해요. 또 다른 의미론 내가 집착하는 사람이니 더 유쾌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거죠. 서브 텍스트에는 없을지 몰라도 전 그렇게 생각했어요. 상처가 많은 사람은 연민이 많아요. 잘 살아 보고 싶은 마음에 더 그렇죠. 그 대사 뒤에 래리는 의미 없이 가방을 끌고 퇴장하지만. 래리의 사랑을 유쾌하게 그리고 싶었어요.”

-다른 래리들과 확실히 다른 점이 댄과의 채팅장면이던데. 김영필 래리는 상당히 진지하게 채팅에 임하더라.
“저는 래리 콘셉트를 채팅 경험이 별로 없는 초짜로 잡았어요. 채팅은 몇 번 했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적인 오프라인 만남은 처음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렇게 시작하는 게 더 로맨틱할거란 생각도 했고요. 또 실제로도 채팅을 해 본적도 없고, 워드에 익숙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그랬나. 어설픈 타자 동작과 표정이 더 재미있기도 하더라.
“예전엔 배우가 입으로 직접 말을 하며 채팅 장면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말로 진행 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와, 회의 끝에 현재의 자막 장면이 나오게 됐어요. 자막 하나 하나와 배우의 손 동작 타이밍이 정확히 일치해야 장면이 완성돼요. 배우와 스태프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다 무너지게 되는거죠. 제가 성록이처럼 빠르게 타자를 치지는 못해도 타이밍을 맞춰서 그럴듯 하게(?) 타자를 쳐요. 특히 느낌표나 엔터키는 확실히 클릭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장면에서 의외로 관객들이 많이 웃더라고요.”

■ 슬픈 인간들이 한바탕 유쾌하게 노는 희비극 <클로저>

-‘댄’과 ‘래리’ 이 두 남자의 차이점은 뭘까
“글쎄요. 큰 차이점이 있을까요? 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아니 모르겠어요.”

-김 배우의 시각에서 보면, ‘앨리스’와 ‘안나’도 비슷한 인물인가
“비슷하니까 만나지 않았을까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나와 비슷한 사람, 닮은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잖아요. 디테일한 부분을 따지면 분명 다른 인물이겠지만 다들 상처받고 외로운 인물입니다. 또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한 인물들이구요. 슬픈 사연들이 있는 인물들이 서로 상처를 보듬어줘요. 또 생각대로 안 되니 다시 상처를 줘 고통스러워 해요. 작가의 입장에선 잘 살아보려고 하지만 잘 살지 못하는 네 명의 인간들에 대한 연민, 그런 것들을 담아낸 이야기 아닐까요?”



-엇갈리는 이들 남녀의 사랑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상처를 받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사랑의 상처 때문에 죽음까지 가지는 않죠. 작가는 죽음까지 생각하는 그런 소수의 인간에게 관심을 갖고 연민을 내 보여요. 그런 점에서 ‘앨리스’란 인물은 극적이기도 하지만 정말 슬픈 인물이죠. 죽음의 문턱에서 ‘댄’을 만나 살기로 결정했는데, 다시 ‘댄’으로 인해 죽음의 길로 가게 되죠. 그걸 보며 <클로저>의 주인공은 ‘댄’도 ‘래리’도 ‘안나’도 아닌 ‘앨리스’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댄’은 그 사건으로 다시는 ‘앨리스’에게 했던 행동을 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이 누군가의 죽음에 일조했다는 건 세상을 살면서 정말 경험하기 힘든 경험이잖아요. 인간이란 어리석어서 경험하고 나서 항상 후회해요.”

-극중에 앨리스가 댄과 래리에게 선물하는 ‘뉴턴의 요람’이 등장한다. 배우 개인적으론 이 작품에서 ‘뉴턴의 요람’이 함의하는 바가 뭐라고 봤는가
“‘뉴턴의 요람’이 가진 의미는 ‘ing' 현재 진행형입니다. 작용과 반작용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등 여러 의미들이 있지만... 제가 이해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확실하게 이해하진 못했어요. 배우가 ‘모른다’고 말 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아직 100%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 하는 거니까요. 때론 이해되지 않았던 게 어느 날 이해되기도 하고, 또 다른 작품을 만났을 때 이해가 되기도 하는 경험도 많았고요. 제가 표현하는 것 보다 관객의 감상이 더 재미있기도 하구요.”

-<클로저>는 슬픈 연극인가
“슬픈 인간들이 한바탕 유쾌하게 노는 희비극입니다. 아니 슬픈 코미디라고 봐요. 정말 대개 슬퍼요. 슬프면서도 유쾌한 점이 매력인 것 같아요.”

■ “소극장 100석을 채울 수 있는 배우”

지방에서 연극배우 생활을 하던 김영필은 2003년 서울로 올라와 박근형 연출이 이끄는 극단 골목길에 입단했다. 배우 스스로 “10년간 쉬지 않고 배우 생활을 했다”고 회고했다. <대대손손>, <청춘예찬>, <맨드라미꽃>, <서쪽부두>, <서울의 비>, <선착장에서>, <경숙이, 경숙아버지>, <돌아온 엄사장>, <백무동에서>, <포트>,<너무 놀라지 마라>, <디너>, <연애시대>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영화 <강철중>, <그놈 목소리>,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로맨스 조> 등에도 출연해 스크린에서도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중 한 명이다.

최근엔 스트린드베리의 <채권자들>에서 남편 ‘아돌프’역으로 출연해 소유욕이 낳은 충돌과 대립을 세밀하게 표현해 호평 받았다.



-배우는 선택 받는 존재이다. 그래서 더더욱 예민한 존재가 배우인 것 같다.
“배우들은 무대에 오르면, 저 사람이 날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 증오하는지, 짜증내는지, 썩은 미소를 보내는지 바로 알아요. 알아도 너무 잘 알죠. 사랑 받았던 배우라고 할지라도 그 무대, 그 순간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순간이 와요. 유명 연예인들이라고 다를까요? 무대는 배우가 혼자 와서 혼자 해결해야 할 공간입니다. 더군다나 연극배우들은 테크닉을 부리기 어려워요. 그래서 배우에겐 한 가지 노력 만이 아니라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날 것의 연극 무대가 두렵다는 배우들도 많다
“영화나 드라마는 배우를 예쁘고 잘생기게 보여주는 테크닉이 있어요. 카메라, 조명 외에 굉장히 많은 것들이 그런 역할을 하죠. 연극 무대도 조명이 있긴 하지만 그 배우만을 위해 맞춰주지는 않아요. 본인의 신체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해요. 그래서 테크닉을 내세우기 힘들어요. 다른 무엇보다 공연이 올라가는 그 시간, 그 무대에서 관객에게 감동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거죠.”

-현장성을 생명으로 하는 공연을 여러 번 보다보니, 여러 에피소드들이 발생하더라. 실제로 드라마나 영화의 NG처럼 연극 무대에서 ‘다시 갈게요’라고 말한 배우도 있었고, 조명이 나간 상황에서도 <헤드윅>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배우 조승우의 경우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

“라이브가 생명인 연극에 ‘다시’가 어디 있어요? 꽉 막힌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조명이 나가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배우라면 촛불을 켜든...뭔가를 갈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선착장에서>란 연극을 할 때 조명이 나간 적이 있어요. 배우들은 어둠 속에서 계속 대사를 했어요. 조명팀은 옆에서 계속 조명기를 고치고 있었고요.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불이 들어왔던 경험이 있어요. 제가 아는 어떤 배우는 상대 배우가 나와야 할 장면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아, 홀로 1인 2역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하더군요. 어찌보면 이런 것도 또 하나의 재미라고 봐요. 관객은 라이브의 묘미를 즐긴 거고 배우와 스태프는 열악한 상황을 해쳐나가는 작은 방법도 알게 됐고요. 물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미리 미리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고는 예고치 않게 다가오기도 하잖아요.”



-연극을 흔히들 가난한 예술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 배우는 인터뷰 내내 배우는 매력적인 직업임을 말했다.
“연극배우들요?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건 맞아요. 사실 드라마나 영화 쪽으로 갔다가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오지 않는 건 거기 생활에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한번 그 쪽에 발을 내딛으면 다시 오기가 쉽지 않아요. 그 쪽도 연달아 다음 일을 하지 않으면 다음이란 게 없어요. 사람들이란 게 그렇잖아요. 무대나 브라운관에 항상 보여야 활동하는지 알아요. 두세 번 거절하다보면, 배우를 찾는 횟수도 줄어들게 되요. 많은 사람들이 연극판을 떠나 ”연극을 정말 사랑한다. 연극은 위대하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론 영화만 하고 있어요. 스케줄이 이미 잡혀있어서 빼기가 힘든 거죠. 물론 정말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하면 모를까? 쉬운 일이 아니죠.

전 배우에겐 인연이 중요한 거 같아요. 연극 작업하던 중 일일사극 제의가 왔지만 두 가지 작업을 병행하지 못할 것 같아 거절했어요. 개런티 혹은 유명세를 생각하면 당연히 드라마 출연을 했겠죠. 그런데 지금 상태에선 제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기회가 되면 또 저를 쓰겠지’란 생각을 해요. 좋은 인연이 됐으면 잘 하는 것. 내 몫을 잘 하는 것. 그 점이 배우에겐 중요하고요.”

김영필은 “소극장 100석을 채우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마지막 바람을 전했다. “그 전에도 채웠지 않았냐고요? 그건 저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여러 배우들의 힘으로 채운 겁니다. 전 거창하게 포장된 배우론 보다 ‘소극장 100석을 채우는 배우’가 되었음 해요. 또 중극장 400석을 채우는데 도움이 되는 배우가 되었음 해요. 때 되면 보는 영화가 아닌 연극 무대 객석을 채울 수 있는 배우는 아무나 될 수 없어요. 배우 본인이 연기만 잘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유명 연예인이라는 이름 값 만으로도 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연예인 이름만 가지고 극장을 찾아왔는데, 실망을 안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이 봤잖아요. 한 가지만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은 배우에게 에너지를 주는 존재잖아요. 관객의 에너지가 없으면 배우도 기운이 없게 돼요. 관객이 없는 무대는 의미 없잖아요!”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악어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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