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왕’ 코미디인데 정작 웃기는 구석이 없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몇 년 전 모 사이트에서 장르소설가 지망생들의 작품들을 심사하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좋은 작품들도 종종 있었지만 끔찍한 글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그 끔찍한 글들을 연거푸 읽다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형편없는 이야기꾼이 쓴 글들은 대부분 ‘포르노’다.

여기서 포르노라는 단어를 정확히 설명해보기로 한다. 포르노라고 해서 이들이 야한 이야기만 썼다는 건 아니다. 그런 글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성적 묘사의 강도는 작품의 질과는 무관하다. 이들의 글과 포르노의 공통점은 다른 데에 있었다. 대부분의 포르노들이 그렇듯, 형편없는 이야기꾼은 이야기의 모든 재료들을 자신의 욕망에 종속시킨다. 그러다보니 캐릭터는 우스꽝스러워지고 이야기는 밋밋해지며 이야기에 무게를 부여하는 진실성은 티끌만큼도 남지 않는다. 세상과 캐릭터의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데 무슨 이야기가 나오겠는가.

이건 출판되는 책이나 개봉되는 영화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시사회로 본 <밤의 여왕>도 바로 그런 영화였다.

내용을 아시는지? 샌드위치 가게 알바 미녀와 결혼한 컴퓨터 너드가 아내의 과거를 의심하고 뒤를 파헤친다는 이야기다. 예쁜 데다가 현모양처인 아내를 만나 좋아하던 남편이 나중에 조사해보니 아내는 10년 전 강남 클럽가를 주름잡았던 '밤의 여왕'이었던 모양이다.



설정과 상관없이 영화는 재미없다. 추리물의 가능성을 완전히 날려버리고 있고 코미디의 템포와 타이밍도 엉망이다. 무엇보다 농담의 재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코미디라고는 하고 있고 그렇게 보이려고 애를 쓰고는 있는데 정작 웃기는 구석이 없는 영화라고 할까. 아마 배우들이 영화 홍보하러 나오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영화 자체보다는 몇 배 더 재미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김민정의 섹시 댄스를 볼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영화가 위에서 말한 '포르노'의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문제점의 대부분은 김민정이 연기한 '밤의 여왕' 캐릭터에 있다.

얼핏보면 이 캐릭터는 천정명이 연기한,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감정이입하고 있는 남편의 세계를 말아먹으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영화가 재미있으려면 이 캐릭터는 남편의 기대와 욕망에서 될 수 있는 한 멀리 도망쳐야 한다. 결말을 어떻게 내건 간에.



하지만 영화는 그럴 용기도, 의지도 없다. 김민정의 캐릭터는 여전히 천정명 캐릭터를 그린 사람들의 안전한 판타지 안에 존재한다. 현재의 김민정은 그들이 꿈꾸는 '현모양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심심하기 짝이 없는데, 이 이미지와 대비되어야 마땅한 과거의 김민정에겐 그럴 기회가 없다. 작가들이 사감선생처럼 노려보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험악하게 들릴 수도 있는 소문들, 그러니까 총기사건이나 패싸움 소문과 같은 것들에는 모두 안전한 해명이 붙고, 그 뒤에도 김민정은 자기가 왜 그렇게 놀았는지 기나긴 변명을 해야 한다. 엄청난 대죄도 아니고 그냥 클럽에서 신나게 놀았다는 게 전부인데도. 그리고 가장 역겨운 건 심지어 영화가 10년 전 과거로 돌아간 뒤에도 김민정의 처녀성을 지켜주려고 기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과연 21세기에 나온 영화가 맞는가.

악의는 없는 영화이다. 하지만 수준이 낮고 옹졸하다. 인정할 수 있는 여자들의 행동 영역이 티끌 정도에 불과하고 그것마저도 결벽증에 걸린 것처럼 박박 문지르고 있는 영화의 태도를 보면 거의 신기할 지경이다. 남을 용서하고 인정하기 전에 일단 자기가 그 자격이 되는지 보라. <밤의 여왕>을 만든 사람들은 그 자격이 없다. 오로지 자기 영역 안에서 혼자의 판타지 안에서 맴도는 영화의 꼴을 보면 2시간 짜리 한심한 영상을 엿보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이런 것도 포르노일 수 있다는 게 어이없을 뿐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밤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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