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페라 <운명의 힘> 바리톤 석상근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무대는 정말 벗은 몸 그대로를 보여주는 장소 같아요. 아무리 감추려도 해도 감출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준비가 부족해선 안 돼요. 최선을 다한 공연이 끝난 뒤에는 뒤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해요. 진정한 오페라 가수라면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객관적인 시각에서 내가 어떻게 노래했는지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성악가들의 소리와 연기가 어땠는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는 어땠는지, 조명과 의상 및 무대의 조화는 어땠는지 반드시 모니터해야 해요. 그래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거든요. ‘내가 왜 이렇게 했지’, ‘이런 점이 부족했구나’ 생각하며 모니터를 하다보면 실력이 늘게 돼요. 그러니 무대에선 항상 겸손할 수밖에 없어요. 나이, 연륜, 경험과 상관없이, 또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겸손한 마음이 없으면 안 돼요. 매번 공연할 때마다 무대가 정말 큰 스승이구나 하는 걸 느껴요.”

대구국제오페라 축제 개막작 <운명의 힘> 공연을 끝낸 바리톤 석상근을 만나 긴 대화를 나눴다.

■ “노래 연습은 물론 연기 연습이 생활의 일부”

-2011년에 국립오페라단 <가면무도회>로 국내 데뷔했다
“전 성악가들 혹은 관련자들 쪽에서만 이름을 알 뿐,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성악가입니다. 제가 뉴욕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나, 빈슈타츠 오퍼(빈 국립 오페라극장) 같은 큰 무대에 섰던 가수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서울권 대학 출신도 아닌데, 감사하게도 국립오페라단 작품으로 데뷔하게 됐어요. 이번 대구국제오페라 축제 <운명의 힘>도 그렇고 <가면무도회>도 제가 데뷔하지 않았던 작품이에요. 그래서 콜이 온 것에 감사하면서도 긴장이 많이 됐어요. 중압감이 있었죠. 욕심내지 않고 제가 하던 페이스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신경 썼어요.”

-<가면무도회>도 그렇고 <운명의 힘>도 소프라노 임세경씨랑 같은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 이번엔 같은 날 출연하기도 했다.
“임세경씨는 비오티 콩쿠르에서 처음 만난 적이 있는데, 이렇게 작품 인연까지 이어지게 됐네요. 이번 작품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시원시원하니 너무 좋으신 분이네요. 기분 좋게 서로의 장단점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아 많은 도움이 됐죠.”

-<가면무도회>에서 처음 봤는데, 매초 매 순간 혼이 살아있어 상당히 인상적인 가수로 기억하고 있다. 실력도 좋았지만 실제 인품도 좋은 사람일거라는 인상을 받아 인터뷰 하고 싶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동양인인데다 체격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오페라도 비주얼 시대라고 하지만 부모님이 주신 외형을 어떻게 바꿔요. 가수로서 노래를 잘 하는 방법 밖에 없어요. 그리고 연기에 신경 쓰는 것. 무대에 선 아티스트라면 관객을 생각하는 마인드가 있어야 해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잖아요. 관객들과 호흡을 나눠 갖는 게 있어야 하죠.”



-국내 관객들이 소리 큰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노래만 하는 성악가들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소리만 지르는 성악가들은 저도 원하지 않습니다. 이모션이 있는 성악가가 되어야 하지 않나요? 그렇게 생각해요. 관객들은 돈을 낸 만큼, 시간을 투자한 만큼 합당한 감동을 받기 원해요. 가수들이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죠. 오페라는 ‘축구 경기’ 같아요. 축구가 혼자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11명이 다 잘해야 하듯이, 주역들만 잘한다고 해서 되지 않고, 오케스트라, 지휘자, 연출, 의상, 조명 팀 등이 하나가 됐을 때 훌륭한 작품이 나오고,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남게 돼요. 만드는 사람 모두가 책임이 있는 거죠.”

-혹시 소리만 내는 후배 성악가들을 보고 조언을 해주는 편인가
“조언을 해 달라고 하는 후배가 있으면 해 주지만, 원하지도 않는데 나서서 이야기하는 편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국물을 먹기 위해선 숟가락이 필요하죠. 그래서 필요한 상대에게 숟가락을 건네주면 감사해합니다. 그런데 본인에게 숟가락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숟가락을 건네면 어떨까요? 괜한 걸 준다고 생각하며 귀찮아하겠죠. 비유적 표현이긴 하지만, 몇 년 걸려 숟가락을 얻은 저 같은 사람에겐 숟가락이 정말 소중해요. 이게 다 무대에서 얻은 경험입니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이 파듯이 간절한 사람에게만 소중하게 느껴지는 게 있어요.”

-무대 위 연기가 자연스럽다. 연기를 따로 배운 적이 있는가
“오페라 학교에서 특별히 배우진 않았어요. 오히려 거울 보며 연습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제가 제 모습을 못 보니, 전신 거울 앞에서 노래 연습은 물론, 웃는 모습을 연습해요. 노래 연습은 물론 연기 연습이 생활의 일부입니다.”

-독일에서 오페라 작업 할 때도 액팅 코치가 따로 없이 연출이 대부분 지시하는가
“연출은 커다란 그림 안에서 지시를 해 주세요. 디테일한 것은 가수 스스로 공부해야 해요. 연출이 신경 써야 할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잖아요. 이쪽도 신경써야 하고, 저쪽도 신경써야 하고, 그래서 성악가 본인이 캐릭터 연구를 하지 않으면, 그저 뻣뻣하게 서서 노래만 하다 지나가게 되는거죠. 모니터링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어요. 비디오 통해서 제 연기를 봐야 해요. 무대 위에서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떻게 노래했는지를 보는 게 더 중요해요.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동작이 어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면 연기 훈련이 안 된 거죠. 오페라는 종합예술인데, 소리와 연기 모두 조화를 이뤄야죠. 그렇지 않으면 결국 소리쟁이 밖에 되지 않지요. 제가 잘 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성악가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이런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제가 살고 죽는 곳은 무대...사막에 오아시스 같은 곳”

바리톤 석상근(아티스트 네임 마테오 석)은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밀라노 시립음악원과 피에트로 마스카니 국립음악원을 졸업했다. 이탈리아 비오티 (베르첼리)국제성악콩쿠르 2위 수상을 시작으로 스페인 자코모 아라갈, 이탈리아 레나타 테발디, 발세시아 무지카, 움베르토 조르다노, 줄리에타 시모나토, 레온 카발로, 테르니 등 수 많은 국제성악콩쿠르에서 1위를 한 실력 있는 성악가다. 그 외에도 티토 곱비 국제성악콩쿠르에서 최고의 바리톤에게 주어지는 영예의 특별상을 받은 바 있다.

독일 뮌스터 오페라 전속주역가수를 역임한 그는 <피가로의 결혼>으로 데뷔 후, 이탈리아와 유럽에서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나부코><아이다><멕베드><돈 카를로> 등 베르디 작품에서 두각을 드러낸 그는 특히 <나부코> 공연 이후 현지 언론의 호평은 물론 전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또한 루제로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푸치니의 <라 보엠>과 <나비부인>,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바그너의 <파르지팔>, 알반 베르크의 <룰루>, 야나첵의 <카티야 카바노바>, 풀랑의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등 그 외에도 다양한 레퍼토리에 도전했다.

2013/14 시즌 이탈리아, 독일, 폴란드 등 유럽지역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루나백작,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진주 조개잡이>의 어부 주르가, 지오르다노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의 카를로 제라르로 무대에 설 예정이다.

-성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가
“2남 4녀 중의 막내인데 삼수를 해서 음대에 들어갔어요. 중학생 시절 교내 합창단을 한 적은 있지만 성악을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고 3 시절, 테너 파트로 성악을 먼저 시작한 친구가 제 노래를 들어보더니, ‘너 목소리 좋은데 성악 해 볼 생각 없냐?’란 말을 했는데, 그게 계기가 됐어요. 친구가 그냥 ‘툭’ 던진 말일 수도 있는데, 전 그때부터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 드렸더니 “너 미쳤냐”란 말이 바로 나왔어요. ‘그 험한 길을 왜 가냐?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죠. 그런데 전 이미 마음을 먹은 상태라 계속 도전했어요. 늦게 시작해서 시간이 더 걸렸어요. 재수까진 이해하겠는데 삼수를 한다고 하니 집에선 성악의 ‘성’도 꺼내지 말라고 할 정도였는데 전 그럴수록 너무 간절해지더군요. 그래서 노래방, 세차,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몰래 음악 레슨을 받으러 다녔어요. 합격 했을 땐 정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구요.“

-이태리에서 공부하고 독일에서 활동 중이다.
“이태리에서 7년간 있다가 유럽으로 갔어요. 두 나라의 문화를 접하다보니 언어적 어려움이 많았어요. 이태리어와 독일어 공부를 많이 했죠. 또 그 쪽은 에이전시가 아니면 극장 오디션 자체를 보기도 힘들어요. 오디션 정보를 주지 않는거죠. 그러던 중 실력을 인정 받아 극장 소속으로 무대에 서게 됐어요.”

-해외에서 활동하는 게 쉽지 않다. 성악가로서의 삶이 행복한가
“무대는 저에게 에너지 원입니다. 마치 사막을 지나다 만나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 무대입니다. 물론 거기서 ‘크리틱’으로 난도질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요. 좋은 비판, 나쁜 비판도 있겠지만, 결국 제가 살고 죽는 곳은 무대입니다. 그래서 더 가족 같고, 친구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



■ 음악과 연기가 하나가 되는 바리톤 석상근

-어떤 성악가가 되고 싶나
“욕심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전 음악과 연기가 하나가 되는 바리톤이 되고 싶어요. 노래 뿐 아니라 그 가수의 캐릭터를 보게 하도록 만들어야지요. 마치 영화를 보듯이 몰입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관객들이 그렇게 느낀다면 더 없이 좋겠지요. ”

-음악과 연기가 하나가 되는 바리톤이라고 하니 바로 박정민씨가 떠오른다
“정민씨는 콩쿠르에서 자주 만났던 분입니다. 저희 둘 다 콩쿠르 나가면 ‘ 또 왔어’ 할 정도로 성악가들이 경계하기도 했어요. 저희 둘다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콩쿠르에서 상을 탔었어요. 정민씨는 경쟁자로 만났지만 배움을 알려 준 성악가입니다. 사람이 시기, 질투하면 상대에게 배울 수가 없어요. 한 사람이 100가지 모두를 가질 순 없잖아요. 그런 마인드가 없이는 안 좋은 부분은 계속 안 좋아질 수 밖에 없어요. 그릇이 큰 성악가가 진정한 성악가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고집도 있지만 상대의 음악도 인정해 줄 수 있는 그런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봐요.

갑자기 떠오른 일화인데요. 빌바오 콩쿠르에서 정민씨가 3등을 하고 전 본선까지 가서 아무 상도 받지 못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가 유학 6년차였는데, 정민씨가 제 옆자리에 앉아있었어요. 결과가 발표되는데 제 이름이 안 불려지니까, 갑자기 제 다리를 꽉 잡는 거였어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는데, 만감이 교차하더라구요. 경쟁자였지만 절 위로해줬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고마웠던 기억이...“

-박정민씨도 인터뷰 한 적 있다. 두 분 다 정말 콩쿠르를 많이 나간 것 같다.
“콩쿠르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많은 걸 배우게 돼요. 전 베르디아노 국제 콩쿠르를 5년간 도전 한 적이 있어요. 본선까진 가는데 계속 떨어지는 겁니다. 주변에선 한번 떨어지면 안 나가는데 ‘넌 정말 독하다’는 말 까지 했어요. 정민씨는 베르디 아노 콩쿠르에서 2등상을 받았죠. 그런데 제가 4번째 도전했던 때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테너 호세 카레라스가 절 격려해줬어요. ‘노래를 못해서 떨어진 게 아니다. 심사위원들의 평점이 동일하게 높아야 우승할 수 있는 콩쿠르이다. 힘을 내라. 충분히 훌륭한 바리톤으로 활동할 수 있으니 기죽지 말고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라’는 말을 했어요. 그 말이 큰 힘이 됐어요.”



-해외 콩쿠르는 심사평을 공개하지 않는가. 혹시 심사위원들에게 본인이 떨어진 이유에 대해 직접 물어보진 않았나
“대부분 심사평은 공개하지 않아요. 저 역시 자존심이 있어서 매번 물어보진 못했어요. 몇몇 콩쿠르는 물어보기도 했는데, 베르디 콩쿠르는 물어보지 못했어요. 저와 베르디가 안 어울리나 보다는 식으로 스스로 낮게 평가하게 될까...하는 마음이 은연 중에 있었나봐요.”

-베르디아노 콩쿠르가 본인에게 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수차례 도전한 건가. 그런데 왜 다섯 번 도전하는 것으로 끝냈는가.
“나이제한에 걸려서 더 이상 도전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베르디 콩쿠르에 더 애착을 가졌던 이유는 베르디아노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리톤이라면 베르디를 위해 태어난 바리톤이란 평을 듣는 게 엄청난 영광입니다. 그런 컬러를 가지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게 베르디아노 국제 콩쿠르 상이구요. 물론 상은 받지 못했지만, 그 5년이란 세월동안 베르디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베르디 아리아는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베르디가 원하는 소리와 테크닉은 어떤 건지 콩쿠르 도전을 통해서 공부한 거죠.”

-성악가들에게 실력 말고 중요한 게 뭘까
“성악가들에겐 판단력이 중요해요. 흔히 레퍼토리라고 하죠. 이 레퍼토리를 해 낼 수 있겠다 없겠다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 ‘자기 컬러와 맞지 않는데 왜 했을까? 소리는 좋지만 어울리지 않아. 안맞아’ 란 리뷰가 나오면 문제가 되는거죠. 그런 내공을 쌓아야죠."

-성악가들의 내공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젊은 성악가들은 ‘외공’ 즉 힘으로만 소리를 밀어서 내려고 해요. 하지만 그게 좋은 소리가 아니잖아요. 과일이 익지 않은 소리와 마찬가지죠. 연륜에서 나오는 소리는 젊은 사람이 흉내를 못 내죠. 삶이 무대에 옮겨지는 건데. 성악가들의 내공은 무대에서 배우고, 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키워지는거죠. 무대에서 끊임없이 부딪쳐야죠. 전 멈추지 않는 ‘무대란 기차’를 탄 겁니다. 2시간 30분 혹은 3시간 공연을 위해 똑 같은 걸 계속 반복하며 연습해요. 반복하면서 깨달음이 와요.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그런데 그게 싫다면, 성악을 하지 말아야죠. ”

석상근은 ‘살아온 삶이 연기와 소리에 묻어나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평상시에 말하는데 목에 힘을 주면서 말하는 사람을 싫어해요. 대개 본인을 돋보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 태도를 취해요. 하지만 전 무대 위에선 바리톤 발성과 연기가 하나 되기 위해 힘들어도 되지만, 평상시에도 그렇게 목소리를 깔고 말하는 건 시건방진 태도라고 봐요. 대가는 아무에게나 대가라고 하지 않아요. 대가는 평상시 삶이 똑같아요. 최고는 본인이 판단하는 게 아닌 남이 이야기 해주죠. 권위 역시 남이 인정해주는 게 진짜지, 본인이 억지로 세운다고 세워지지 않아요.

실제 삶과 무대가 다르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차피 유한한 인간은 세월 앞에 꽃처럼 시들어가요. 나이 앞에 장사 없어요. 목이 악기인 저희들 역시 이 목소리를 끝까지 가지고 갈 수 없어요. 그 사람이 끝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건 그 사람만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요.“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대구국제오페라축제, 석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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