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국내에서 자주 만날 수 있어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했던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공개됐다. 바로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 수지오페라단 송년오페라 <리골레토>가 바로 그것.

<리골레토>를 수차례 보며 풀리지 않는 숙제 한 가지가 만토바 공작의 정체성이었는데, 연출가 마리오 데 까를로(협력연출 홍민정)는 16세기 이탈리아 미술가 쥬세뻬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의 회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새로운 만토바 공작의 캐릭터를 창조했다. 특히 궁정 가신들의 모의와 음모가 뒤섞인 악몽 속에서 늘 긴장된 상태로 살았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루돌프 2세'란 그림이 주는 임팩트가 컸다. 자신의 인생에 별 생각 없는 바람둥이로 보였던 공작이 나름의 인생역정을 지닌 인물로 입체적으로 재탄생 된 점이 흥미로웠다.

연출가 마리오 데 카를로는 2013년 5월 이탈리아 산까를로 극장에서 세계적인 바리톤 디미트리 흐보로브스키, 테너 스테판 포프, 소프라노 데지레 란카토레 등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성악가들과 함께 <리골레토>를 무대에 올려 주목 받았던 연출가 중 한 명이다.

서곡부터 연출가는 적극적인 해석을 시작했다. 악몽에 시달리는 만토바 공작이 등장하고 그를 둘러싸고 딸 질다를 안은 채 분노에 찬 리골레토, 저주의 상징인 몬테로네가 나타난다. 그렇게 괴로워하는 한 남자를 전면에 내세운 채 공연의 막은 올라갔다. 또한 질다가 사라지고 잠시 고민하는 만토바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쥬세뻬 아르침볼도의 회화와 해골 등이 놓인 사적인 공간에서 안경을 쓴 채 책을 읽는 공작의 모습을 불러냈다.



꽃을 든 광대 ‘리골레토’의 원죄를 들추는 오페라다. 이번 ‘리골레토’는 광대 지팡이 대신 꽃을 들고 나온다. 이 꽃이 오페라 전체에서 중요한 암시를 하고 있다. 광대 아비의 손에 들린 붉은 꽃은 딸 질다의 손으로 건네져, 막 사랑에 빠진 여인의 얼굴에 웃음을 머금게 하지만 곧 비극의 빛깔로 변한다. 꽃을 든 광대 아니 아비는 본인이 딸을 이런 파국으로 이끈 것 같아 통곡하며 막이 닫혔다.

다만, 연출가는 타이틀 롤인 ‘리골레토’란 캐릭터보다는 ‘만토바’ 캐릭터를 더 애정있게 바라본 듯 하다. 그 결과 리골레토란 캐릭터에 대한 연민과 ‘만토바’에 대한 연민이 충돌했으니 말이다. 물론 1막에서 리골레토가 단순히 궁전 광대가 아닌 만토바를 조정하는 보다 적극적인 해석과 리액션으로 관객의 눈을 집중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톤 조지 가닛제는 공명이 충분하지 않은 소리와 부성을 충분히 표출하지 않은 연기가 다소 아쉬움을 안겼다. 보다 생동감 주는 힘찬 호연이었으면더 좋았을 듯 싶다.

수지오페라단 <리골레토>는 소프라노 엘레나 모스크 질다의 아리아에 박수가 쏟아지는 무대였다. 매끄러운 고음, 유연한 프레이징이 겸비된 레제로 콜로라투라의 여왕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만토바 역 스테판 포프의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가창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만토바를 바라보는 진중한 연출의 시각을 100% 온전히 담아냈다고 보긴 힘들겠다.



르네상스 회화작품을 보는 듯한 무대(이학순)와 소품, 화려하지만 기품 있는 고전의상으로 보다 고급스럽게 오페라를 그려냈다. 브루노 아프레아 (Bruno Aprea)가 지휘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매끄럽게 베르디 음악의 양감을 살려냈다. 아리고 바쏘 본디니(Arrigo Basso Bondini)가 무대의상을 책임지고, 그란데 오페라 합창단이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베이스의 파워는 스파르푸칠레 역 베이스 김 요 한과 몬테로네 역 베이스 권서경이 살려줬다. 젊은 성악가 권서경은 카리스마와 깨끗한 저음이 인상적이었다. 김 요 한은 이전 무대들과 달리 혼신을 다해 연주를 들려준 점이 좋은 인상을 갖게 했다. 국내 베이스 중에서 가장 많이 스파르푸칠레 역을 했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스파루푸칠레’의 대명사이다. 그런데 어제 스파르푸칠레는 분명 달랐다. 훨씬 정성을 쏟았고, 표정도 더 살아있었다. 그 결과 소리도 훨씬 좋았다. 이렇듯 계속 마음이 느껴지는 무대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막달레나 역 메조 소프라노 최승현, 스파르푸칠레 베이스 김요한 과 질다 역 소프라노 로잔나 사보야 가 함께하는 3막 3중창의 리듬이 팔딱거리며 살아난 점 역시 기억에 남는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수지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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