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세계무용축제 <완벽한 이유> 안무가 이인수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지난 4일 CJ티켓 예매사이트가 마비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명 뮤지컬 혹은 해외 유명 아티스트 내한 공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11월 블루스퀘어 무대에 오르는 무용 <댄싱9 갈라쇼> 표를 구하기 위해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일어난 것. 레드윙즈 팀 댄서 하휘동, 김홍인, 남진현, 류진욱, 소문정, 이루다, 이선태, 서영모, 여은지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17일과 18일 강동아트센터에서 관객과 만난 EDx2 무용단 창단 공연 역시 일찌감치 매진됐다. SNS에도 ‘이인수 류진욱 씨 나오는 무용 공연을 보고 싶은데 표를 구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의 글이 올라왔다. 무용 관계자에 국한되는 게 아닌 일반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안무가 겸 무용수 이인수를 만났다.

■ 존재자체가 이유인 당신을 위한 무용 ‘완벽한 이유’

EDx2 무용단 대표이자 안무가 이인수는 3년간 21개국 34개의 도시에서 공연한 ‘현대식 감정(Modern Feeling)’과 올해 3월 베네수엘라에서 초연한 ‘Because of why’, 신작 ‘완벽한 이유’ 등 세 편을 들고 나왔다.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 SIDance 2013)와 강동아트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공연이다. 무용수 류진욱, 안겸, 김혜윤, 박정미, 이정오, 성가영, 이나령, 정록이, 강천일, 최성호 등이 출연한다.

그 중 이인수와 류진욱의 2인무 <현대식 감정>은 2010년 팜스 초이스 선정, 쿠바, 스페인, 폴란드, 독일, 영국, 스웨덴, 미국, 멕시코 등 세계 주요 극장 및 축제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70회 이상 공연됐다. ‘Because of why’는 안무가 이인수가 지난 4년간 선보인 그룹 작품들 중 ‘Who and I’(2009년),<우리가 잃어버린 것>(2010년),<벽>(2011년),<이유를 찾아서>(2012년) 등의 작품을 엮어 재구성한 작품이다.

-신작 <완벽한 이유> 잘 봤다. 키가 작고 살집이 있는 여성 무용수는 쉽게 볼 수 없어서 그런지 첫 번째 에피소드가 강렬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머릿속에 그리는 키 크고 마른 여성 무용수들에 비해 작고 살집이 있는 여성 무용수들은 상대적으로 무대에 많이 오르지 못한다. 외모적으로 우월하지 않아도 남자 무용수는 무대에 오르지 않냐고? 남자무용수들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성별의 차이가 아니다. 오히려 기능의 차이다. 여성 무용수들 중에서도 남자 무용수를 들어올리는 무용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안무가로서 그 무용수를 쓰고 싶어지는 경우가 생기니 말이다. 안무가로선 깡마른 여성 무용수 보다는 살집이 적당히 있는 무용수가 좋다. 마른 무용수는 이미지가 한정적인데 육감적인 외모는 다양한 액션이 나오기 때문이다.”



-신체적 콤플렉스를 가진 무용수가 ‘이렇게 (키가 작고 뚱뚱하게)태어나서 무용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게 잘못인지, 무용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창피해하는 게 잘못인지...’란 나래이션이 나온다. 이런 구성에 대한 설명을 들은 무용수의 반응은 어땠나
“처음엔 당황하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을 계속 말하며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렇게 안무가 진행됐다. 원래는 무용수에게 비키니를 입히고 싶었다. 어찌 보면 적나라할 수 있지만, 그런 사실적인 표현과 움직임을 엮으면 오히려 추상적인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았다.”

-손목이 묶인 채로 두 번째 등장하는 여자에 대해서도 말해 달라
“여자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에서 안무를 끌고 왔다. 주변에서 보면 그런 여자가 있지 않나. 이성친구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여자 말이다.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유가 있어 보였다. 본인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어떤 버팀막 혹은 강한 존재로서 끊임없이 남자를 만나고 있는 여자이다.”

-세 번째 남자 이야기가 창단 공연으로서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자신의 직업과 그걸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담아낸 이야기다. 그 안엔 작업하는 EDx2 무용단 가족들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무용단 가족들과 술을 마시면서 실제로 했던 대사들을 무용에 녹여냈다. 그들을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각과 관계없이, 그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 사랑이고 믿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마지막엔 안무가로서 고민과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제목은 왜 <완벽한 이유>인가
“그동안 이유 시리즈 작품을 많이 했는데, 나와 비슷한 또래들은 ‘이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다. 그 이유가 이해가 돼야 일을 시작하고, 모든 문제에 대해 별 말없이 넘어가지 않나. 이유가 없으면 불안하고 이유가 있으면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여기서 갈등이 시작된다. ‘완벽한 이유’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이다. 오히려 이유가 없는 것이 완벽한 이유라고 봤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굳이 그에 따른 이유는 필요하지 않는다. 존재자체가 이유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제목을 ‘완벽한 이유’로 정했다. 그렇게 무용과 마임, 연극적 요소를 결합한 무브먼트 드라마를 만들었다.”



-안무가로서 이번 작품에 대해 만족하는가
“<완벽한 이유>는 개개인의 실제 경험 속에서 찾아낸 진솔한 이야기들을 독백과 춤으로 풀어냈다. 연습기간이 충분하지 못해서 100% 만족하진 못한다. 씬을 하나 더 넣고 싶었는데 넣지 못했다. 추후 공연에서 좀 더 보강해 나가고 싶다.”

-관객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
“이렇게 봐주라, 저렇게 봐주라에 대한 욕심은 없다. 다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서로 무슨 연관성이 있지? 이렇게 분석하며 보기보다는 그냥 이미지 하나하나를 감상하듯이 봤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커튼콜 때 뭔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 ‘촉’이 탁월한 안무가 이인수

대구 출신 스트리트 댄서로 시작해 현대무용을 전공한 이인수는 경북예술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에미오 그레코무용단, 한국의 LDP무용단에서 활동한 무용수다. ‘현대식 감정’으로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 안무그랑프리(2008), 독일 노발레국제안무대회 3위(2010), 베이징 국제안무대회 금메달 및 최고 인기상(2011), ‘Who and I'로 한국무용협회 최우수안무가상(2009), 한국춤비평가상 연기상(2011), ’이유를 찾아서‘로 크리틱스초이스 2012 우수작품상, ’Because of why‘로 대구국제무용제 대상(2013)을 수상했다. 서울아트마켓 ‘팸스 초이스’(PAMS) 및 카페베네 청년문화예술인 선정에 이어 최근엔 JTI코리아와 한국문화예술회가 지원하는 ‘신진예술가 육성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Mnet <댄싱9>에 출연해 일반인들도 많이 알아보지 않나. 그 인기에 힘입어 이번 무용 표도 매진됐지 않나
“나보다는 생방송까지 간 류진욱을 더 많이 알아본다. 슈퍼스타 시즌 1과 비슷한 시청률이었다고 들었다. <댄싱9>로 높아진 현대 무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나쁘지 않다. 오늘이 무용 관계자가 아닌 일반 관객이 반 이상이 극장으로 들어오는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대중성을 갖춘 안무가란 평도 있다
“일반 관객들의 평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있다. 특히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 무용 공연을 보러 오게 된 사람들의 의견도 물어보는 편이다. 그들이 우연히 무용을 본 뒤 또 보고 싶다는 말도 했다. 이렇게 일반 관객들이 무용에 관심을 갖게 되는 지금이 더 중요한 시기이다. 안무가로서 고민도 생긴다. 대중적인 느낌을 무용 속에 자연스럽게 오버랩 시킬 것인지, 확 오버랩 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힙합을 하다 현대무용을 하게 됐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무용을 하지 않으면 춤 전체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느낌, 더 많은 걸 표현하고 싶다는 열망이 왔다. 흔히 ‘촉’이 좋다는 말을 하는데, 그런 것과 비슷하다. 신기하게도 그런 느낌은 틀린 적이 없었다. 경상도에서 홀로 서울 한예종으로 올라왔고, 재학시절 대구 말 쓰는 이는 나 혼자였다. 아파트도 사고 날 믿어주는 댄서들도 생기고, 상도 타면서 비교적 순조로운 길을 밟아왔다. 그래서 가끔은 실패에 대한 느낌을 받으면 두렵기도 하다.”

-그 ‘촉’이 안무 작업에도 반영될 것 같다
“‘촉’에서 감지된 일을 발견하면 병이 날 만큼 몸을 혹사시킨다. 일이든 뭐든 저건 싫어도 해야 되는 일이다란 생각이 들면 반드시 한다. 독한 면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외롭다. 왜 이렇게 외롭지? 하는 생각도 자주 든다. <완벽한 이유>란 작품에서 그런 마음이 묻어나오는 것 같다.”



-다른 방송 쪽에서도 출연 의뢰가 많이 올 것 같다.
“아리랑 TV, 트렌디 채널의 다큐 ‘인사이트’ 등에 출연했다. 최근엔 SBS 예능 <짝>에서 3번이나 의뢰가 왔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날 더 많이 알릴 수는 있겠지만 요행을 써서 홍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거절했다.”

-<댄싱9> 우승팀 ‘레드윙즈’ 멤버인 류진욱이 EDx2 부대표로 있다.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해왔는데, 이인수에게 류진욱은 어떤 존재인가
“처음엔 진욱이가 필요의 존재였다면 지금은 친구, 동료, 제자, 가족 이렇게 모든 존재이다. 진욱이는 힙합 춤을 출 때 처음 만났다. 다른 팀에서 춤을 추는 걸 봤는데 센터가 아닌 사이드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왜 잘 추는데 센터에 안 세울까? 생각하다 ‘너 나랑 추자’면서 바로 우리 팀으로 데려왔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돼 지금까지 왔다. 가족 같은 동료이다.”

이인수는 인터뷰를 마치며, “몸이 가진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말로 표현하는 것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물론 의미의 도착점이란 측면에서는 같을 수 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는 게 다르다. 쉽게 말하면, 그냥 쳐다보면서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과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것 그 차이 아닐까. 이 차이를 무용에서 느낄 수 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서울세계무용축제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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