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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쓸 만하니 쓰고 작가는 아프니까 쓴다”
기사입력 :[ 2013-10-03 17:26 ]


[인터뷰]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작가 김광탁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저는 우리가 늘 먹는 ‘밥 먹는 이야기’를 글로 쓰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도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아픈 아버지를 위한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거대 담론도 없고, 인간 밑바닥의 더러운 것을 긁어내서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작가도 아니죠. 이야기꺼리가 없는 작가, 임팩트가 없는 작가 중 한명 일 겁니다. 평범한 일상에 놓인 유치한 삶의 결이 신선하게 느껴졌으면 해요. 전 ‘맑고 가벼운, 그것도 깃털처럼 가벼운 작가’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다른 설명은 다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의 김광탁 작가를 만나 그가 지나온 삶의 결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을 위한 위로의 굿 한판,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김광탁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연출 김철리)는 간암 말기의 아버지를 지켜보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제6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이다. 병든 아버지를 등에 업고 마당을 걷는 철없던 아들의 이야기. 그들을 바라보는 서러운 어머니의 이야기. 반 백 년을 같이 살았어도 생의 마지막 순간엔 ‘당신에게 할 말이 많은데’ 그 말만 되풀이 하던 늙은 부부의 이야기다. 서울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에서 오는 6일까지 공연된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좌석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관객 반응이 좋다. 극을 쓴 작가로서 기분은 어떤가
“저는 그저 낼 모레가 여든인 신구 선생님이 달빛이 비친 무대에 걸어 나온 뒤 툇마루에 앉아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그렇게 툇마루에 앉아서 ‘아야~아야’ 라고 말 하는 순간이 예술이지. 또 뭐가 예술이겠어요? 우리시대의 거장 배우 풍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느꼈어요.”

-무대화 되고 나서 더 행복했나보다.
“정말 이렇게 행복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모든 배우가 훌륭하고 좋았어요. 제 희곡의 토씨 하나 안 고치고 연출이 무대화 해주셨고, 신구, 손숙 두 선생님들의 호흡으로 작품을 끌고 갔어요. 저도 못 찾는 숨은 내용들을 배우들이 찾아내기도 했고요. 그분들을 바라보며 행복했습니다.”

-타이틀 롤이 세 명이다. 어머니 ‘홍매’에 대해 말하자면
“손숙 선생님은 그야말로 배우세요. 울음이 없는 엄마인데 후반에 ‘이 놈의 새끼들’ 말하며 ‘꺼억’ 우는데, 선생님의 작은 삶의 결이 느껴졌어요. 사실 연습 땐 울음을 보이지 않았는데, 무대에서 그 모습 보니 정말 ‘대가 시구나’ 란 걸 느꼈어요. 존경할만한 배우입니다.”

-작품 제목 속 ‘나’이자 작중 화자 및 삼류 연극배우인 아들 동하는 작가 자신이 투영돼 더 각별하게 다가오지 않나?
“지인들이 보고 ‘딱 너 닮았다’고 말해주기도 했는데, 승길이가 들으면 화낼지도 모르겠네요. 승길이가 저와 달리 잘 생겼는데.(웃음). 처음엔 신구 배우의 아들이라고 하면 좀 더 나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어요. 워낙 아끼는 후배이기 때문에 더더욱이요. 승길이가 실제론 40대 초반이긴 하지만 동안이잖아요. 20대 초반 얼굴부터 40대 얼굴까지 다 보이는 배우이죠. 즉 숫자로 표기되는 실제 나이가 아닌, 연기의 나이가 많은 배우라고 할 수 있죠.

‘동하’라는 역할이 쉽게 소화되지 않은 배역입니다. 각을 잡고 소리 지르는 배역이 더 쉽잖아요. ‘동하’는 과도한 액션이 없는 역이죠. 저런 배역을 승길이 만큼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소화하기가 쉬울까요. 무대에서 본 승길이는 전혀 어리게 느끼지 않았어요. 좋은 배우죠. 달밤에 아버지 업는 장면까지 다 좋았어요.“



-아들에게 업힌 늙고 병든 아비의 모습이 여러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새끼 등에 업힌 아비의 우주와, 아이의 우주가 만나는 장면인데, 좋으면서도 희곡을 쓴 저의 부족함이 보이기도 합니다. 재공연 때는 대사를 빼고 아버지와 아들이 꼭 껴안는 장면으로 그려내고 싶어요. 아버지와 홍매의 울림 장면은 있는데, 아버지와 나와의 울림 장면은 제가 잘 구축하지 못한 것 같아요. ‘평생 한 번도 서로를 제대로 안아본 적 없는 부자의 어색한 포옹 장면을 그려낼 걸’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릿 속을 맴돌았어요.”

-연극을 보고 나면,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라 감정 추스르기가 힘들지는 않나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할까요. 지인들은 내가 그러는데 더 슬퍼보인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글로 써내서 그런지 이전보다 더 좋아요. 꿈에서도 안 나타나신 거 보면 아버지가 좋은 곳으로 가셨나봐요.”

-<미운남자>랑 <스칼렛>도 그렇고 재공연에선 제목을 바꾸기도 하던데, 혹시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도 제목이 바뀔 가능성이 있는가
“<미운남자>의 원제는 <황소 지붕위로 올리기>인데, 최일화 선배가 주인공으로 오면서 제목이 바뀐 경우입니다. 배우 개인적인 사연도 담아내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또한 그 작품은 함축적 의미가 담긴 제목이라 바꿀 수 있었지만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작품 자체에 관한 제목이라 바뀔 수가 없죠.”

-대학로에서 오픈런으로 최일화 배우와 함께 <미운남자>도 공연 중이다.
“17년 전 무명일 때 만난 게 인연의 시작입니다. 당시 저는 스물아홉, 일화형은 서른아홉. 지금도 무명이지만...연극판에서 포스터 붙이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형이라고 하기엔 나이차가 많은 10년 선배님이죠.

연극 <미운남자>는 극단 혜화 최일화 대표가 무명의 배우를 다 무대에 세우겠다고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본인이 배우로서 힘든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더 의미가 남달라요. 현재 60여명의 배우들을 무대에 세웠는데, 총 300명을 무대에 세우겠다는 계획이세요. 그런데 개런티랑 극장 임대료 값을 무시할 수 없잖아요. 임대료만 해도 한 달에 삼천만원인데, 그걸 다 형이 방송이나 영화 작업으로 벌어와서 연극에 쏟아붓고 있어요. 조금 뒤에 더 자리 잡은 뒤 이번 프로젝트 진행하자고 해도 소신이 굳건하시네요. 지방 공연도 하면서 계속 진행 중인 프로젝트입니다.”

■ “기자는 쓸 만하니 쓰는 거고, 작가는 아프니까 씁니다”

희곡 <꿈꾸는 연습>으로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광탁 작가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마차>, <아비>, <백구사, 천년 광부의 노래>, <누이야 큰방 살자>, <능소전>, <물고기 여인>, <갯골의 여자들>, <오장환과 이성복이 만나면> 등을 발표했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김광탁 작가의 7년만의 신작이다.

-연출이든 다른 작업은 했지만, 작가로선 오랜 만에 보게 됐다.
“아무도 안 알아줘도 작가란 직업이 제일 좋아요. 그런데 작가가 가장 뜨거워야 할 3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를 열심히 놀았어요. 그렇게 잊혀진 작가가 됐어요. 중간에 짧은 글 청탁 같은 게 들어오기도 했는데. ‘전 한 줄도 못쓰겠다’고 하고 거절했어요. 거절이 아닌 진짜 한 줄도 쓰지 못하는데 어떡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글이 쓰고 싶어졌는가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사흘 만에 쓴 글입니다. 그것도 복숭아 한 박스만 들고 산 속으로 들어가 3일 내내 복숭아만 먹고 썼어요. 다 쓰고 나니 밥이 먹고 싶어지더군요. 그래서 식당가서 반찬도 안 먹고 밥만 먹고 왔어요. 그 다음에 ‘차범석 희곡상’에 응모했어요. 상금이 아닌 무대화가 목적이었으니까요. 급하게 알아보니, 그 다음날이 마감이더군요. 그래서 정말 시놉시스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응모했는데, 이렇게 당선되고, 무대에도 올려지게 됐네요.”

-자꾸 캐물어서 미안한데,,,아버지의 죽음이 7년간 글을 쓸 수 없었던 김 작가의 세계에 뭔가를 던진 건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달 보름 간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지냈어요. 그 다음엔 어떻게 아버지 없이 하루하루를 살 수 있지? 그런데 주변엔 아버지 없어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았어요. 한 명이라도 미친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없더라고요. 당시 그런 사실들이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글을 쓰고 싶어졌어요.”

-희곡에선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사이 사이 보였다. 아버지와의 사이가 각별했는가
“아버지는 제가 판검사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재수 삼수를 해서 서울예전을 들어가게 됐어요. 전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무대가 주는 희열에 빠져 영화보단 연극을 보며 막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요. 아버진 제가 연극하는 거 너무 반대하셨죠. 제 연극도 안 보러 오시고, 시골에도 못 내려오게 하시고요.”

-아버지에게 본인이 쓴 연극을 보러 오시란 말은 건네 봤는가
“지금 생각하면 말이라도 건네 볼 걸. 그랬네요. 최근에 삼척에서 <미운남자> 공연을 하러 갔는데, 정말 제 아버지 연배 되는 어르신들이 보러 와서 엄청 웃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고 반대로 전 엄청 울었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셨음 이렇게 웃으면서 연극을 보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까...울음이 나더군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버지가 제가 연극 작업 하는 걸 싫다고 하시면서도 제 희곡집도 몰래 읽어보시고, 신문기사도 스크랩 해놓으셨어요. 그러다 돌아가시기 5년 전부터 너무 너무 각별한 사이가 됐어요. 남들은 돌아가시기 전에 정 뗀다고 그렇게 싸운다고들 하던데, 저는 사이가 너무 좋아지고 나니 가버리셨어요...아버지가 첫 희곡집 표지에 들어갈 붓글씨(클 ‘광’(光)에 헤아릴 ‘탁’(度)도 써서 보내주셨어요. 그 뒤로 제 원래 이름인 김동기 대신 김광탁이란 이름을 쓰게 됐어요. ”

-어떤 이야기들을 쓰고 싶은가
“‘존재’에 대한 이야기도 쓰고 싶고...저도 제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쓸 건지 궁금해요. 어느 날 갑자기 쓸건데...아직은 모르겠어요.”

인터뷰가 끝난 후 김광탁 작가가 문자를 보내왔다. “기자는 쓸 만하니 쓰는 거고, 작가는 아프니까 씁니다”라는 문자였다. 짧지만 상당히 아픈 문자였다. 스스로 “별거 아닌 뻔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라고 했지만 그 뻔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숨을 멈추고 공감의 공기를 나눠 갖는 그 순간이 다시금 아프게 기다려진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정다훈 기자, 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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