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 많고 투박하지만 절실한 스릴러 ‘더 파이브’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여기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여자가 있다. 어느 날 집안으로 들어온 괴한에게 영문도 모른 채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잃었다. 괴한이 휘두른 방망이에 허리를 맞아 꼼짝할 수 없는 순간에, 딸이 괴한에게 난도질당하는 것을 보아야 했다.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으나, 담당의사가 장기를 적출하려는 위기의 순간에 가까스로 깨어나서 목숨을 건졌다.

2년 후 그는 하반신이 마비된 채, 가족도 재산도 모두 잃고 재개발 지역의 작은 집에서 봉사자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경찰은 범인의 윤곽도 잡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그는 범인이 현장에서 집어간 남편의 지포 라이터를 미끼로 범인의 그림자라도 잡아볼까 싶어,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낚시글을 올리고 있다. “지포라이터 시세보다 비싸게 삽니다.”

<더 파이브>는 동명의 웹툰을 그린 정연식 작가가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영화이다. 정연식 감독은 <더 파이브>의 시나리오를 먼저 썼지만, 영화화되기 힘든 상태에서 우선 웹툰으로 발표하고, 영화화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아예 감독으로 데뷔했다. 시나리오와 그림, 연출까지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란 점도 놀랍지만, 자신이 생각한 콘텐츠를 기필코 발표하기 위해 애착과 집념을 놓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영화 <더 파이브>에 대한 평단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세련된 만듦새를 지닌 스릴러도 아니고, 복수극으로서 잘 설계된 기획을 갖고 있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점은 따로 있다. 그것은 스릴러라는 장르의 틀 바깥에 존재하는데, 투박한 열정과 절실한 몰입감이 느껴지는 드라마라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11월 14일에 개봉한 <더 파이브>의 초반 관객 수는 저조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점진적으로 관객이 늘고 있다.



◆ 여성 장애인의 처절한 복수극

영화 <더 파이브>에서 가장 핵심적인 모티브는 모든 걸 잃은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남은 자신의 장기를 미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복수를 계획한다는 설정이다. 영화는 스릴러 장르로서의 쾌감보다는 장애여성의 처절한 복수극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겁대가리 없이, 어디 여자가, 그것도 병신이, 그것도 혼자서...” 은아(김선아)가 복수를 위해 무기를 구입하려다 무기판매상들에게 오히려 두들겨 맞으며 들었던 말이다. 이 말은 장애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드러내는 말이자, 장애여성인 은아가 복수를 꿈꾸는 것이 얼마나 무망한 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홀로 살아남은 장애여성. 세상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가 된 은아가 과연 어떻게 복수를 실현할 것인가. 그러나 영화는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인식론적 전환을 보여준다.

은아와 봉사자(박효주)가 밥을 먹는 장면에서, 봉사자는 자신의 상처를 내보인다. 은아는 평소 봉사자를 ‘천진한 예수쟁이’쯤으로 생각해왔으나, 그는 나름대로 깊은 상처를 지닌 사람이었다. 봉사자는 은아에게 “당신은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지 않냐?”고 말한다. 장애인에게 건강한 몸이라니? 맞다. 장애인은 환자가 아니다. 장애가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건강한 몸이다. 암환자인 봉사자는 헌혈도 장기기증도 할 수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데, 은아는 그말에 눈이 번쩍 뜨인다. 내 몸은 의사도 탐내던 희귀혈액형의 건강한 장기를 지니고 있지 않던가.

그는 자신이 가진 유일한 것, 즉 자신의 몸뚱이를 판돈으로 걸고 복수를 계획한다. 또한 그는 휠체어 장애인이긴 하지만, 그에게는 도미노를 설계할 정도로 좋은 머리가 있지 않은가! 이러한 인식론적 전환. 즉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상태에서 자신이 가진 것이 꽤 많이 남아있음을 인식하는 것. 영화는 절망으로 바닥을 친 사람이 바닥을 딛고 새로운 희망을 꿈꿀 때 느끼는 기묘한 활력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다.



◆ 오합지졸,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은아는 자신의 장기를 적출하려고 했던 의사를 찾아가 협박하며, 장기이식 대기자의 가족들 중 자신이 계획한 복수극에 동참할 수 있는 전문적인 능력을 지닌 이들을 알선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는 경찰, 무술 유단자, 엔지니어 등을 요구하였지만, 실제로 섭외된 자들은 흥신소 직원, 삼류건달, 탈북한 기술자 등이다. 이처럼 영화는 이들이 오합지졸이고, 은아의 머릿속의 계획과 실제상황은 다르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보여준다.

즉 <더 파이브>는 전문가들의 기술과 활약을 보여주는 매끈하고 쿨한 케이퍼 무비 <도둑들>과는 전혀 다른 질감을 지닌 영화이다. 장애인·전과자·탈북자·채무자 등 소수자들이 모여 장기 이식이라는 투박하고 처절한 판돈을 걸고 벌이는 뜨끈한 연대극임을 처음부터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일처리가 매끄럽지 못하고, 복수극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한다고 해서 영화의 흠결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은아의 계획은 처음부터 이지러진 채 출발하였으며,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혀 좌충우돌하다가 가까스로 굴러가 목적지에 다다른다는 것은 이 영화의 설정이 품고 있는 애초의 선택이자 한결 현실적인 묘사이다.

심지어 영화는 오합지졸의 인물들이 처음부터 은아와 연대하지도 않았음을 보여준다. 은아의 장기이식을 미끼로 모인 이들은 각자의 욕망에 의해 은아를 희생시켜 장기를 얻으려고 한다. 당연하다. 설계자의 생각과 달리 실행자는 각자 욕망의 주체로 행동하는 법이고, 은아는 가장 만만한 사회적 약자가 아니던가. 은아는 무엇으로 그들에게 믿음을 주고 그들의 행동을 촉구할 것인가. 그는 권력을 지닌 리더가 아니며 오직 자폭으로 그들을 협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상처를 내보임으로써 공감과 연민을 통해 설득과 신뢰와 연대를 이끌어낸다.

이들이 어렵게 연대를 이룬다고 해서 범인이 쉽게 잡히는 것도 아니다. 착오가 발생하고, 범인의 역습이 일어난다. 은아 일당은 범인에게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인 범인에게 가족을 잃고 불구가 된 은아로서는 그에게 복수하길 별러왔지만, 정작 그와 마주했을 때 온몸이 얼어붙는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은아는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홀로 범인을 찾아가 맞대결을 펼친다. 비록 휠체어에 의지한 장애인이지만, 은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토록 강하고 잔혹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범인의 약점을 찾아내어 공략함으로써 복수에 다가선다.



◆ 스릴러의 만듦새보다 더 중요한 이 영화의 가치

<더 파이브>는 후반에 스릴러로서 힘을 들인다. 범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은아가 기계장치를 활용하는 장면이나, 그로 인해 심리적인 타격을 입은 범인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장면들도 꽤 재미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의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인정과 땀내가 느껴지는 드라마의 장면들이다.

가령 자신을 은아로 알고 찾아온 범인에게 봉사자가 은아 대신 욕을 퍼붓는 장면이나, 조폭(마동석)이 병든 아내와 애증을 담은 말로 티격태격하는 장면이나, 탈북기술자가 “나 김책 공대야”라며 남한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스펙을 말하면서 자부심을 보이는 장면들이 사진의 푼크툼처럼 잔상을 남긴다. 스릴러로서 빈틈이 많지만, 그 틈새를 감정과 웃음이 메우고 있는데, 그것이 과히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더 파이브>에서 가장 칭찬할만한 대목은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다. 영화는 장애인이 처한 현실과 장애가 주는 제약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김선아는 하반신이 마비된 은아의 역할을 하기 위해, 다리를 묶은 채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는 이처럼 장애를 철저하게 재현하면서도, ‘장애=무능’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가진 능력에 주목하는 진보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은아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니라, 하반신의 운동기능을 잃었을 뿐이며, 지적 능력, 언어능력, 감각기능, 타인과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 등을 모두 높게 가지고 있다. 오히려 수많은 능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범인은 가장 중요한 타인과의 공감능력을 상실하였다. 영화는 이들의 대결을 통해, 누구의 장애가 더 치명적인지를 말해준다. 결말이 주는 교훈과 쾌감을 직접 확인해 보시길.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더 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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