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17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막을 내린 서울예술단의 <푸른 눈 박연>(극본 작사 김효진, 작곡 김경육, 연출 이란영, 안무 손미정 박경수) 은 한 마디로 곱디 고운 정이 흐르는 가무극이었다. 이는 거창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기 보다는 마음과 마음이 통할 수 있게 다가왔기에 가능한 것.

서라운드 리얼 스크린의 원근법을 활용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스르르 등장하고 사라지는 무대, 판화기법인 에칭기법을 이용하여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초현실적 공간을 표현한 영상, 도깨비라고 손가락질 받던 서양인 박연과 조선 사람들의 사랑과 우정이 조화돼 따뜻한 여운을 남겼다.

<푸른 눈 박연>은 26년 뒤 조선에 표착한 하멜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벨테브레(박연)의 이야기다. 목숨을 걸고 조선을 탈출한 하멜과 달리 박연은 ‘왜 조선을 떠나지 않았는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조선 최초의 귀화 서양인인 ‘얀 얀스 벨테브레(Jan Jans Weltevree)’는 ‘박연’이라는 조선이름을 부여받고 조선여인과 결혼해 조선인으로 살다 간 인물.

<푸른 눈 박연>은 장엄한 음악과 영상으로 펼쳐지는 풍랑 속에서 벨테브레의 일행이 나가사키로 가던 중 제주도에 표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호위부대의 대장으로서 병자호란에 참전해 왕을 호위했던 병사이자, 무기 개발 기술자로 홍이포라는 대포를 만들었던 대포 장인,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조정의 신임을 얻었던 조선의 무관 박연의 실제 이야기에 상상력이 더해진 것.



벨테브레의 화포 기술을 높이 산 인조의 지시 하에 훈련도감에서 포를 만들면서 조선에 머무는 박연과 정묘호란으로 청나라에 끌려가 잠시 조선을 버리려고 마음먹은 ‘덕만’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작품은 긴장감 역시 놓치지 않았다.

국적보다 중요한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고향이고, 맘 붙이고 사는 곳이 고향이다. 불가해한 운명을 사랑한 남자 박연의 비밀은 거기에 있었다.

<푸른 눈 박연>은 예쁜 말, 재미있는 말은 물론 구수한 욕설을 익히며 서서히 조선 사람이 되어가는 박연의 모습을 인간적으로 불러낸다. 서양인 박연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양의 향취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특히, 결혼식 장면의 퐁퐁 뛰어오르는 군무는 유쾌한 반란을 느끼게 했으며, 김효진 작사, 김경육 작곡가의 센스가 돋보이는 ‘술래잡기’ ‘우린 부럽지 않아’ 등은 막이 내린 뒤에도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서울예술단의 이전 작품인 <잃어버린 얼굴>의 잔상을 가지고 강력한 뭔가를 기대한 이라면 마음에 차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잃어버린 얼굴> 이 '한' 이 관통하는 작품이라면, <푸른 눈 박연>은 '정'이 흐르는 작품이다. 따뜻한 곳에서 섬뜩한 냉기를 그리워하면 재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강력한 한 방을 기대하기 보다는 푸른 눈의 도깨비 박연의 시선을 흥미롭게 따라가는 게 팁이라면 팁이겠다.



<푸른 눈 박연>의 숨은 주인공은 성큼 성큼 온 무대를 뛰어다니며 ‘감자’를 외치고, ‘곱다’를 외치는 덕구 박영수라는 말도 나왔지만, 역시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이는 ‘박연’이다. 두 박연 모두 '나 주인공이요'란 이미지로 뽐내지 않으면서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해 냈다.

이시후 박연은 굵은 보이스 컬러와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강인한 선장의 느낌을 줬다면, 김수용 박연은 좀 더 부드럽게 조선 사람에게 동화 된 이미지였다. 두 박연의 차이점이라면 연리와 사랑에 빠지는 캐릭터 해석의 질감이었다. 김수용 박연은 유들유들하게 사랑에 빠지는 총각이었다면, 이시후 박연은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더 많이 느껴지는 이방인이었다. 타국 땅에서 조선 사람들의 정에 이끌리면서도 마음 한 켠에 고국을 그리워하는 외로운 마음은 이시후 박연에게서 더 많이 느껴졌다.

서울예술단 배우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박영수 덕구는 막내 아들처럼 사랑스럽고 뭔가 더 챙겨줘야 할 것처럼 애틋했다. 김혜원 연리는 대찬 언니,수줍은 소녀, 발그레 새색시까지 딱 연리다. 일품 저음은 물론 극의 양념을 제대로 버무린 최정수 배우의 존재감도 돋보였다. 이젠 서울예술단의 F4 이시후 박영수 김도빈 조풍래 배우에 이어 최정수 배우까지 F5로 불러야 할 것 같다.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서울예술단]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