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부농부농’ 사랑에 빠지면 흔히 세상이 분홍빛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파랑파랑’ 사랑에 빠지면 세상이 푸른빛이 될까?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를 떠 올릴 때면, 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가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는 푸른 바다가 그려진다.

비오는 날 처음 만나 운명적으로 결합됐지만 원치 않는 이별을 겪게 된 두 남녀.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된 남자 앞에 그녀처럼 새끼손가락을 펼치는 버릇이 있고,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라이터를 가지고 있는 남자 제자가 나타난다. 17년의 세월을 건너 뛴 이들의 사랑이 뮤지컬로 탄생했다.

2012년 초연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선사하는 음악과 시공간을 뛰어넘는 독특한 감성, 은은한 영상 미학,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호평 받았다. 한국뮤지컬협회 창작뮤지컬육성지원사업 재공연 분야에 선정되며 우수 창작뮤지컬로 인정받은 작품이다. 원작은 배우 이병헌과 姑이은주 주연의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인우가 무대를 가로지르면서 그리는 하얀 분필 선과 ‘인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2013 <번지점프를 하다>는 좀 더 작은 극장인 연강홀로 돌아오면서 관객과의 밀착도가 높아졌다. 인물의 심리를 보다 깊이 관객과 나눠 갖는 점이 좋다.

초연이 영화의 ‘클로즈 업’ 처럼 검은 가림막이 커다란 무대 위에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며 무대 분할을 자유자재로 했다면, 재연에선 회전 무대로 작품의 핵심인 ‘인연과 환생’을 이야기한다. 또한 인우의 현재 집과, 인우와 태희가 머물렀던 여관집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접혀지는 등 장면 장면의 연결이 매끄럽다.



여신동 무대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새로운 무대는 인우와 태희가 보낸 추억의 시간을 보다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어떤 때는 사무치게 그립고, 불현듯 애틋함이 찾아오는 순간 순간의 기억을 무대 위로 고스란히 살려낸 것. 그 공간 안에 태희의 환생인 ‘현빈’이 걸어 들어온다. ‘사랑은 그 사람을 알아보는 거다.’고 했다. 태희가 좋아하던 '왈츠' 음악이 현빈의 핸드폰에서 울리기 시작한다. 사랑은 그렇게 천천히 다가온다. 이번 시즌으로 오며 왈츠 테마의 시작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인우와 태희에서 현빈에게까지 이어지는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은 콤비인 윌 애런슨(작곡)과 박천휴(작사)의 음악과 노랫말과 오케스트라(현악 5중주) 라이브로를 통해 더욱 아름답고 신비롭게 무대 위에서 재현되었다. 특히 보다 매끄럽게 변화된 넘버들이 눈에 띈다. 두 아티스트는 “<번지점프를 하다>만의 ‘특별한 반짝거림’을 위해 즉, 모든 걸 초월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누구나 맘 속 깊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이며 진실한 사랑을 담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초연의 여백의 미를 그리워하는 이라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번지점프를 하다>는 이 모든 그리움까지를 아우르며 익어간다. 초연이 관객 각자 마다 그리움의 세계를 은밀하게 경험하게 했다면, 재연은 인연의 끈을 주인공 뿐 아니라 관객과 관객 사이까지 연결시켜 보다 동질감을 갖게 한다.

성두섭 인우와 김지현 태희의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려한 정서가 슬픔과 그리움으로 가득한 높고 맑은 눈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했다. 이재균 현빈은 초연보다 훨씬 단단하고 설득력 있게 객석을 사로잡은 점이 인상적이다. 11월1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뮤지컬 헤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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