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2’, 겨우 이럴려고 속편을 만들었나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친구>는 굉장한 신드롬을 낳은 영화이다. 당시로서는 기록적이었던 820만 명의 관객이 든 것 이외에,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등 아직도 회자되는 유행어를 낳았다. 이후 영화 제작에도 영향을 미쳐서, 조폭을 소재로 삼거나, 강렬한 남성 신파를 주축으로 삼거나, 80년대를 유년기로 회상하거나, 부산이라는 강렬한 지역색을 차용하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12년 만에 <친구2>가 나왔다. 영화 <친구2>는 전작은 물론이고, 그동안 무수히 만들어진 유사장르의 영화들과 비교되는 운명을 타고 났다. 즉 <친구2>의 성패는 전작과 유사장르 영화들과 비교를 통해 판단될 수밖에 없으며, 전작에 버금가는 서사적 완결성이나 정서적 울림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친구2>는 그러한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친다. 김우빈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가 상당히 좋고, 곽경택 감독 특유의 진정으로 상스럽고 지나치게 잔혹한 장면들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왜 만들었는지 이유를 묻게 되는 영화이다. <친구2>는 전작이 강렬하게 보여준 사건과 이를 둘러싼 시대의 단면들을 속절없이 앞뒤로 늘려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승되는 종적인 축을 다루려고 한다. 그러나 원대한 포부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도는 역사적 시각을 결여한 탓에 난삽한 후일담 뭉치가 되어버렸다.

◆ 아버지와 아들, 그래서?

영화 <친구2>는 준석(유오성)의 재판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친구인 동수를 살인 교사한 죄로 17년간 수감생활을 한다. 출소를 앞둔 준석에게 과거 '레인보우' 멤버였던 혜지(장영남)가 찾아와 아들 성훈(김우빈)을 부탁한다. 성훈은 준석의 조직원들을 폭행하고 감옥에 들어와 보복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준석의 비호를 받는다. 병약해진 회장을 대신해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은기(정호빈)에 맞서, 출소한 준석은 성훈과 함께 퇴출된 수하들을 모아 세를 불린다. 준석과 은기의 대립이 일촉즉발로 치닫는 가운데 마침내 회장이 죽고, 성훈의 친부가 동수임이 밝혀지는데...

"내가 니 시다발이가?"라는 대사로 대변되듯 <친구>의 키워드는 겉으론 평등해 보이는 친구들 간의 미묘한 권력 다툼이었다. 반면 <친구2>의 키워드는 아버지와 아들이다. 성훈은 의붓아버지에게 맞으면서, 아버지니 선생이니 하는 성인남자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며 자랐다. 그는 친부는 물론이고 상징적인 의미의 '아버지'가 없는 진정한 '후레자식'이다. 그런 그가 감옥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존재를 만난다. 이후 준석은 성훈에게 유사아버지가 된다.



<친구2>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키워드를 준석과 준석아버지의 관계로까지 확장한다. 준석아버지는 부산에서 일본으로 참치밀매를 하다가 5.16 군사혁명위원회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뒤 야쿠자와 손잡고 부산에서 조직을 키워나간다. 준석아버지에게 수혜를 입은 자가 지금의 병든 회장으로 준석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은기에게서 조직을 탈환할 것을 부추긴다. 회장이 준석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준석아버지를 비추는 과거장면이 불쑥불쑥 들어온다. 이 장면들은 회상장면이라 하기엔 분량이 애매하고, 현재 서사와의 접점은 모호하다.

이는 마치 <대부> 시리즈가 그러했듯, 196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준석아버지-준석-성훈이라는 3대를 통해 부산조폭의 어떤 계보를 짚어주려는 감독의 의도로 읽힌다. 장중한 음악들이 그러한 뉘앙스를 더한다. 하지만 이 장면들은 전혀 그러한 의미를 창출하지 못한다. 60년대 참치밀매와 야쿠자와의 연계 등은 단순한 과거사건의 나열일 뿐이지, 이것이 현재와 어떤 연결을 맺는지 역사적 관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폭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이 어떻게 세습되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봄으로써 한국판 <대부>에 해당되는 영화는 이미 있다. 그것은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로, 80년대 초 비리세관공무원이었던 최익현(최민식)이 종친회를 통해 알게 된 조폭 최형배(하정우)와 손잡고 세력을 늘려나가다가 '범죄와의 전쟁' 선포로 검찰과 조직에게 제거위협을 당하지만, 인맥을 활용한 뱀 같은 처세술로 합법적인 사업가로 변신해나가고, 과외 등을 통해 아들을 검사자리에 앉혀 권력을 세습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결국은 우리가 남이가?

<친구2>는 <범죄와의 전쟁>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역사적 관점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아무 맥락 없이 과거장면을 외삽시키며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키워드를 반복한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이 지닌 동력학을 끝까지 밀고가지도 못한다. <친구>가 친구들 사이의 미묘한 권력관계라는 키워드를 끝까지 밀고 나가, 동수의 2인자성이 폭발하는 위기를 보여주고, 오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준석이 동수를 죽일 수밖에 없는 비정한 상황까지 보여주었던 것과 달리, <친구2>에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키워드는 미온적으로 봉합된다.

성훈은 생부인 동수의 죽음에 대해 듣게 되는데, 적당히 불구로 만드는 조직세계의 불문율과 달리 동수를 끝까지 찔러서 죽인 은기에게 성훈은 복수한다. 그러나 정작 동수를 찌르라고 시킨 준석에겐 복수하지 않는다. 성훈은 동수에 대해 아무 기억도 없지만, 단지 생부라는 이유만으로, 은기에게 복수한다. 그것이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전통적인 윤리이다. (곽경택 감독은 그것을 본능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본능적인' 혈기와 분노도 이미 유사아버지로 받아들인 준석 앞에서는 발현되지 않는다. 생부의 죽음을 안 성훈의 분노는 은기를 죽임으로써 결국 현재의 유사아버지와의 관계를 돈독히 할 뿐, 그 관계를 뒤흔들지 못한다. 결국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윤리를 급진적으로 몰고 가지 않음으로써, '아버지와 아들'이 지닌 파괴적 모순관계를 폭발시키지 않고 적당히 봉합하는 현실논리를 따른다. 즉 자신을 '아들로 거둔' 체제에 순응하고 충성하는 수구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쩌면 <친구2>의 진정한 키워드는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안면' 혹은 '정리'인지도 모르겠다. 준석은 자기 조직원을 죽인 성훈에 대한 보복을 과거 '안면'이 있던 혜지의 청탁으로 막아준다. 성훈은 준석이 자신의 친부를 죽게 한 것을 알았지만, 은기와 달리 그간의 '정리'가 쌓였기에 죽이지 못한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조연은 감방에서 준석을 알게 된 뚱뚱한 젊은이(장지건)인데, 그는 순전히 '정리'로 인해 준석을 따른다.

'안면' 혹은 '정리'라... 이를테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1992년 초원복집에서 남긴 유명한 격언인 "우리가 남이가?"란 말이 담고 있는, 낡고 폐쇄적이며 사유화된 사회의 규범과 퇴행적인 가치가 이 영화의 주제이다. 타협적인 결말 역시 아무도 반성하거나 각성하지 않은 채, 즉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악은 악대로 굴러갈 것이라는 체념적인 미래를 예견한다. 모든 가치가 과거로 역행하는 지금, 어쩌면 이것이 처연한 시대정신인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친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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