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왜 그 동안 황정음을 의심했을까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살아생전 황정음을 따라 눈물을 쏟게 될 줄이야. MBC <지붕뚫고 하이킥>이며 <우리 결혼했어요> 시절만 해도 상상치도 못했을 일이 아닌가. 그런데 웬걸, 요즘 KBS <비밀>을 보며 매회 울고 있다. 수감 도중 낳아 애지중지 길러온 아들 산이를 영문 모를 음모에 의해 빼앗긴 유정(황정음)이 아이 아버지 도훈(배수빈)에게 전화를 걸던 날에는 다행히 곁에 아무도 없기 망정이지 그야말로 목 놓아 울고 말았다. 어찌나 감정이 이입이 되던지, 따라 울지 않고 베길 재간이 있어야지.

유정이 애써 마음을 다스려가며 통 사정을 했건만 ‘오빠’ 소리가 들리자마자 도훈은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리고 결국 유정은 폭발하고 만다. 살인 누명을 대신 써준 것도 억울한 마당에 아이를 빼앗겼다는데 아비란 위인이 그렇게 나 몰라라 할 수 있다니. 전화기를 잡고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도, 끝내 정신 줄을 놓고 발악을 하며 통곡하는 모습도, 또 독방에 갇혀 넋이 나가 부르는 노랫소리도 천생 아이 잃은 어미 그대로지 뭔가. 연기력 부족으로 도중하차 수순을 밟았던 <겨울새>(2007) 때의 연기를 떠올려 보면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사이 황정음이 믿고 보는 연기자로 성장해준 것이다.

사실 첫 회 첫 장면에서부터 놀랐었다. 법정신이었는데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면서 눈물범벅이 만들어지는, 여배우로서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그림. 죄 하나 없이 감옥을 간다는 것이, 그것도 5년이라는 형량이 어디 받아들이기 쉬운 굴레이겠나. 그에 따른 원망도 허탈함도 아닌, 두려움과 서러움이 교차되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고스란히 유정의 얼굴에 담겨 있었는데 그 순간 ‘황정음이 이번엔 아이 엄마 역할이라고? 과연 잘 해낼까?’, 내 머릿속의 물음표들이 한낱 기우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5회, 유정이 산이의 사망 기록을 확인하며 절규하는 장면에서, 또 손수 케이크를 만들어 아이의 흔적을 찾아 강가로 나가 오열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금 그녀를 따라 울 수밖에 없었다. 노란색별과 바람에 흔들리는 네 개의 촛불이 왜 그리 애잔하던지. “엄마가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많이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보고 싶어. 만지고 싶고.” 그녀는 고스란히 아이 잃은 엄마, 강유정이었다.



생각해보니 황정음 그녀는 매번 나의 쓸데없는 걱정, 선입견들을 보란 듯이 뒤집어 왔었다. MBC <내 마음이 들리니> 적에도, <골든타임>과 SBS <돈의 화신>, 또 훨씬 전 <자이언트> 적에도. 그때그때 연기부터 말투, 스타일링까지, 여러모로 최선을 다해오지 않았던가.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는 단벌이다시피 늘 수수한 옷차림으로, <골든타임>에서는 인턴 역할에 맞게 단화와 단출한 스타일로, <돈의 화신>에서는 뚱보 분장도 서슴지 않아가며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애써왔던 것이다. 이번에도 짧게 정리된 그녀의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황정음! 그럼에도 왜 나는 그녀를 믿지 못했을꼬. 반성을 해본다.

그녀는 드라마 홍보 차 출연했던 한 예능에서 자신이 선택한 드라마마다 잘 되는 이유로 타고난 촉을 꼽았지만 나는 감보다는 스스로의 노력과 거기에 인복이 보태졌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의 연기가 아무리 진실 되었을지라도 받아주는 연기가 어설펐다면 말짱 도루묵이었을 테니까. 그녀는 늘 상대 배우 복이 있었고 특히 이번 <비밀>에서는 양희경, 강신일을 비롯한 중견 배우들의 현실감 있는 연기가 마음에 와 닿는데 이렇듯 연기 걱정 안 하며 맘 편히 볼 수 있는 드라마도 흔치 않으리라.

어쩌면 진부하다 싶은 구성의 이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이제 <비밀>에서만큼은 그만 울었으면 좋겠다. 유정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러기엔 산 넘어 산이지만 끝까지 한번 유정의 행복을 빌어보련다. 아, 마지막으로 지적을 하나 하자면 유정이 출소하던 날 머리색이 너무 밝았다는 점,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목 드라마 전쟁에 불이 붙었으니 사소한 한 가지로 인해 꼬투리를 잡히는 일이 없도록 스텝들이 일거수일투족 신경을 써야 옳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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