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닥 파닥 건강하게 살아있는 연극이 좋다”
[인터뷰] <웃음의 대학> 검열관 역 배우 서현철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연극은 대개 거칠지만 뭔가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고기가 파닥 파닥 뛰듯 건강한 기분이랄까. 그런 작품을 만나면, (인물들이)거짓말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연극이란 걸 모르고 몰입해서 보게 된다. 웃음을 주든 감동을 주든 거기서 느낀 에너지는 다른 것 같다. 저게 인간의 심리인데, 이래서 ‘연극이 필요한거구나’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제작자가 끼어서 하는 연극이 돼 버리면 세련될 순 있어도 건강함은 떨어지게 된다. 덮여지고 입혀지고 깎아지고 상품화되는 게 있다. 처음 의도했던 창작자들의 의도나 절실함이 손을 타면서 상품이 되는 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고급스럽거나 잘 꾸며지진 않았지만 건강하게 살아있는 연극이 좋다.”

모두가 웃음을 잃어버린 비극의 시대를 배경으로, 냉정한 검열관과 웃음에 모든 것을 건 작가가 벌이는 7일간의 해프닝, 연극 <웃음의 대학>에 출연 중인 배우 서현철을 만났다.

■ ‘우리에게 웃음은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웃음의 대학>

-예전부터 <웃음의 대학>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나?
“2008년 초연을 봤는데 하고 싶었다. 중간에 할 뻔했는데 일정이 안 돼서 못했다. 만약 했다면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했을 것 같다. 차라리 그 때 안하고 지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배우 송영창 서현철 조재윤 이렇게 세 명의 검열관이 다 다른 느낌을 준다. 검열관을 어떤 인물로 그렸나?
“영창 배우밖에 안 봤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 비슷했다. 그대로 따라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대본에 충실하게 따라가다 보면 비슷하게 보일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우직하고 정이 있다는 걸 살짝 들키는 캐릭터로 봤다. 배우마다 버릇, 음색, 말하는 방식, 얼굴이 다르다. 거기에 맞게 나왔을거다. 사람이 말을 안 하고 있어도 얼굴에서 보이는 게 있지 않나. 다만 우습게 비춰지는 건 경계했다.”

-가벼운 웃음으로 흐르지 않도록 신경썼다는 말인가
“작품 자체가 주는 웃음이 있어서 관객들이 많이들 웃는다. 그런데 잘못하다간 더 웃기려고 노력할 우려가 있는 작품이다. 검열관과 작가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살짝 상실하고 뭔가를 더 하려고 하는 경우이다. 그렇게 되면 고급스럽지 못하게 극이 흐르게 된다. 조금은 지루한 감이 있더라고 원래 것을 지켜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묵직하게 가는 게 맞다. 한 두 개 나 만의 것을 보여주긴 하겠지만, 최대한 자제 하면서 검열관을 보여주려 한다.”

-상대 작가 역으론 배우 정태우 류덕환 김승대가 나온다. 각각의 호흡은 어떤가
“누가 더 좋다고 말하기 보단 각자의 장점이 있다. 덕환이는 흠잡을 때 없이 깔끔하다면, 태우는 솔직하게 캐릭터를 그려낸다. 승대는 감성적인 색을 잘 그려낸다. 세 명 모두 번갈아가면서 하고 싶다.”

-배우로 보든, 관객으로 보든 둘 다 재미있는 작품일 것 같다
“관객으로 보면 상황 자체가 재미있다. 억지스럽게 웃음을 통제하는 검열관이나 거기에 맞서는 작가나 둘 다 재미있다. 전체적인 장면이 다 재미있긴 한데, 작가가 고쳐오는 대목이 좀 더 웃기다. 검열관 입장에서 보면, ‘천왕폐왕 만세’란 단어를 작가가 기발하게 집어넣은 장면이 웃기다. 실제로도 검열관은 작가 앞에서는 웃음을 참지만, 몰래 구겨진 대본을 다시 펴보고 웃는다. ‘저 검열관도 사실 웃고 싶었을거야’ 란 느낌이 전해져 관객들도 같이 웃는 것 같다.”



-<웃음의 대학>이 좋은 이유를 말하라면
“글쎄, 왜 웃어야 하는지 확실한 답을 준다기보다, ‘우리에게 웃음은 필요하다’는 걸 말 해주는 작품이다. 검열관 대사 중에 ‘사람을 웃게 만드는 일이 그렇게 중요합니까?’가 있다. 그러다 검열관은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웃음은 단순히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바꿔준다. 즐거우면 인생이 바뀌니까 웃음이 중요한 거다. 집사람이 임신 했을 때 많이 웃었는데 태어난 아이도 많이 웃는다. 그게 건강이지 않나.

다 알고 있지만 웃음은 좋은 거다. 작가 말대로 ‘웃어야겠구나. 살아야겠구나’ 란 생각을 갖게 해서 좋다. 잠깐 나오는 이야기지만 작가는 그렇게 어려움을 겪고 돌아왔는데, 별거 아닌 것에 웃는 자신을 보고 ‘내가 살아있구나’란 걸 느낀다. 웃음이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을 살게 하는 것이다. <웃음의 대학>은 이런 메시지를 재미있게 사건으로 만들어서 연극으로 보여준다.”

-웃기는 것도 어렵지만 웃는 것도 쉽지 않다.
“마지막 장면이 제일 어렵다. 왜냐하면 신체적 물리적으로 배에 힘을 안 주고 연기로 웃으려고 하면, 그 웃음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집사람 좌약인데’ 하면서 호탕하게 웃어야 하는 장면인데, 진짜로 웃어야 한다.

이건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사람이 괴로우면 머리를 싸매고, 즐거우면 손바닥을 친다.흔히 너무 웃으면 박장대소 하지 않나. 그러다 손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뒤로 넘어가니까. 많이 웃고 나면 진이 빠진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웃으면 운동이 된다.”



■ 웃음이 울음으로 바뀌는 절묘한 순간을 캐치해 내는 작가

-2003년 극단 작은신화에서 연극 <지팡이를 잃어버린 채플린>을 직접 쓰고 연출하기도 했다. 지금도 글을 쓰고 있나?
“<지팡이를 잃어버린 채플린> 이후로 작가로 불러주기도 하는데 부끄럽다. 작가들은 평상시에 틈틈이 일상적인 이야기를 쓴다고 하는 데 거짓말 같다. 틈 날 땐 메모를 하기도 하는데, 고민의 시간이 있어야 글이 나올 것 같다. 또 나는 컴퓨터로 글을 쓰지 않고 직접 손으로 글을 써서 더 시간이 필요한 것도 있다. 스마트 폰으로 바꾼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바꾼 이유도 다른 이유가 아닌 딸 사진을 찍고 싶어서다.

오래 전에 극단에서 그 작품을 올린 뒤론 요새는 대학생들이 많이 올리고 있다. 그 대사들이 연기 연습하기가 좋은가보다. 어색하게 작가님이란 칭호를 부르면서 연락을 해 오는데 젊은 이들이 올린다고 할 때 어떻게 그림을 그려낼지 궁금해진다. 방송대 극회에서도 올렸는데 당시 <급매 행복아파트> 공연 중이라 보러 가지 못했다. 다른 장면보다 막간극이 제일 궁금하다. 다른 장면들은 대본에 설명이 돼 있는데 막간극은 ‘계란을 까먹으려고 한다’는 대사 말고는 없다.”

-당시 <채플린> 연극을 보면서 서현철 배우의 관찰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게 말하면 관찰력이고 쓸데없이 주변을 둘러볼 때도 많다. 정재은 배우가 관찰력보다는 집중력이 강하다면 나는 반대다. 그래서 부부로서 서로를 보완해 줄 때도 있다. (‘정재은 배우도 인터뷰 했지만 아직도 연애 하듯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란 질문을 던지자)늦게 결혼한 부부의 장점이다. 하하. 20대 때 만났다면 티격대격하고 싸웠겠지만 곧 환갑인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

<채플린> 이야기는 지하철에서 메모 했던 걸 다 모아서 만들었다.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들이 담겨 있다. 막간극은 영등포 역에서 홍시를 먹던 할아버지 에피소드를 보고 만든거다. 연극 안에선 홍시 대신 계란으로 바꿨다. 지하철에서 물렁물렁한 홍시를 까먹는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실수로 껍데기만 남기고 알맹이만 쏙 쓰레기통으로 빠져버린거다. 주워 먹을 수도 없게 된거다. 처음엔 웃을 수 있는데 두고두고 슬펐다.

지하철 행상 에피소드엔 찰나 접착제, 엽기 자명종 처럼 말도 안 되는 걸 파는 남자가 나온다. 그 중에 장갑형 이태리 타월은 실제로 경험 했던 에피소드이다. 10년도 전에 지하철에서 그 물건을 보고 나름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이태리 타월은 때를 밀다보면 벗겨지기 쉬운데 이건 벗겨지지도 않을 것 같아 좋아 보였다. 그래서 지하철 안에 앉아 있던 나 뿐 아니라 몇몇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며 지갑을 꺼내서 살 채비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세계에 발을 들였는지 물건만 꺼내놓고 말을 못하는 거다. ‘당신 마음 다 알았으니 빨리 와서 말 걸고 지나가라!’는 마음이 컸는데, 네 정거장을 그대로 있더니 그냥 내려버리더라. 속이 탔다. 이렇게 잠깐 봤을 땐 웃었지만 지나고 나서 울음이 나는 에피소드들을 <채플린>에 담아냈다”

-<채플린>2탄이 나와도 좋을 것 같다. 지하철 이용하며 메모한 다른 에피소드들도 있을 것 같다
“요새도 지하철을 타다보면 메모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최근에 제일 기억나는 건 회색 양복 입은 교인과 노숙자 일화이다. ‘우리 예수를 믿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지옥 갑니다’라고 말하는 교인이 지하철에서 막 크게 말을 하고 있는데, 문 옆에 이빨 빠진 노숙자가 있었다. 웃긴 게 교인이 한 마디 할 때마다 (한 마디)욕을 하며 해맑게 웃는거다. 다른 사람들도 웃었는데 교인 그 사람도 약간 웃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노숙자 옆으로 와서 손을 잡고 찬송가를 부르는거다. 이빨 빠진 노숙자는 웃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며 ‘헤벌쭉’ 웃고 있는 이 상황이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묘한 느낌을 줬다. ‘주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는 그 사람도 안쓰럽고 욕을 하는 그 사람도 안쓰럽고.

이걸 어떻게 연극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걸 연극으로 한다고... 또 영화로 만든다고 해도 안 될 것 같았다. 현실에서 직접 보지 않는 한 이 느낌이 그대로 전해질 수 있을까. 인생이란 이런 거구나. ‘나는 치열하게 먹고 살아야지’ 생각한다고 하지만 딴 사람이 보면 그냥 배경일 뿐이다. 진짜 현실이 아닌 한 그걸 어떻게 보여주겠어?”



■ “마음 챙김이 없으면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차분하게 웃기는 스타일이다
“평상시엔 차분한데, 차분하게 웃긴다는 말도 듣는다. 웃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억 했다가 갑자기 꺼내놓은 경우가 있는데, 난 바로 일어난 상황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편이다.

방방 떠 있는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내성적이긴 한데 어색한 걸 싫어한다. 외적인 사람과 내적인 사람이 무대에 오른다고 했을 때, 외적인 사람이 무대 위에서 불안한 경우가 많다. 너무 능숙하게 표출 하는 게 많다 보니까 진실성이 떨어져 보이는거다. 반면에 내적인 사람은 안에서 끄집어내는 게 있어서 더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조금은 어설퍼도 진실성이 묻어나는 게 더 좋다고 본다. 배우가 평상시에 잘 까분다고 해서 연기를 잘 하는 건 아니다. 분위기도 잘 띄우고 사회를 잘 보는 친구가 있어서 연기를 시켜보면 원하는 만큼 보여주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안 그래도 뭘 하고 있는데 거기다 뭘 더 하려고 하니까 불안해 보이는 게 있었다.”

-서현철 배우는 무대 위에서 편안해 보인다. 진짜 속마음도 그런가
“사실 무대 위에선 편하지 않다. 불편하다. 배우로서 릴랙스 된 상태에서 편안하게 보여 줄려고 하는거다. 그래서 약간 오해 받는 것도 있다. 열심히 안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난 그게 과한 것 보다 더 낫다고 본다. 의욕이나 어떤 표현이 들어가면 어딘가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연극 뿐 아니라 스포츠 혹은 사람관계도 그렇지 않나. 릴랙스가 안 돼 있으면 자기 걸 표현하기 힘들어진다. 몸은 덜덜 떨고 있는데 태연한 척 하는 게 힘들 듯, 긴장된 기분은 연기로 보여 줄 수 있지만 릴랙스 된 느낌은 연기로 보여 줄 수 없다. 사람이 긴장하면 호흡이 떠서 대사나 이야기의 호흡이 뜨게 된다. 그렇지 않기 위해 편한 마음을 먹으려고 신경 쓰는거다”

-나이들수록 어떤 생각이 많이 드나
“마음 공부를 해야 한다. ‘마음먹기에 달렸어’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자신을 좀 더 낫게 하려면 마음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 나이들수록 그게 더 맞는 것 같다. 물질적인 것에 휩쓸려 돈만 있으면 해결 될 텐데. 얼마 만 있으면 이 고민이 사라질텐데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다. 마음 챙김이 없으면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후배들한테도 간혹 이야기를 해주는데, 난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설명해준다.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는 건 왜 일까. 마음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좋은 생각을 안 잊어버리기 위해 매일 친다. 다 된 분이라면 안 칠 것이다. 벽만 보고 있거나. 매번 고민 상담을 요하는 친구에게 요즘 무슨 일 있냐? 지난 주에 이야기했던 거 있지? 그거 생각해 봐라고 다시 말하기도 한다. (웃음)”



-책 읽는 것도 좋아할 것 같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엔 <책은 도끼다>(작가 박웅현)와 <여덟 단어>가 가장 좋았던 책이다. 아는 척 하려고 쓴 게 아니라 인문학 적이고 솔직하게 잘 썼다. 특히 <여덟 단어>에 나오는 ‘개처럼 살자’ 표현이 인상 깊게 남았다. 내 생각과 살짝 비슷했던 것도 있었다. 개는 밥을 먹으면서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자면서 (주인에게 보여 줄)내일의 꼬리치기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밥을 먹어도 처음 먹는 밥처럼 먹고, 자다 일어나면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처럼 즐거워한다는 말이다. 매 순간 순간 그렇게 살고 싶다. 살아있다는 게 행복하다. 그런데 이런 사고 방식이 이렇게 생각만 한다고 해서 바로 되지 않는다. 훈련이 필요하다. 운동 근육을 키우듯이 좋은 생각도 반복해야 한다. ‘아싸 알았어’ 하는 것으론 안 된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자, ‘인터뷰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게 맞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배우관 및 인생관을 다 듣는 인터뷰이다
“인생관은 ‘재미있게 살자’이다. 군대 갔다가서 바뀐 게 있다. 시체 닦는 일도 했었고, 군대에서 같이 지냈던 동기들이 갑자기 죽어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사람 목숨 역시 하늘의 뜻이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 앞에서 좀 더 재미있게 살자’라고 마음 먹었다. 그랬더니 유머스러워지고 큰 일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됐다. 뭘 포기했다는 뜻이 아니라 좀 더 넓고 크게 바라보게 된 거다.”

■ “파닥 파닥 건강하게 살아있는 연극이 좋다”

-코미디 극을 많이 했는데 정극을 더 하고 싶진 않았나
“정극과 코미디극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연기적으론 크게 다를 건 없다. 작품 자체가 코미디니까 웃긴거지, 정극이라고 해서 안 웃기고 코미디극이라고 해서 웃긴 건 아니다. 정극은 인물들이 아파하고 감동 받는 게 있다면 코미디는 주변사항의 진실성이 웃긴거다. 물론 코미디극에선 꺽는 호흡이나 타이밍이 따로 있긴하다. 하지만 연기 방법은 비슷하다. 상황이 하나는 코미디로 다른 하나는 정극으로 만들어준다. 정극과 코미디의 차이를 웃기지 않는 극과 웃기는 극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코미디도 진지해야 웃는다. 진실성이 떨어지게 웃으면, 괜히 웃자고 하는 게 돼 버린다.”

-KBS드라마 <신데렐라 언니>, MBC드라마 <해를 품은 달>, <황금 무지개>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텔레비전에 출연한 연극 배우로서 후광도 있을 것 같다
“TV 출연의 후광? 그런 건 모르겠다. 그런데 아파트 주민들이 알아보는 것은 있다. 한 할머니가 ‘딸한테 그렇게 나쁘게 하면 안 돼’ 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재미는 연극이 더 크다. 그런 게 있다. 결혼 전엔 굶더라도 내가 굶는거니 서두르고 조급할 게 없는데, 이젠 그렇게 할 수 없다.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생긴거다. 이젠 아이도 생겼다. 내가 고생하는 건 괜찮은데,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니 같이 고생하자’ 고 할 순 없지 않나. 드라마 출연 후광이라면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는거다.”



-연극에서는 재미있는 캐릭터를 많이 맡았는데, 텔레비전에선 ‘깡패 아니면 깡패 같은 형사’를 많이 맡았다.
“첫 출발이 그런 것 같다. KBS드라마 < 신데렐라 언니> 때 문근영을 때리는 술 주정뱅이로 나왔다. 그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연극에선 한번 도 안 해본 나쁜 놈을 TV에서 하고 있다. 드라마 연출과 작가가 내 연극을 봐서 재미있는 코드를 넣으려고 <신데렐라 언니>에 캐스팅을 한 거다. 그런데 방송국에 가서 캐스팅이 바뀌었다. 그 쪽 관계자들은 내 공연을 보지 않았다. 이미지랑 음색을 보고 바꿨을 확률이 크다. 지금 하고 있는 MBC드라마 <황금 무지개>에서도 딸을 때리고 지금은 교도소에 가 있는 상황이다. TV 쪽은 잠깐 잠깐 출연 하는 작은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

-많은 배우들이 연극이 더 좋다고 하는데, 드라마 연기는 많이 다른가
“TV 드라마 연기, 연극 연기 구분한 필요는 없겠지만, 드라마보단 연극이 당연히 재미있다. 연극은 한 달 혹은 두 달 넘게 같은 대사를 연습한다. 그 뒤에 관객을 직접 만난다. 그런데 드라마 대본은 엊그제 받아서 짧은 시간 안에 이해한 뒤 바로 촬영이 들어간다. 또 드라마는 찍는 방식이, 여기 찍었다 저기 찍었다 해서 하나로 흐르는 게 없다. 먼저 찍고 나중에 찍는 장면들을 모아 그걸 연결하니 배우로선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생기게 된다. 역할이 커서 그 역할 자체가 흐름이 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또 내가 나오는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 못한다. 어느 날은 술 먹고 있는데 나오는 걸 보고는 ‘에이구’ 하다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웃음)

드라마를 하며 만난 친구들은 다들 '연극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한다. 연극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을 소개해서 출연하기도 했다. 진짜 긴장하긴 했지만 그 순간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더라. 그걸 보면서 ‘나도 그런 식으로 해야 하는데’란 생각도 들었다. 연극도 너무 익숙해지다 보면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 자체의 고마움을 잠시 잊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복 한편이다. 가끔 TV도 하고 연극 무대에서 서고 있으니 말이다.”

서현철 배우는 ‘파닥 파닥 건강하게 살아있는 연극이 좋다’고 말했다. “좋았던 연극의 기억을 떠 올리면, 오래 전 봤던 <춘천 거기>,<임대아파트>와 <거울공주 평강이야기>가 생각난다. 젊은 배우가 내가 있던 술자리까지 와서 ‘<춘천거기>란 작품을 공연하니 꼭 보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그렇게 예의상 인사를 하고 잠깐 잊고 있었는데, 지나가다 포스터가 보이니 다시 생각나서 극장을 찾아갔다. 그 때 느낌이 대개 거칠지만 뭔가 살아있었다. 생동감 있는 그 작품을 보며 내가 하고 있는 ‘연극’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연극을 하고 있는 나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관객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그 극단(청국장)의 <임대아파트>도 봤는데 정말 에너지가 남달랐다.

극단 간다의 <거울공주평강이야기>도 건강한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대학로에서 공연화 되기 전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이 인큐베이팅 워크샵 한다고 해서 학교까지 가서 봤던 작품이다. 살아있는 고기가 파닥 파닥 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래서 날 것의 살아있는 연극이 재미있고 즐겁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연극열전, 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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