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주 청룡 여우주연상에 반발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식 ‘명연기’의 매너리즘 깬 한효주의 성취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청룡영화상 시상식 중계를 보지 않았다. 영화건 다른 무엇이건, 한국에서 하는 시상식 행사만큼 오글오글한 것도 없으니까. 결과에 대단한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온전한 수상자 리스트를 확인한 건 시상식이 끝난지 몇 분 뒤였다. 특별히 재미있는 리스트는 아니었고, 작품상이 이준익의 <소원>에게 돌아간 것에는 그리 동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꼼꼼하게 지적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주는 상이 아니다.

필자가 조금 놀랐던 것은 여우주연상이 <감시자들>의 한효주에게 돌아갔다는 것에 대한 반발감이 예상 외로 컸다는 것이었다. 필자에겐 이처럼 당연한 결과는 없었는데 말이다. 과거의 청룡 여우주연상 수상자들을 보라. 한효주의 이름은 여기에서 아주 잘 어울린다. 이 흐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청룡영화상은 장르 영화에 출연해 조금 독특한 연기를 한 여자배우들에게 상을 많이 주었다. <소름>의 장진영, <아는 여자>의 이나영, <블라인드>의 김하늘, <심야의 FM>의 수애,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임수정과 같은 배우들을 보라. 한효주의 연기는 <감시자들>이 발표되었을 때 호평을 받았고, 부일영화상에서도 이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정도면 수상결과에 그리 놀랄 이유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한효주에게서 '여우주연상' 수상자의 무게를 느끼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어떤 사람들은 경력의 빈약함을 지적한다. 하긴 나도 <아주 특별한 손님>을 제외한 한효주의 작품들에게서 대단한 인상을 받았던 적은 없다. 히트작이었던 드라마 <찬란한 유산>은 거의 혐오하는 수준이고, <오직 그대만>과 같은 영화는 진부하기 짝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반창꼬>의 연기는 좋았지만 캐릭터의 무신경함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경우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드라마 안에 녹아든 것 이상은 지적하지 못하겠다. 그러니 한효주의 출연작 중 작품의 완성도와 배우의 개성과 능력이 합쳐져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낸 건 저 두 편 정도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감시자들>이라는 하나의 영화에서 한효주가 거둔 성취를 무시할 이유가 될까.



조금 짜증이 나는 것은 이런 반발감 속에서 소위 '영화상용' 연기 안에 배우들을 제한하려는 의도가 읽힌다는 것이다. 한효주와 함께 수상후보에 올린 배우들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극단적인 연기를 한 사람들이다. 딸이 끔찍한 일을 겪은 엄마가 둘, 미치광이 살인마가 하나. 그나마 남자친구 때문에 고생인 은행원 정도가 정상적인 사람이다. 이들의 연기가 나빴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들을 묶어서 하나로 보면 한국식 '명연기'의 매너리즘이 보이지 않는가? 일부 매체들이 '오열 연기'니 '통곡 연기'니 하는 라벨을 붙여 칭찬하는 종류 말이다. 그게 나쁘거나 불필요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이 상에 관여했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여기에서 벗어난 두 배우인 한효주와 김민희에 더 주목했을 것이다. 연기력을 떠나 무언가 다른 가능성과 방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리고 눈치 채셨는지? 한효주는 이번 후보자들 중 '엄마'나 '여자친구'에서 벗어난 역할을 연기한 유일한 배우이다.



한효주의 경우 이런 '명연기'의 반대를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고, 행동은 기능적이며, 모든 연기가 <감시자들>의 전체적 액션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기존 이미지를 적절하게 배반하는 동시에 이용하는 효율적인 스타 플레이어로서의 역할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건 주연급 한국 여자배우에게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기회이며 배우가 이를 제대로 활용했다면 당연히 칭찬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여자배우들에게 주어지는 역할의 폭이 좁아터진 한국 영화계의 갑갑한 상황이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한효주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기로 하고 지금부터는 소위 '명연기'의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눈에 잘 보이고 쉽게 분류가 가능한 과시적인 감정연기에만 집중하는 한국 대중의 선호도는 배우들에게 진짜로 나쁜 영향을 끼친다. 앙상블을 깨트리고 캐릭터를 평면화시키며 결정적으로 영화적 연기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최근의 예로는 손예진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도 기분이 좋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손예진이 아름답고 재능이 풍부한 배우라고 믿는다. 하지만 최근 이 배우가 최근 <타워>와 <공범>에서 보여준 연기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타워>야 출연하는 배우 모두가 발연기를 하는 영화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공범>의 연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손예진은 이 영화에서 시나리오의 지문에 묘사된 모든 감정을 선별이나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일차원적인 연기를 하는데, 이건 지나치게 많은 '오열연기'가 들어가 있어 마치 '명연기'처럼 보이는 실패작이다. 이런 경우에는 관객들로부터 제대로 된 피드백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배우가 잘못된 매너리즘에 빠질 가능성도 크다. 손예진은 지금 굉장히 위험한 길에 있다.



반대로의 경우로, 이번 청룡에서는 상을 타지 못했지만 올해 가장 주목을 받고 거의 모든 신인상을 휩쓴 여자배우인 정은채를 보자.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이 배우의 테크닉은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고 영화 속에서 그런 걸 일부러 발전시킬 생각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이 배우를 잊기는 쉽지 않다. '오열연기'처럼 쉽게 분류될 수 없는 무언가가 배우와 캐릭터에 잊을 수 없는 존재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 아슬아슬하고 절묘한 무언가를 잡아내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영화이다.

영화는 연극과는 달라서 '명연기'가 꼭 필요하지 않은 장르이다. 어떤 때는 연기를 전혀 하지 않는 게 가장 좋다. 서툰 신인배우의 조심스러운 손짓이 노련한 전문배우의 연설보다 더 강렬할 수도 있다. 종종 배우의 실력보다는 캐스팅이 더 중요하다. 어떤 때는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연기가 과연 배우의 연기력에 의한 것인지, 감독의 연기 연출 덕인지, 전적으로 우연의 결과인지 알 수 없는 때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영화의 마술이다.



연말 영화상은 중요한 행사이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을 잡아내는 데에 그렇게 큰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여러분도 그 해 본 영화를 정리하면서 올해 보았던 가장 좋은 연기나 배우가 이런 영화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류임을 확인할 때가 꽤 많았을 것이다. 필자 역시 올해 최고의 여자배우들을 뽑으라면 영화상 후보 리스트에 오르는 배우들 절반은 언급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꾸준히 일관성을 가지고 자기만의 관점에 따른 연기상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 행사가 하나 있어도 좋은 일이다. 그건 그 소소한 개성의 차이만큼 다른 영화상이 하지 못하는 다른 일을 한다는 뜻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SBS 캡쳐, 영화 <감시자들><광해-왕이 된 남자>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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