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1994’ 찬사받아 마땅한 진짜 이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요즘 뭐 즐겨 보세요?” 사람들이 물어온다. 그럴 때면 단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을 한다. “응답하라 1994요!” 묻지 않을 경우 내 쪽에서 먼저 넌지시 말을 건네 본다. “그거 보세요?” 본다는 사람과는 신바람이 나서 이게 감동이었느니, 저거 때문에 울었느니, 수다 한판을 벌인다. 안 본다는 사람을 만나면? 마치 다단계 판매원처럼 꼭 봐야 하는 이유를 끝없이 늘어놓게 된다. “뜨개질을 하며 봐도 되는 드라마가 있고 설거지를 하며 듣기만 해도 이해되는 드라마가 있는데 이건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는. 아니 떼면 안 되는 드라마에요!”

tvN에서 월급 받는 사람처럼 오죽이나 열과 성의를 다해 설득에 나섰으면 “제가 반골 기질이 있어서요. 하도 좋다, 좋다 그러시니까 ‘안 봐야지!’ 하게 되네요.”라는 분이 다 계셨겠는가. 이내 농담이라고 덧붙이셨으나 지나친 홍보는 반감을 가져온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따라서 살짝 자제 중이긴 한데 어쨌든 요즘 필자는 tvN <응답하라 1994>에 푹 빠져 살고 있다.

보아하니 애청자들의 대다수가 퍼즐 조각 맞춰가듯 ‘나정이 남편 찾기‘에 몰두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나정(고아라)이 남편이 누가 됐든 거기엔 별 관심이 없다. 제작진도 시청자와 게임을 하듯 재미삼아 넣은 장치일 테고 일찌감치 윤진(도희)이 짝꿍으로 결정이 난 삼천포(김성균)를 제외한 나머지 네 사람의 후보 모두 마음에 드는 청년들인지라 편한 마음으로 지켜볼 생각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첫 번째는 지금껏 그 누구도, 정치인들도, 언론도, 나라조차 해내지 못한 영호남 간의 대화합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특히 전라도 사투리에 대한 편견을 깨줬다는 점에서 감격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조폭들의 전유물이었던 전라도 사투리. 그걸 윤진이라는 앙증맞지만 당찬 처자가 한방에 날려버렸으니 통쾌할 밖에. 한때 우리 모두를 경상도 사나이의 매력으로 끌어들였던 제작진이 이번에도 작심을 했나보다. ‘이래도 전라도의 매력에 안 빠질 테냐!’ 하고.

전 후편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웠던 명장면, 두고두고 화제가 될 해돋이 키스신. 내게는 영화 <타이타닉>의 러브신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었으니 그만큼 제작진이 공들인 결과이리라. 이미 전편에서 영호남 커플(성동일, 이일화)이 등장했지만 정대만(도희)과 삼천포, 이 풋풋한 커플의 탄생은 또 다른 차원의 벅찬 감동이었다. 정치에서도 스포츠에서도 늘 대결구도로 아옹다옹해온 두 지역 젊은이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을 연출해낼 줄이야.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건 젊은이들의 이야기이지만 부모, 가족을 배제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들을 장국영과 똑 닮았다고 여기는 삼천포 어머니, 해태(손호준)와 순천시 가스폭발 에피소드, 칠봉(유연석)이 어머니의 재혼, 빙그레(바로)와 아버지의 골 깊은 갈등, 윤진이 어머니 귀경 사건, 그리고 아들 잃은 나정이 부모님과 쓰레기(정우) 사이에 얽힌 절절한 사연까지, 서로 다르지만 서로 닮은 부모 자식 간의 얘기. 매회 속정 있는 보물 같은 이야기들이 있어 이 드라마를 사랑하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는 것이다.

모두들 말한다. 어찌 이리도 절묘한 캐스팅일 수가 있느냐고. 꾸준히 영화에 출연해온 배우들이야 그러려니 해도 연기는 난생 처음이라는 아이돌이 어떻게 이런 명연기를 펼칠 수 있느냐며 감탄들을 한다. 필자의 생각에는, 답은 ‘대본’이다. 똑 떨어지는 완성도 높은 대본만이 몰입을 가능케 하고 온전히 몰입을 다한 연기가 공감을 불러오는 건 당연지사가 아니겠나. 게다가 특정인 몇몇만을 추켜세우고 그 몇몇의 삶만이 삶인 양 한쪽 위주로 그려가는 대본이 아니어서 더 좋다. 최근 들어 새록새록 절감하게 되는 게 대본의 힘이다. 이소라의 멘트를 인용하자면 ‘진부한’ 대본 탓에 멀쩡히 연기 잘하던 연기자가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모습을 어디 한두 번 봐야 말이지.

눈치 챈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건 제작진에 대한 찬양의 글이다.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2013년 한 해를 다독거려줄 드라마 한편이 이 스산한 초겨울에 나와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70년대 후반에 20대를 시작한 나로서는 그 시대를 조명할 <응답하라 197x>도 나와 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그러나 나는 잘 안다. 그 시대를 살뜰히 그려낼 참신한 인재가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을. 오랜 주입식 교육의 산물인 고리탑탑한 인물들만 즐비할 뿐. 나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안타깝고 부럽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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