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포일러 에티켓을 보는 두 관점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놀랍게도 많은 관객들이 이정재가 연기하는 수양대군이 세조라는 사실을 모르고 영화 <관상>을 봤다고 한다. 그들은 아마도 수양대군 옆에서 조언을 하는 얼굴 없는 책사의 이름이 밝혀지는 장면에서도 무슨 뜻인지 몰라 덤덤했을 것이다.

"왜 그들이 그렇게 무식했나?"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예전에 상식이었던 것이 지금도 상식이라는 법은 없다. 국사 교육을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니, 지금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와 이전의 국사는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적어도 왕들의 순서를 암기하고 그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왕위에 오르고 어떻게 죽었는지는 이전처럼 중요한 지식은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당연한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두고 싶다.

그래도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이야기도 모르고 영화의 관객들을 놀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막을 수는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여전히 기초상식이다. 계유정난은 장희빈 이야기처럼 드라마에서 골백번 우려먹은 이야기인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바로 얼마 전에도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있지 않았었나. 물론 그 드라마에서 그려진 이야기는 거의 창작수준이었으니 그 드라마를 봤어도 둘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걸 모를 수도 있지만.

여기서 이야기는 스포일러 에티켓으로 넘어간다. 국사시간마다 졸았고 역사 드라마 따위는 보지 않아 계유정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관객에게 "수양대군이 왕이 된다!"라고 알려주는 것은 에티켓에 어긋나는 일일까?

생각보다 단순하지는 않다. 물론 이 영화는 관객들이 계유정난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이 있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타이타닉>이 관객들이 타이타닉이 끝에 가서 침몰할 것이란 걸 알고 있을 거라 가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그런 기초 지식이 없는 관객이 보는 <관상>과 그 정도 기초 상식은 있는 관객들이 보는 <관상>은 전혀 다른 영화이다.



감독이 의도한 것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하지만 전자가 후자보다 나쁜 영화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과 같은 시대에 한국 영화를 보러오는 관객들은 늘 한국인이라는 법은 없다. 그렇다면 첫 번째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일 것이고, 그들의 영화경험 역시 인정해주어야 한다. 십자군 역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킹덤 오브 헤븐>을 보러 온 한국 관객들이 무시당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같은 이유로 계유정난 정도는 당연히 알아야 하는 상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결말을 말하지 말아요!'라고 외치며 귀를 막는 관객 앞에서 '수양대군이 세조다!'라고 외칠 생각은 없다. 그 관객이 내가 지금 경험하기 불가능한 특별한 경험을 하는 걸 막고 싶은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상식이 된 반전들이 있다. '브루스 윌리스는 **이다.', '****가 범인이다', '로즈버드는 **다', '노먼 베이츠는 *****다', '**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다'... 일상 생활에서 이 모든 것들에 신경을 쓰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그런 제약 속에서 리뷰를 쓰는 것도 어렵다. 추리소설의 경우 '이 리뷰는 과 <경관혐오자>의 반전을 밝히고 있습니다'라고 스포일러를 건다면, 그 경고 자체가 스포일러일 것이다. 여기에 대해 일일이 지적하며 스포일러 경고를 요구한다면 서로의 인간성이 모두 망가질 것이고, 대화는 뻑뻑해질 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자. 지금도 수많은 관객들과 독자들이 아름답게 텅 빈 정신으로 태어나 우리가 이미 본 고전들을 볼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리 우리 문화 속에서 그런 고전의 내용이 상식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그들에겐 아니다. 운 좋게도 나는 <싸이코>와 <로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사전 지식 없이 보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절말 어려야 했다) 그 첫 경험을 소중히 여긴다. 두 작품 모두 결말을 알고 봐도 재미있는 작품들이지만 그래도 첫 번째 충격은 중요하다. 운좋게 스포일러를 피하고 여기까지 온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과 독자들의 귀에다가 이 작품의 스포일러를 터트릴 생각은 없다. 나는 그들이 일부러 요구하지 않더라도 조용히 입을 닫고 첫 경험을 하는 그들을 부러워할 것이다.

이 두 관점은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말을 하는 동시에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대부분 에티켓이 그렇듯 상대방을 배려하며 실제 세계에서 융통성 있게 적용을 하려 하면 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세상엔 한 가지 답만 있는 게 아니다. 너무 뻑뻑하게 굴지나 말자.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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