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갈등 부추기는 TV를 위한 처방전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고부 갈등은 그 옛날 나라님조차 해결을 보지 못했던 일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신경전이 빌미가 되어 폐위된 왕비며 세자빈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하니까. 시대가 바뀌고 처지와 우위는 달라져도 팽팽한 줄다리기만큼은 계속되지 싶은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요즘 TV 속 시어머니들은 해도 너무 한다. 도무지 어른다운 어른을 찾아볼 수가 있어야 말이지. 세상사는 재미 중 싸움 구경이 제일이라지만 미디어가 싸움을 말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추기는 느낌이랄까?

어디 시어머니만 나쁠 리 있나. 경우 없는 며느리가 결국엔 나이를 먹어 못된 시어머니가 되는 걸 텐데 무슨 까닭인지 드라마에는 독한 시어머니들만 그득하다. 오죽이나 답답했으면 시청자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악질 며느리의 등장(MBC <백년의 유산>의 심이영)을 쌍수를 들어 환영했겠는가. 며느리와 사돈집 싸잡아 무시하기, 돈 자랑, 벼슬 자랑, 학벌 자랑, 동네 자랑, 드라마에 나오는 시어머니들은 왜 죄다 한결 같은지.

한동안 SBS <결혼의 여신>의 시어머니들(윤여정, 성병숙) 때문에 복장이 터졌었는데 이어서 방송되는 <세 번 결혼한 여자>에도 또 다시 상식 밖의 시어머니들이 등장했지 뭔가. 폭언을 퍼붓다 못해 아이 가진 며느리에게 “꼴 뵈기 싫어. 배 디밀어!”라며 이죽거리는 시어머니(김용림)도 끔찍하지만 고상한 어조 아래 가시를 숨긴 또 다른 시어머니(김자옥)도 만만치 않게 무섭다. SBS <인생은 아름다워>, JTBC <무자식 상팔자> 등 김수현 작가의 전작에는 배려를 아는 시어른이 한둘쯤은 있어 고마웠는데 이번에는 어째 기대되는 어르신이 없다. 하기야 김수현 작가의 SBS <겨울새>(1992)의 시어머니(반효정)가 그악스런 시어머니의 원조 격이긴 하다.



이래놓으니 TV 앞의 시어머니들은 ‘나 같은 시어머니가 어디 있냐. 고마운 줄 알라‘ 생색들을 내고 미혼의 처자들은 ’능력 없는 고아와의 결혼‘이라는 가당치 않은 꿈을 갖는 것이리라. 드라마야 지어낸 얘기여서 그렇다 치자. 채널A <웰컴 투 시월드>를 비롯한 몇몇 예능에서 만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은 실제 상황이기에 더 꺼림칙하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도 잘해준 기억보다는 서운한 기억을 두고두고 되새김질하는 법, 그처럼 만인 앞에서 내놓고 서로 할퀴어대고 난 뒤 그 감정이 쉽사리 진정이 될지.

그런 의미에서 연예인들의 가상 결혼 JTBC <대단한 시집>은 시선을 달리한 프로그램이어서 반갑다. 여자가 결혼으로 마주하게 되는 온갖 상황이 전개되지만 흥미 조장을 위한 갈등보다는 잘 풀어갈 방법 찾기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같은 ‘결혼’이라 해도 MBC <우리 결혼했어요>가 달달한 남녀 관계에 집중한다면 <대단한 시집>은 결혼으로 야기되는 불편한 모든 카드를 내보이는 셈인데 저녁상 차릴 때 빈둥빈둥 놀고 있는 시누이, 하도 손이 바빠 시누이에게 뭘 좀 부탁했더니 ‘귀한 내 딸 왜 시키느냐’는 시아버지. 며느리는 새벽부터 일어나 이 일 저 일로 분주하건만 아들은 아깝다며 깨우지 말라는 시어머니. 시도 때도 없이 단체로 밀어닥치는 인척들. 이처럼 현실과 직접 부딪힌다는 점에서 훨씬 실제 상황인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며느리들이 녹록치 않은 연예인들(예지원, 김현숙, 서인영)인지라 엄청난 갈등이 예상됐었다. 그러나 웬걸, 짐작과는 달라 각자의 방식대로 할 말은 하고 수긍할 건 수긍해가며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호감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 예지원, 시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돌아볼 줄 아는 김현숙, 애교와 재치로 시댁 식구들과 주변 이웃들까지 쥐락펴락하는 서인영. 그들을 통해 결혼 30년차인 필자도 많은 걸 깨닫고 배웠다.

이번에 꽃게잡이 댁으로 시집을 갔던 예지원이 아쉽게 하차한 대신 23살의 나이 어린 며느리 씨스타의 소유가 투입됐는데, 시어머니는 대선배인 정훈희 씨다. 같은 가수라는 직업, 그리고 솔직하고 뒤끝 없는 엇비슷한 성품의 이 두 고부간이 과연 어떤 그림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모처럼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어 고마운 가상 결혼 이야기, <대단한 시집>. 부디 제작진들이 초심을 잃지 않기를, 시청률에 쫓겨 갈등을 조장시키는 일만큼은 피해주기를 바란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JT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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