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필로우 맨> 연출가 변정주, 배우 정태민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천재 작가 마틴 맥도너의 블랙 코미디 <필로우 맨>이 노네임씨어터의 ‘내러티브’ 시리즈의 일환으로 공연된다. <필로우 맨>은 ‘작가’와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 라는 소재를 통해 단순한 액자구도에서 탈피한 다면적인 극중극이라는 개념을 펼쳐 보인다. 작품의 외피는 일련의 살인사건에 얽힌 형제 카투리안과 마이클, 그들을 취조하는 형사 투폴스키와 에리얼의 진실공방이다. 그러나 팽팽한 취조공방 속에서 카투리안은 ‘자신은 죽더라도 자신의 작품들은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마이클은 이 와중에도 동생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고 싶어한다. 그 안에 진짜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끝내 지켜나가고자 했던 이야기들이 그 얼굴을 드러낼 때 관객들은 기습적인 유머와 슬픔을 감지하게 된다.

작년 공연에 이어 이번에도 <필로우 맨> 연출을 맡은 변정주는 “작가인 맥도너의 의식은 연출자인 내가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조성과 리듬을 바꾸어 빠른 속도로 방향을 달리해 나아갔다. 내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필로우 맨>이라는 텍스트를, 느리지만 곧이곧대로 소화해 나가는 것이었다. 작년엔 읽은 악보를 피아노 위의 손가락으로 옮기기에 급급했었지만, 이제는 왜 이렇게 작곡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처음 연주할 때보다는 조금 더 ‘연주’에 가깝게 악보를 읽어 내려가고 있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다시 돌아온 <필로우 맨>이 어떻게 연주될 지 궁금함을 가득 안고 변정주 연출가와 정태민 배우를 만났다.

◆ 변정주, “<필로우 맨>의 풀리지 않는 고리가 풀렸다.”
“작년 공연에선 상대적으로 ‘에리얼’의 비중이 작아보였을 수도 있어요. 이번 재연 에선 네 인물의 비중이 동등하게 보일 겁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작업을 하면서 풀리지 않는 고리가 풀렸거든요. 작년과 해석이 크게 달라졌다기 보단 이인수 번역가의 도움을 받아 번역 오류를 잡았어요. 번역이 보다 깊고 명확해졌죠. 어색한 번역을 의역으로 바꾸었어요. 번역가이면서 작가이신 분이라 말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셔서 우리가 쓰는 말에 가깝게 수정할 수 있었어요.”

◆ 정태민, “‘에리얼’은 속았다?”
“작년 <필로우 맨>을 보고 ‘저 안에 내가 들어가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알고 보니 굉장히 많은 배우들이 이 작품을 노리고 있었더군요. 다들 주인공 카투리안을 노리고 있을 때, 전 처음부터 ‘에리얼’이란 인물에 끌렸어요. 그런데 대본을 읽고 나선 ‘선택을 잘못 했구나’, ‘속았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쉽지 않았어요. ‘에리얼’이란 인물은 카투리안을 불쌍하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증오심을 앞세워 고문기를 꺼내요. 이런 상황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연기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아요. 이런 걸 잘 하는 배우들이 있는데, 저에겐 너무 어려운 부분입니다.

산에서 뛰어내리면 계곡이 되고, 다시 계곡에서 위로 기어오르면 산이 되는 이치와 비슷하게 연기를 해야 해요. 그런데 전 편하게 산을 깎아서 계곡으로 가려는 습성이 있어요. 그 걸 깨는 게 힘들었어요. 초반 연습 땐 헤매고 다녔는데, 연출님이 많이 찾아주셨죠”

◆ ‘에리얼’의 또 다른 이름은 ‘어려월’
“<필로우 맨>이 저에게 행운의 작품이 될 지는 아직 복잡한 마음입니다. ‘에리얼’의 폭력성이 저절로 올라와야 하는데 지금은 폭력성을 만들어서 하고 있어요. 이런 폭력성을 가까운 사례에서 찾아보려고 하니 군대 생활이 떠오르더군요. 선임이 밑에 훈련병들에게 엄청나게 폭력을 행사한 다음 집에 전화할 때 모습을 보면 정말 다르죠. 폭력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어~자기야. 혹은 아빠야’ 라고 다정하게 이야기하는데...어찌보면 그게 삶이고 연기인거죠.

아이 아빠가 되면서 달라진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엄마들이 육아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들에게 윽박지르기 쉽기 때문에 아빠인 저는 ‘이리와’ 하면서 좋게 좋게 아이들을 받아들이려고 해요. 제 안의 화를 잠재우는 모습을 보고 철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반면에 ‘욱’ 하고 올라오는 ‘에리얼’의 습성을 찾기가 힘들어졌거든요. 예전에 설경구 배우가 영화 <박하사탕> 연습 때 항상 우울한 기운으로 지냈던 걸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쉽게 말해 언제든지 그 역할로 되기 위해 발동을 걸어놓고 다녔다는 의미인데, 배우에겐 캐릭터와 닮은 점을 지켜가려는 게 도움이 되면서도 힘든 점이 있네요. 그래서 전 ‘에리얼’이 아닌 ‘어려월’로 말하고 다녀요.”



◆ 정태민 배우와 변정주 연출이 철이 든다는 것은?
“이번 작업을 하면서 더더욱 느낀 건데, 배우가 철이 든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혼란스러워요.”-정태민
“제가 요새 나이 40이 가까워져 오니 우울해졌어요. 그래서 어느 시인에게 여쭤봤어요. ‘철이 드는 게 좋냐’란 질문을 했더니 ‘철이 들기 전 가벼움은 유지하면서 철이 든다는 건 좋은 거다’고 답하셨어요. 나이를 먹고 철이 드는 건 좋은 데 그렇다고 무조건 무거워지고 진중해지면 안 되는 거죠.”

◆ “네 안의 악마를 미워하지 말고 위로해줘라”
“제가 이렇게 ‘에리얼’과 인간 정태민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차순배 선배가 한마디 해 주셨어요. ‘네 안의 악마를 미워하지 말고 위로해줘라’라고. 예전엔 아이들에게 덩달아 화내려는 (아빠의)마음을 미워했다면, 지금은 제 자신에게 ‘워~워’ 하면서 위로해줘요. 그리고선 나중에 (배우로서)필요한 감정이니 ‘곧 쓰게 될거야’ 하면서 눌러놓죠(웃음) 안 좋은 감정을 없애려고 하기 보다는 데리고 있으면서 위로해주는 거죠.”

◆ <필로우 맨>의 수비수 ‘에리얼‘
“<필로우 맨>을 축구 경기로 본다면, 카투리안과 투폴스키는 공격수, 마이클은 미드필더, 에리얼은 수비수로 볼 수 있어요. 축구경기에서 네 명이 다 골을 넣을 수 없잖아요. 대개 연극들이 수비수를 여럿 두고 공격수(주인공)를 내 세워요. 극중에서 ‘에리얼’의 존재감이 잘 안 보인다고 말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에리얼’은 공격수가 잘 뛸 수 있도록 받치는 역이죠. 경기를 봐야 하는데 수비수를 내내 주목할 순 없는 거잖아요. 수비수가 눈에 띄게 보일려고 하면 안 되는거라 생각해요. 에리얼이 골을 넣는 장면은 3막입니다. 잘 해내야죠.”

◆ 변정주, ‘에리얼’은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인물
“‘카투리안’이 이야기 작가를 대표하는 인물, ‘투폴스키’가 권력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에리얼’은 권력 앞에 괴물이 되어버린 ‘아이 같은 폭력 괴물’입니다. 네 명의 인물들 증 ‘에리얼’은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지녔어요. 본인도 어렸을 때 많은 상처를 입은 인물이기 때문에 다른 이의 아픔을 똑같이 몸으로 느끼고 반응하는 인물이죠. 사회적 정의가 아닌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로 상대를 대하려는 인물, 또 그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인물이죠.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낀다는 건. ‘아름다움’을 갖지 않으면 불가능 한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괴물로도 볼 수 있지만 천사로도 볼 수 있어요. 두 가지 모두가 겹쳐 보이는 게 맞죠. 트라우마가 에리얼을 천사로 만들었다기 보다는, ‘아름다움’ 만큼의 괴물이 된 인물입니다. 근본은 다르지 않지만 역전된 만큼 더 끔찍하게 다가올 수 있어요.”

◆ ‘에리얼’은 마음 속 괴물을 물리칠 수 있을까
“<필로우 맨> 마지막 장면에서 에리얼은 위대한 결정을 해요. 아름다운 영혼과 괴물이 싸우는 장면인데, 결국 아름다움이 승리해요. 진짜 괴물이 이겼다면 이야기를 다 태워버리고 끝났겠죠. 태우고자 하는 마음과 보관하고자 하는 마음이 싸워 ‘사랑’이 승리를 해요. 물론 불을 붙여놓고 고민하는 ‘에리얼’의 모습이 보여야하겠죠. ‘에리얼’은 자기 안의 괴물을 물리친거죠. 아니 ‘사랑’으로 극복한 거죠.

3막 초반의 에리얼 감정이 혼란스러워요. ‘이 자식을 죽일거야’ 그랬는데, ‘아팠던 애였구나. 형을 구하려고 부모를 죽인 아이네’ 그렇게 생각하다가...‘벙어리 소녀가 사라졌을지도 몰라’란 생각에 뛰쳐나갔는데 알고 보니 살아있어요. 그렇다면 ‘저 놈이 죽인 게 아니네. 왜 죽였다고 했을까?’ 생각을 하고, 카투리안이 죽인 게 아니니 혐의를 벗겨줘야 한다고 생각할 꺼 아닙니까. 용의자가 아닌 증인이니까요. 그런데 에리얼의 머리로는 이길 수 없는 투폴스키 형사의 논리로 그럴 수 없게 되요. ‘이 아이는 죽어야 해. 이 이야기는 불을 태워야 하는 결정의 시점까지 오게 됩니다.

그 안에 말도 안 되는 엄청 난 게 있을텐데, 실제 무대에서 제가 눈물을 흘릴지 아닐지는 아직 알 수 없어요. 겁이 날 정도로 엄청난 감정이 오게 되면 눈물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하고 있어요. 태민이는 아직도 연습 중입니다 미쳐버릴 것 같아요. 초반 고문 장면 땐, 긴 독백으로 ’넌 이런 식으로 미쳐갈 꺼야‘란 식으로 작가의 도움이 있어요. 그래서 괜찮아요. 그 뒤가 문제죠. 주고 받는 짧은 대사 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지? 미칠 것 같아요. 아니 겁이 나요.”



◆ 변정주, “아름다운 ‘에리얼’을 상상하면 가슴이 아프다.”
“어느 날, 집에서 <필로우 맨>속 인물들을 머릿 속에 그려봤어요. ‘카투리안’과 ‘마이클’은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상상력으로 커버하면서 그려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에리얼’은 그게 잘 안 돼요. 폭력이 된 괴물인데, 그 안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나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배우는 얼마나 아플까. 그걸 표현하기 위해선 내 안에 악마가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건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아름다운 ‘에리얼’을 상상하면 가슴이 아파요.

특히 배우가 하나의 몸으로 이 모든 걸 보여준다는 게 힘들죠. ‘지킬’과 ‘하이드’처럼 보여줘야 하는데.(장난스럽게 정태민 배우가 ‘조명 좀 더 해주세요’란 말을 던졌다) <더 월>이란 애니메이션을 보면 예쁜 꽃이 괴물이 되고, 다음엔 불사신이 되어 날아가는 장면이 있어요. 영상 기술이 있으니 이 모든 게 다 보여질 수 있어요. 하지만 <필로우 맨>은 배우가 그 모든 장면을 보여줘야 해요. 쉽지 않죠. 준원이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카투리안의 긴 대사 아무리 많아도 제일 어려운 독백은 에리얼 네 거다.’ 결국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에리얼은 그걸 ‘사랑’으로 극복한다는 게 중요한 작품입니다.”

◆ 2013 <필로우 맨>은 두 명의 배우가 바뀌고, 소극장에서 중극장으로 커졌다.
“작년 공연을 함께 했던 배우 4명 중 2명이 새로 바뀌었어요. 김준원, 손종학, 이현철, 조운 네 배우 모두 잘했고 고생했어요. 그런데 그 배우가 그대로 가면 달라진 느낌을 주지 않을 것 같아서 결국 두 명의 배우를 바꾸게 됐어요. 연출가로서도 참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새롭게 들어온 정태민과 홍우진이 ‘에리얼’과 ‘마이클’이란 인물과 이미지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가 본 두 배우는 닮은 구석이 있어요. 태민이는 <쉬어매드니스>에서 보여졌던 가볍고 발랄한 배우로 알려졌는데 ‘에리얼’ 같이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배우입니다. 가끔 ‘욱’ 하고 올라오는 성향도 그렇구요. 우진이는 그동안 남자 같은 역할을 많이 맡아왔는데, 평소 모습은 아이 같이 순수하고 거침없어요. (‘맞는 것 같다’라는 반응에)지금까지 무대에선 안 보여준 모습이라 저만 본 모습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군요. 상대 배우가 달라지니 기존의 배우들도 달라져 다른 느낌을 줄 겁니다. 연주자가 달라지면 음악의 느낌이 달라지듯이.”

“111석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서 250석 충무아트홀 블랙으로 극장 사이즈가 커졌어요. 작년 무대가 더 좋을지 이번 무대가 더 좋을지는 아직 판단을 내릴 순 없어요. 두산 공연 땐 원래 있던 무대들을 세트처럼 이용했어요. 극장 기둥자체를 취조실 기둥으로 썼어요. 이미 최적화된 무대였던거죠. 여신동 디자이너가 잘 하시겠지만, 충무 무대는 이와는 달리 돌출 무대이고 삼 면을 다 이용해야 합니다. 삼 면의 관객이 골고루 좋은 장면을 즐길 수 있게 살짝 살짝 신경도 썼구요. 극장이 커진 만큼 배우의 발성이나 동선이 조절되긴 하겠지만 ‘해석을 정확하게 유지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어요.”

◆ 변정주, “‘마이클’은 카투리안에게 ‘신’과 같은 존재”
“작년 공연에선 ‘마이클’과 카투리안의 관계를 대사로 보여주는 부분이 많았다면, 이번엔 밑으로 더 숨기려고 했어요. 억지로 드러나지 않고 우러나올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마이클’은 카투리안에게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공연 안에선 남녀노소 모두가 생각하는 ‘신’의 모습이 보여질 수도 있고, 연출가인 제가 생각하는 ‘신’이 마이클에게 반영될 수도 있고, 장난꾸러기 ‘신’, 화내고 벌 주는 ‘신’이 투영될 수 있다고 봐요. ‘신’이란 존재는 사람마다 이미지가 다 다르니까요. 공연 속에서 저와 우진(마이클)이가 만나는 지점이 그려질 것 같네요.”

◆ 모든 부모들은 자식을 학대한다?
“예전에 <필로우 맨> 관련 제 인터뷰를 보시고 엄마가 울면서 전화를 하신 적이 있어요. ‘내가 언제 너를 학대했냐’면서. 그래서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잘 되라고 하는 게 다 학대일 수 있다고 말씀 드렸죠. 작년 공연 땐 저희 엄마가 공연을 보지 못했어요. 보여드리기도 그랬고, 매진이라 표도 없었구요. 이번엔 보시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모든 부모들은 자식을 학대해요. 학대의 정도가 다를 뿐이죠. 카투리안의 부모들이 행한 학대는 정도가 심한 거죠. 우리 주변을 보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든, 의도를 가지고 하게 됐든, 결국은 닮아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에리얼’도 그렇게 어린 시절 당했는데 폭력을 행사하게 된 것처럼요. ”



◆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을 한 번에 쭉 읽어내는 연출가
“전 완벽하게 차단 된 상태에서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쭉 읽어요. 중간에 화장실도 가지 않고 인터넷, 핸드폰 다 차단한 상태로 읽는 거죠. 대개 6~7시간이 걸려요. 공연 연습 들어가기 전 딱 한번, 그 과정을 거쳐요. 그렇게 정독을 하고 대본을 보면 러닝타임도 대강 머릿 속에 그려져요. <필로우 맨> 1막 2장과 2막 2장은 음악과 대사가 맞물리면서 내레이션이 나와요. 마치 노래처럼 나오는 부분이라 정확한 타이밍으로 움직여요. 대본이란 게 한 번을 정확하게 읽기가 어려운건데,정확하게 읽어내면 머릿 속에 대본 전체가 들어와요.”

옆에서 정태민 배우가 한 마디 한다. “연출은 육감을 넘어 칠감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연습 중에 대본을 보지 않고도 바로 ‘틀렸어’라고 말하는데, 배우가 도망 갈 수가 없어요.”

◆ 대본을 끝까지 잡고 있는 배우 & 대본을 빨리 놓는 배우
“준원이와 우진이는 거의 대본을 놓고 연습을 한 다면, 손종학 선배와 태민이는 대본을 들고 연습하는 스타일입니다. 대본을 놓고 움직이면서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분도 있는데 전 ‘공연 전날까지만 대본을 놓으면 된다’는 주의입니다. 연극은 뮤지컬과 다르게 테크닉 적인 부분보다는 배우의 힘이 커요. 배우가 정확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내는 것. 상대배우와 제대로 나누는 게 중요해요. 연극은 ‘쇼잉’보다 ‘텔링’을 보여줘야 해요. 정확한 이해와 표현을 찾아내기 위해 대본을 끝까지 잡고 있는거잖아요. ‘배우에게 빨리 대본을 놓고 무대에 서야 한다’는 부담은 주고 싶지 않아요.”

◆ ‘변정주와 정태민은 애증관계였다’는 소문의 진실
정태민은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변정주 연출과 2009년 <쉬어 매드니스> 작업 중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서 도망을 간 적이 있다”고 고백했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정태민은 “불 같이 미워한 적이 있지만 다 태워버렸어요. 이걸 지켜보는 옆 사람들이 더 불안하고 난리가 났었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 대해 변정주는 “난 너가 안 괜찮은 적이 없었어. 나빴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 라고 답했다.

“‘아이들이 아빠는 이래야 해’ 라는 마음과 비슷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정주 형은 최고의 연출가이자 최고의 형이였어요. 그런데 2009년 <쉬어 매드니스> 작업을 하던 당시 (캐릭터 해석의 충돌로)‘그게 아니다’는 생각이 들자, 도망을 갔어요. 미움이 불같이 타올랐다가 이젠 꺼졌어요. 다 태워버렸죠.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당사자의 시각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는 점도 깨달았어요.”-정태민

“이 이야기가 인터뷰에서 나올 줄 알았어요.(웃음) <필로우 맨> 인터뷰를 하면서 네 명 중 한 명과 인터뷰를 한다면 ‘카투리안’ 이야기를 듣는 게 일반적인데 왜 ‘에리얼’일까? 생각했거든요.(‘두 분의 관계가 남다른 것 같다’는 말과 ‘에리얼’의 이야기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고, 주인공 ‘카투리안’은 다른 기자들이 인터뷰 할 것 같다고 답하자) 전영관 시인이 ‘당신의 호기심보다 가벼운 사랑은 없다.’란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모든 사랑엔 호기심 이상의 무게가 있는데, 호기심이 그 무게를 깎아내려요. 본인의 호기심 만으로 다른 이들의 관계를 바라보는 거죠. 사람들이 가볍게 보니까 둘 사이를 다르게 이해하시는 것 같아요. 태민이가 날 미워한만큼 날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됐을거라고 생각해요.

(연출가들이 대개 눈치가 빠르지 않나)<국민 TV>에서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연습실에서 나오면 바보처럼 있는 시간이 많아요. 6~7시간 연습하며 열심히 보는 게 체력 소모가 많잖아요. 그래야 회복이 되니까.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 다 보고 있는 게 연출의 일인데, 작업할 때 만 그렇게 하지 극장을 벗어나면 그렇지 않아요. 남의 사생활에 크게 관심이 없는 스타일이라서 그런가 봐요. ”-변정주

◆ SNS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연출가 & SNS가 아직은 낯선 배우
“작년에 <필로우 맨> 트위터 대화의 시간을 가졌었죠. 밤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대화를 하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알고보니 3시간을 했더라구요. 2시간이 넘게 계속 질문에 답 한거죠. 관객과의 소통이 계속 됐던 건데, 과거 SNS가 활발하지 않았을 때 도 사실 관객과의 소통은 있었어요. ‘연극’을 한다는 게 소통인거죠. 관객들에게 한 발짝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는 도구가 생긴 것 같아서 연출로서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작품 올려놓고 또 다른 작품을 하기보다는 이 작품 하나를 가지고도 계속 사회적인 대화가 일어날 수 있는거잖아요. 트위터 대화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또 누군가는 보고 있는거구요. 미디어가 발달되지 않은 과거에 공연이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연극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도구가 되지 않을까? 란 생각도 하게 됐어요.

-연극과 SNS가 결합했을 때 나오는 시너지가 있다.
“연극이랑 SNS가 결합했을 때 생기는 시너지가 분명 있어요. 또 집중적인 트위터 대화 시간이 온다면 하고 싶어요. 작년에 제가 했던 그 대화를 누군가 블로그에 정리 한 걸 발견했어요. 이번 작업에 들어오면서 그 대화를 찾아서 읽어보고 공부하고 시작했는데 너무 감사하신 분이죠. 중구난방 트위터 대화를 주제별로 정리 했더라구요. 검색창에서 ‘필로우맨 변정주 트위터 관객과의 대화’ 치시면 그 블로그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또 한 가지 놀랬던 적이 있어요. 얼마 전 위험한 지하철 이촌 역 난간에서 청소하시는 분이 보여 사진을 제가 찍어서 올렸는데 그 사진이 신문에 난 적이 있어요. 처음 트위터에 올렸더니 리트윗이 2천 건이 되고 페이스북에선 ‘좋아요’ 반응이 수천 건이 나왔어요. 그 다음날엔 신문에 나왔더라구요. 그래서 박원순 시장님 귀에도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어요. 전 그냥 지나가다 올린 건데,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 보고 SNS를 좋게만 쓴다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유명배우만 주목받는 게 아니다. SNS로 그 배우의 몰랐던 면을 알 게 돼 팬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배우에게도 좋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저요? 저도 활발하게 트위터 합니다. 물론 리트윗을 많이 합니다. 검색의 방향이 다른 쪽에 가 있어서 그렇죠. 멋있는 말을 쓰는 분들도 많은데 제 개인적으론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요. 배우의 내공은 트위터로 알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소한 이야기를 쓰기도 하는데 전 또 ‘왜 개인적 내용을 여기에 쓰지? 문자 보내면 되는데’. 결국 자기 검열인거죠. 한번 계정 폭파 당한 적이 있어서 더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SNS 사고가 뉴스를 장식하기도 하는데
“예전엔 뮤지컬 해븐 박용호 대표도 제가 SNS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걸 보더니 ‘자제하면 안 되겠냐’고 하면서 불안해하는 게 있었어요. 이젠 사고를 안 치니 믿어주는 게 있어요. 그런데 왜 사고를 안치나 알아봤더니 ‘저 놈 말은 아무도 귀담아 안 들어서 그렇다’라는 게 있었어요. (웃음)이젠 아무 말도 안 해요. 감시하러 나오지도 않아요.”



◆ 2013년에도 <필로우맨> 만원 사례는 이어진다
“프로덕션 내에서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이번에도 만원사례를 꼭 하고 싶어요. ‘만원사례’가 되면 만원 봉투를 써야하니 전화가 와요. 밤에 100장이 넘는 봉투를 둘이 쓰는데도 1시간이 넘게 시간이 걸려요. 정말 팔이 빠질 정도로 힘들지만 객석을 채워주는 일이 감사한 일이죠. 관객 분들도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이 봉투와 돈은 기념으로 간직해야 겠다’면서 절대 못 쓰겠다고 하시는 분도 계셨어요. 만석 될까봐 직원들은 불안해하는 것도 있었어요. 천원짜리 100장을 넘게 교환해야 하는데, 밤이라 은행 문도 안 열려 있어서 온 가게를 돌아다녀야 했었으니까요. 그래도 만원사례만 된다면 더 없이 좋겠죠.

그런데 이번엔 작년보다 객석이 두 배 이상인 250석이라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또 작년엔 만원 사례시엔 객석이 100명이니 10만원이 들어가는거잖아요. 그런에 이번에 250석이니 만원사례를 한 번씩 할 때마다 25만원이 나가요. 4번만 해도 100만원이 넘게 나가는 건데 결코 작은 돈은 아니죠. 그래도 기분 좋게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만원사례’, 그게 저희가 모르는 기준이 있더라고요.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초대권, 단체석, 극장 보유석 그런 것까지 다 계산해서 ‘풀하우스’로 친다는 기준이 있더라고요. 그걸 모르는 관객이 보면 ‘오늘 꽉 차서 만석인데 왜 안주지?’ 그렇게 말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노네임씨어터 대표나 저나 그런 걸로 장난치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작년에 ‘풀 하우스’는 5~6번으로 결정됐어요. 한 번은 ‘만원사례’ 로 볼 수 있기도, 아니기도 한 애매할 때가 있었어요. 그땐 내가 5만원, 대표가 5만원 내면서 기분 좋게 쓴 적이 있어요.

(만원 봉투에 배우들 싸인 미리 받아놓을 수 없나?) 봉투 그것도 다 돈인데, 미리 써놓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만원사례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배우들이 손 글씨로 10장씩 미리 써 놓을까요. 무작위로 관객들에게 봉투를 나눠주는건데 그렇게 되면 ‘레어 아이템’으로 소문이 나서 더 좋아하실까요. 마니아 마케팅,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네 배우 싸인 봉투를 다 받으면 또 다른 이벤트를 연다는 식으로 나갈까봐요.(웃음)“

◆ 변정주와 정태민의 또 다른 꿈
“언젠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작업을 하고 싶어요. 이야기가 너무 좋잖아요. 비올레타의 스토리를 들으면 마음이 찢어져요. 제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나온 안나 넵트라코가 나온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라 트라비아타> 공연을 보고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어요. 비올렛타의 연기를 표현할 수 있는 소프라노가 있다면 정말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제가 못할 거라고 생각하더군요. 예전에 뮤지컬 <김종욱 찾기>연습을 거의 울면서 했어요. 만나야 하는데 자꾸 만나지 못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가슴이 아팠어요. 막상 올려놓으니까 싫어하는 관객분들도 계셨어요. <김종욱 찾기>는 발랄하고 예뻐야 한다는 생각하신 분들이 많아 당황하더라구요. <번지점프를 하다>의 사랑 이야기도 좋아요. <라 트라비아타>는 그 보다 훨씬 절절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수 백년간 사랑 받은 이유가 있는거죠.

<날 보러와요>도 그렇고 <필로우맨>도 ‘사람’ 그리고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겹핍된 자들의 이야기죠. 모든 이야기가 ‘사람’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데,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도 해 보고 싶은 거죠.“-변정주

“저의 꿈은 <필로우 맨>을 잘 해내는거죠.(조심스럽게)준원이 형이랑 제가 대사 외워서 <스테디 레인>특별 아침 공연이라도 해볼까? 장난스럽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있어요. 물론 <필로우 맨> 때문에 그런 여유는 없지만 <스테디 레인> 안에 또 다른 엄청난 매력이 있잖아요. 그 때 쯤이면 수능도 끝나서 특별 공연이 많을 때라 한번 해 보고 싶었어요. 이명행 지현준 이석준 문종원 배우들 다 바쁘니까 아침에 나오기 힘들텐데 우리가 한번 해보자고. 하하.

노네임 작품을 보면, 탐 나는 작품이 많아요. 그 누구보다 신뢰하는 배우론 준원이가 선두에 있죠. (정태민 배우는 신뢰 하지 않나)‘태민이도 까부는 역할 말고도 잘 하네’란 신뢰를 주고 싶어요. 결국 배우란 결과물로 보여주는 직업이잖아요. ‘저 사람이랑 하길 잘했어’란 배우가 되야지요. ‘괜히 저 배우랑 작업했어’란 말이 나오지 않게 해야죠. 그들도 어려운 결정이었을텐데. 선택이 옳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만족시켜야죠. 그래야 저도 만족할겁니다. “-정태민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노네임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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