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 나쁜 아버지들은 죽여야 한다는 신화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화이>는 범죄자들에 의해 길러진 소년의 핏빛 성장기를 담은 액션물로, 최고의 카리스마를 지닌 김윤석의 연기와 아역배우에서 어느덧 주연배우로 성장한 여진구의 교복활극을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어딘가에 갇힌 아이가 괴물의 환영을 보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나온다. 곧이어 지하철에서 돈 가방을 탈취하려던 유괴범들이 경찰과 인질극을 벌이는 잔혹한 장면이 펼쳐진다. 사제 총을 쏘며 달아난 유괴범들은 아지트에 모여 유괴한 아이를 죽이려다 키우기로 한다. 몇 년 후 아이는 다섯 명의 범죄자를 아빠라고 부르는 청소년이 된다. 화이(여진구)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이들에게 범죄기술을 배운다. 저격, 운전, 열쇠, 총포 등등.

아빠들 중에는 화이에게 평범한 삶을 살게 해주려는 이도 있지만, 조직의 우두머리 격인 석태(김윤석)는 화이를 범죄자로 키우고자 한다. 그러나 처음 범죄현장에 투입된 화이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석태에 의해 지하실에 갇힌 채 괴물의 환영을 본다. 석태는 부동산 개발구역에서 이사를 가지 않고 버티는 임형택 부부를 살해해달라는 용역을 맡아 화이를 침투시킨다. 마침내 첫 살인의 불을 뿜는 화이. 그러나 그곳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는데..



◆ 내가 선한 아버지의 자식임을 깨닫기

<화이>는 범죄액션물의 장르를 지니고는 있지만, 메시지 측면에서 보자면 매우 신화적인 영화이다. 흔히 아버지와 아들의 죽고 죽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오이디푸스 신화를 떠올리기 쉽겠지만, 그보다 강하게 깔려 있는 것이 기독교적인 은유이다. <화이>는 단적으로 말해, 선악의 대립 속에 놓인 인간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말하는 신학적·윤리적 텍스트이다.

보육원 이사장의 아들인 임형택은 선한 신, 이를테면 예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착했을까?”라는 석태의 대사) 보육원에서 길러진 석태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자장 안에 속한 존재이지만 괴물의 환영, 즉 악의 유혹을 느끼는 자이다. 임형택의 완벽한 선함에 질투를 느낀 석태는 임형택이 좋아하던 여자를 강간하고 임형택의 다리를 못 쓰게 만든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더 이상 괴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데, 이는 그가 괴물이 되는 과정인 동시에 악마가 예수를 시험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악마의 시험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그를 미워하지 않고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선의 권능을 보여준다. 마침내 악마는 그의 아들을 납치한다.

화이는 본래 선한 아버지 임형택의 자식이지만, 그의 절대적인 선함에 위압된 석태가 그의 아들을 빼앗아 자기 자식으로 기른다. 석태는 괴물이 보여서 괴롭다는 화이에게 네가 괴물이 되면 더 이상 괴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악인이 됨으로써 선악의 갈등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화이는 나쁜 아버지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고 버틴다. 마침내 석태는 화이에게 자신의 친부인 임형택을 죽이라는 가장 끔찍한 죄를 범하게 한다.



임형택은 아들을 잃고 찾아 헤매다 아들이 아버지의 집에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살았다. 그가 범죄의 표적이 된 것은 원한을 샀기 때문(“부자니까 원한이 있을 것 아니야?” 부패경찰의 대사)도 아니요, 보상금을 노린 ‘알박기’ 때문도 아니다. 오직 잃어버린 아들이 아버지의 집을 찾아오도록 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기도하며 기다렸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이루어졌다. 아들의 귀환은 곧 임형택의 죽음으로 이루어진다. 악마의 손에 키워진 아들은 예수의 피를 손에 묻히고 나서, 내 영혼의 근본이자 선한 아버지를 내 손으로 죽였다는 죄책감을 통하여, 비로소 내가 하나님의 자식임을 깨닫게 된다.

◆ 나쁜 아버지들은....죽여야 한다. 남김없이

화이의 입장에서 나를 키운 것은 범죄자들이요(“네가 기억하는 것은 우리들뿐이잖아”), 내가 속한 세계를 지배하는 것도 범죄자들이다. 그들로부터 범죄와 성에 대한 온갖 잡기를 배우고, 아버지의 법에 순종하는 것이 ‘세상을 사는 지혜’이다. 화이의 다섯 아빠들은 세속적인 아버지의 여러 국면들을 대변한다. 엄격한 아버지, 자상한 아버지, 살가운 아버지, 냉혹한 아버지 등등. 이들이 한명의 아버지와 네 명의 삼촌들이 아니라, 한명의 ‘아버지’와 네 명의 ‘아빠’들로 불리는 이유는 이들이 ‘아버지’라는 상징으로 묶이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화이는 신학적인 혹은 실존적인 의미에서 ‘인간’을 상징한다. 지금까지 나를 키우고, 내가 속한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나쁜 아버지들이다. 이들이 이끄는 데로 살면 나는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안에는 괴물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 아직 괴물이 되지 않은 나는, 아버지들처럼 되는 것이 두렵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는 원래 선한 아버지의 자식이었다. 심지어 내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선한 아버지는 악의 세계에 속해있는 내 죄로 말미암아 죽었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어떻게 할 것인가.

화이는 나쁜 아버지들을 그들에게 배운 기술을 이용하여 하나하나 죽인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괴물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이는 그가 괴물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괴물을 삼킨 아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악과 폭력을 회피하거나 투항하는 것이 아니라, 악과 폭력마저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여 ‘지양’하는 존재가 되었다.



화이는 아빠들에게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묻는다. 아빠들은 답이 없다. 가장 살가웠던 아빠만이 “아빠가 미안해”하며 죽는다. 마지막에 화이는 석태와 독대한다. 타락천사이자 악마인 석태는 “왜 날 키웠냐?”는 화이에게 “나도 몰라. 위에 가서 물어봐. 그분은 아시겠지”라고 말한다. 석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임형택과 화이처럼 자신과 다른 도덕성을 지닌 존재이다. 석태는 화이를 회유한다. 너도 이제 괴물이 되었다고, 이제 그만 용서를 빌고 아버지에게 돌아오면 된다고 자상하게 속삭인다. 화이는 두려움과 외로움에 떨며 투항직전까지 이르지만, 결국 아버지를 죽인다.

그리고 오롯한 단독자가 되어 아빠들에게 범죄를 사주하던 부동산 개발업자 전회장까지 저격하고, 사람들 속으로 표표히 사라진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에서 살인자의 혈통을 깨달은 소녀가 가족과 살육전을 벌이고 세상 밖으로 나와 엉뚱하게도 보안관을 죽였던 것에 반해, 대단히 윤리적인 출사표가 아닐 수 없다.

10년 전 <지구를 지켜라!>에서 인류전체를 쓸어버려야 할 악으로 바라보았던 장준환 감독의 도저한 비관주의는 여전하다. 지금 이 세계는 나쁜 아버지들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그것을 알게 된 다음세대가 할 일은 타협하거나 주저함 없이 그들을 죽이는 것이다. 남김없이.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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