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배우는 배우다’ 일대일로 비교한다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비슷한 소재와 이야기를 다룬 두 편의 영화가 거의 동시에 개봉된다. 하나는 배우 박중훈의 감독 데뷔작인 <톱스타>이고 다른 하나는 김기덕 각본을 <러시안 소설>의 신연식이 연출한 <배우는 배우다>이다. 두 영화의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드라마의 흐름이나 캐릭터 묘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장치들이 너무 유사해서 한 영화를 먼저 보면 다른 영화를 보는 동안 강한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표절했기 때문은 아니다. 두 영화 모두 영화라는 매체가 발명되기 전부터 끊임없이 반복되었던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배우의 이야기다. 야심이 만만치 않은 무명배우가 기회를 잡아 인정을 받고 스타가 되는데, 연예계의 시스템과 배우 자신의 성격적인 결함 때문에 몰락하게 된다. 서구 고전 비극의 익숙한 형식이 현대 쇼비즈니스의 공간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많아서 굳이 예를 드는 것이 민망하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두 영화의 태도나 스타일의 차이가 더 눈에 잘 들어온다. 박중훈은 후배들을 모아놓고 "형이 지난 몇 십 년 동안 이 업계에서 무얼 배웠는지 들려줄게"라고 이야기를 푸는 것처럼 보인다. 김기덕/신연식의 태도는 조금 복잡하다. 김기덕이 언제나처럼 극단적인 인물이 주인공인 과격하고 투박한 이야기를 만들어 던지면 신연식은 이를 영화음악으로도 사용되는 드뷔시의 음악처럼 중의적이고 모호한 영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박중훈의 <톱스타>는 척 봐도 박중훈이 만든 영화처럼 보인다. 올드하고 투박하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예상했고 박중훈 자신도 굳이 넘어설 생각이 없는 한계이다. 하지만 그를 고려한다고 해도 이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조금 실망스럽다. 이야기꾼으로서 박중훈이 관객들보다 우위에 있는 건 수십 년의 연예계 경력을 통해 쌓은 한국 영화계의 뒷이야기일 텐데, 그는 이 디테일을 살리는 대신 큰 붓으로 휙휙 과장된 캐리커처만을 그린다. 아마 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실화나 실제인물의 모델에 바탕을 두고 있겠지만 영화에서는 그 사실감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는 인생경험을 쌓은 선배의 교훈담으로 흘러가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대부분 그렇듯 피할 수 없는 꼰대 냄새가 나며 익숙한 진부함으로 빠진다.



이야기만 따진다면 <배우는 배우다>도 특별히 신선할 것은 없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는 적어도 계산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는 사고와 충돌이 존재한다. 만약 김기덕이 직접 감독을 했다면 이런 재미는 없었을 것이다. 신연식이 각본을 썼다면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이야기꾼이 어거지로 연결되자 거의 부조리극과 같은 난장판이 만들어진다. 어떤 장면들 같은 건 김기덕도, 신연식도 키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다행히도 그 결과는 종종 재미있다. 어차피 익숙한 이야기라면 이런 일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니까.

나는 배우가 감독한 영화에서 더 나은 연기지도를 기대한다. 최근 예로 유지태의 <마이 라띠마>는 여러 모로 불안한 영화였지만 우리에게 박지수라는 훌륭한 신인배우를 소개시켜주었다. 하지만 <톱스타>는 몇몇 인상적인 조연들과 카메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주연배우들은 특별한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들 캐릭터가 주제와 교훈을 위해 디자인되었고 스스로의 힘으로 설만한 개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마 그 다음은 박중훈이 관객이 기대하는 것만큼 꼼꼼한 연기지도를 할 생각 자체가 없다는 것이겠지만.



연기면에서도 <배우는 배우다>는 <톱스타>를 넘어선다. 배우들의 이름만 보면 <톱스타>가 더 묵직하고, <배우는 배우다>는 요새 <개그 콘서트>와 같은 코미디가 놀려대는 '아이돌 캐스팅'과 신인들에 의지하고 있지만 결과물은 훨씬 재미있다. 일단 이준은 제대로 된 배우이다. 그리고 <러시안 소설>에서도 보았던 신연식의 배우들은 아직 무명이더라도 영화에 더 어울리고 종종 그 의미를 넘어서는 재미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두 영화를 일대일로 비교한다면 <배우는 배우다>가 거의 모든 면에서 <톱스타>를 넘어선다. 아마 이 대결에서 <톱스타>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박중훈의 진정성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성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으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직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톱스타>, <배우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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