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 꿀’ 서구인의 관점에서 본 입양아의 삶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피부색: 꿀>을 관심있게 봤다. 벨기에 출신 만화가 융 헤넨의 2부작 동명 그래픽 노블(<피부색깔=꿀색>이라는 제목으로 몇 년 전에 출판되었고 얼마 전에 새로 쓴 3부를 포함한 개정증보판이 나왔다)을 작가 자신과 로랑 브왈로가 각색한 이 영화는 다섯 살 때 한국에서 벨기에로 입양된 주인공이 겪은 어린 시절과 사춘기의 기록이다. 영화는 주인공 융이 보관하고 있던 사진과 가족 영화, 뉴스 필름, 2010년에 드디어 한국을 방문한 융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그리고 그의 회상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애니메이션 영화로 구성된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나는 영화 속 한국 장면에서 옥에 티 또는 옥에 티처럼 보이는 것들을 거의 기계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아마 커다란 사기 그릇에 든 맨밥을 밑반찬도 없이 먹는 주인공 소년의 모습을 본 뒤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수저의 모양도 잘못 되었다. 한국식 수저는 유럽의 스푼과는 달리 삽처럼 얄팍하니까. 골목 가게의 낡은 미닫이 문에 '호텔'이라는 글자가 박혀있는 것도 실수일까?

실수였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는 실수이다. 융 헤넨이 아무리 꼼꼼하게 조사를 하고 그 조사를 바탕으로 그가 길거리에서 발견되었던 70년대 초의 한국을 재현하려고 해도 그 조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는 2010년까지 한국에 온 적이 없었으니까. 한국은 그에게 낯선 나라이다. 기억은 거의 휘발되었고 남은 건 간접 정보밖에 없다. 아마, 그는 한국보다는 일본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단 접하기가 쉽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그려지듯, 어린 시절 그는 고아들을 다른 나라에 팔아넘기는 한국을 부끄러워했고 일본 문화에 열광했다.



유럽으로 입양된 한국 출신의 예술가가 언어와 함께 잊힌 자신의 과거를 재현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우니 르콩트의 <여행자>가 그 작품이다. 하지만 한국어를 거의 잊어버린 한국계 프랑스인이 만든 <여행자>에는 이런 외국인의 관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한국에서 만든 실사 영화와 유럽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의 차이이다. 우니 르콩트에게는 주인공 소녀의 잔망스러움을 묘사하기 위해 혜은이의 노래를 추천해줄 수 있는 한국인 조언자들이 있었지만 융 헤넨에게는 없었다. 물론 한국이 주무대인 영화와 벨기에가 주무대인 영화의 차이도 있다.

여기서부터 나는 한국인 입양인들의 삶을 온전하게 그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이 소재는 어쩔 수 없이 두 개 이상의 문화를 동시에 건드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중 한 쪽만을 갖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대중문화를 통해 오직 한 쪽만을 접했다. 그것은 한국인의 관점이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베를린 리포트>, <미안하다, 사랑한다>, <토끼와 리저드>와 같은 작품들이 그 관점으로 만들어졌다. 유감스럽게도 그건 양쪽 중 잘못된 쪽이다. 한국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이쪽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지나간다. 그들이 그리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태어났을지는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서구인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들은 이 사실을 무시하고 절절한 혈연과 국가주의적 감상을 쏟아붓거나, 그 문화 차이를 대충 상상해서 거의 캐리커처와 같은 모습으로 과장된 모습으로 그리는데, 그 결과는 대부분 우스꽝스럽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그 때문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증상 없이 볼 수 없는 작품이다. 비슷한 이유로 고 최진실이 주연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역시 차마 다시 볼 염두가 안 난다. 물론 이것은 영어나 스웨덴어를 모르는 한국 배우에겐 끔찍한 고문이다. 그건 관객이나 시청자에게도 마찬가지. 이들이 모르는 외국어를 음성학적으로 암기해 재현하는 걸 보는 것도 힘들고, 당연히 서툴러야 할 한국어가 유창한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걸 보는 것도 힘들다.

융 헤넨은 올바른 쪽을 갖고 있다. 그가 <피부색: 꿀>에서 70년대 한국을 정확하게 재현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는 그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는 한국인 입양아가 70년대 벨기에에서 성장하면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를 들려줄 수 있는 생생한 증인이다. <피부색: 꿀>이 한국관객들에 더욱 아린 추억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는 우리가 대충은 알고는 있었지만 상상만으로는 정확히 재현할 수 없었던 세계에 대한 진짜 정보를 들려준다. 그리고 우린 그 진짜 정보와 우리가 피학적/가학적 국가주의적 상상을 통해 멋대로 그렸던 허구와의 차이점을 먼저 보아야 할 의무가 있다. 다행히도 그런 진짜 정보를 전해주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외국으로 팔아넘긴 20만 명의 아이들은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피부색: 꿀>]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