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맨 오브 라만차> 까라스코 역 배우 배준성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뮤지컬로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이야기 하는 작품이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품 아닌가. 가장 심오하고, 궁극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생의 방향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잃어버렸던 꿈을 찾게 만들어 준다. <맨 오브 라만차>는 배우는 물론 관객들 모두에게 삶의 이정표를 줄 수 있는 작품이다.”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가 돌아왔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로 시작하는 넘버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은 누군가의 인생을 뒤바꿔 놓기도 한다.

20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배우 배준성을 충무아트홀 대극장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 “배우로 산다는 게 돈키호테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두 도시 이야기>의 에버몽드 후작에 이어 카라스코가 됐다. 강한 이미지 역할을 연달아 맡았다.
“나쁜 놈 역할을 많이 맡았더니 원래 성격도 강할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아예 배역과 저란 인간을 똑같은 사람으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날은 <두 도시 이야기> 재봉사 역 배우의 할머니가 보러 왔는데, “원래 나쁜 놈이니 저 놈 옆에 가지도 말라”라고 말한 경우도 있었다. <두 도시 이야기> 초연 땐 커튼콜 때 다른 배우들이 나오면 열심히 박수치다가 내가 나오면 가만히 있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다. 에버몽드란 인물이 무서워 보이는 게 있나보다. 그런데 분장을 지우고 오면 전혀 몰라본다. (코믹한 역할도 했었나)예전엔 <한 여름 밤의 꿈> 요정 퍼크도 했었는데 요즘엔 강한 역 위주로 들어온다. 아들도 ‘아빠는 매일 나쁜 역할만 하느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착한 역할도 해보고 싶다. 한 쪽 이미지로 굳어지지 않도록 다양한 역할을 맡고 싶다.”

-<맨 오브 라만차>와 인연이 깊다. <돈키호테>에서 <맨 오브 라만차>로 제목을 바꾼 2007년부터 출연했고, 당시는 페드로였다. 역할이 달라진 것도 있지만 매번 할 때마다 느낌이 다를 것 같다.
“매년 달라진다. 돈키호테 정성화 조승우, 산초 이훈진 정성화, 알돈자 김선영 이영미 등 이 중엔 새로이 합류한 배우도 있지만 처음 공연 할 때부터 알았던 친구들이 많다. 다들 호흡이 너무 좋아서 편하고, 분장실에서도 친형제들처럼 지낼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 구성원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맨 오브 라만차>를 위한 가장 환상의 조합이다. 도지사 역 서영주 선배 다음으로 내가 나이도 많아졌다.”

-까라스코란 인물은 우선 딱딱한 인상을 풍긴다. '거울의 기사' 장면에서 느껴지듯 차가운 현실을 일깨워 주는 역할도 맡고 있다. 그런데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자료상으로 나와 있지 않다. 이 인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드러나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대 놓고 드러나진 않는 인물이다. 꿈과 이상을 이야기하는 돈키호테의 한 면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돈키호테가 현재 처해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면을 이야기 해 대립각도 세우지만 극 안에서 튀어보이진 않는다. 강한 이미지를 느낄 수도 있는데 나쁜 사람은 아니다. 공부를 많이 한 지적인 인물로 감성적일 걸 배척하는 성향이 있다. 이상을 좇는 노인 돈키호테를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는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을 크게 꿈을 좇는 돈키호테와 현실적인 까라스코로 나눈다면 어디에 가깝나
“원리 원칙을 따르려고 하는 걸 보면 까라스코랑 닮은 면이 있긴 하지만, 반반씩 섞여있다고 보는 게 더 맞다. 배우로 산다는 게 돈키호테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꿈을 좇는 배우들이 대개 세상 돌아가는 현실적인 걸 잘 모른다. “

-20년 가까이 묵묵히 배우 길을 걸어 왔다. 소수의 유명 배우만 기억하는 현실에서 ‘외도’를 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 것 같다.
“95년도에 서울시 뮤지컬단 배우로 처음 이 길에 들어섰다. 그렇게 2년간 세종문화회관 소속으로 활동하다 97년도에 프리 선언을 하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그런 ‘외도’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긴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수록 (배우가)더 하고 싶었다. 내 스스로 다 잡아가려고 노력했으니까. 이것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았다. 이 일을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



■ 모두에게 삶의 이정표를 줄 수 있는 <맨 오브 라만차>

-체스 신에서 나이트 역을 배정받은 까라스코는 직각으로 움직인다. ‘까라스코’ 하면 이 장면을 관객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고 웃는다. 이번 시즌 관객 반응은 어떤 것 같나
“현장에서 느끼는 건 있지만, 관객 평은 일부러 안 찾아본다. 간혹 가다 그런 배우들이 있다. 연출가와 스태프 및 동료들과 함께 두 달 넘게 연습했는데, 관객 평이 아닌 것 같다는 평을 보고는 거기에 따라가려는 경우 말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연습과 약속은 어떻게 되는건가? 관객들을 따라갈게 아니라 공연에 관객들이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잘 하는 게 먼저이다.”

-넘버 ‘그분 생각 뿐’에 임하는 자세를 말한다면
“까라스코의 유일한 넘버로 잘 불러야 한다. 지금까지 까라스코랑 차별성이 있나?란 질문이라면 까라스코로 부를 수 있는 배우의 감성은 다 같다고 본다. 다른 카라스코 이계창 민경언 배우가 하는 걸 보긴 했지만, 성대와 표현 방식만 다를 뿐 거기서 느끼는 감성은 같을 것이다.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부르는 부분이다.”

-두 명의 돈키호테와 두 명의 산초가 다 다르다.
“정성화 조승우 돈키호테 느낌이 완전 다르다. 승우는 2007년도 처음 이 작품을 같이 했을 때보다 더 원숙하고 무르익은 느낌이다. 승우는 유연함을 가지고 그때그때 좌중을 흔들 수 있는 배우다. 반면 성화는 우직한 돌직구 매력이 있다. 원리 원칙을 고수하는 건 성화에게서 잘 느껴진다면, 괴팍함은 승우가 더 부각 되는 느낌도 준다. 연기가 정답이 없다. 이 사람은 이것 저 사람은 저것의 매력이 있다. 그걸 관객들이 믿게 하면 된다. 매력은 다르지만 매력의 크기는 같다고 본다.

정상훈 이훈진 산초도 다른 매력을 지녔지만 매력의 크기는 같다. 훈진이는 완벽한 산초 이미지를 갖고 태어난 배우이다. 정말 어지간한 배우는 겨루기 힘들다. 이번엔 또 다른 산초가 나왔다. 정상훈이니 할 수 있는 산초라고 본다. 상훈이도 대단하고 정말 좋은 배우이다. 이들 말고도 앙상블까지 이 만한 구성원을 갖춘다는 게 대한민국에서 힘들다. 그 일원이 됐다는 게 자랑스럽다.”

-그렇다면 배준성 배우의 매력의 크기는 뭔가. 후배들은 어떤 선배로 생각할까
“후배들이 보기에 다정 다감한 선배는 아닐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요즘시대엔 선배로 살아가는 데 힘들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예전엔 자극적이지만 잘못을 바로 바로 지적해주는 선배들이 많았다. 요즘엔 그런 선배들보단 후배들 잘못을 일부러 모른 체 하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바로 말하는 편이다. 그래서 후배 입장에선 어려운 선배로 보일 수 있다.

(젊은 유명 배우들의 인기에 묻어가려는 선배 배우들도 눈에 띄기도 하더라) 묻어가기 위해 유명 배우와 친분을 과시하기도 하는데 그게 과연 좋은 걸까. 무대에 서면 배우는 다 똑같다. 무대에선 선배도 스타도 없다. 자신을 낮추고 (스타 배우)그 사람을 높이는 건 배우로서 가져야 할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배우 스스로에게도 <맨 오브 라만차>가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일 것 같다.
“뮤지컬로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이야기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했던 작품들 중 퀄리티가 가장 상위에 있는 작품이다. 50편 이상 작품을 했지만 여타의 작품보다 상위 단계에 있다.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품 아닌가. 가장 심오하고, 궁극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히 말씀 드리자면, 배우들은 물론 관객들 모두에게 삶의 이정표를 줄 수 있는 작품이다.”

■ “첫 공연 날 감동 이상으로 행복한 시간은 연습 시간”

-무대 위에서 여러 번 배준성 배우를 보며 ‘굳은 심지’ 같은 게 느껴졌다. 스스로 배우로서 강점은 뭔가
“우직함, 한 가지 일 밖에 모르는 성실함이 지금까지 버티고 온 힘이다. 그 생각으로 매번 무대에 선다.”

-배우의 실력보다는 성실이 먼저라는 말인가?
“타고 난 배우들이 있다고 하지만 대다수는 아니기 때문에 노력을 하다보면서 실력은 갖춰진다고 본다. 성실함을 갖추고, 경험과 시간과 자신의 노력이 함께 가야 실력이 얻어지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본인의 연기에 만족하나
“배우는 만족할 수 없다. 만약 만족한다면 자만심에 사로잡힌 배우 일 것이다. 내 자신에 만족하는 건 상상할 수 없다. 매번 ‘오늘 잘했다’, 보단 ‘왜 이렇게 못했지?’란 생각이 많이 든다. ‘잘 한다’는 평은 본인보다 다른 사람이 판단하는 거다”

-서울 예술대학교 연극 전공이다. 그런데 뮤지컬 작품에 주로 출연했다.
“어렸을 때 연극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과 같이 작업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또 배우로서 표현의 도구가 많다는 게 좋다. 표현하는 방식이 발달되고 있는 요즘엔 연극도 뮤지컬의 형식을 가져와서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뮤지컬은 매력적인 장르다.”

-20년 전과 달리 요즘은 티켓파워가 없으면 뮤지컬 배우도 살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뮤지컬 제작 현실이 그 때랑 확실히 다르다. 그땐 극단 체제였고 설 수 있는 무대도 많지 않았다. 그 때는 노래보다 춤이 먼저일 정도로 ‘춤을 못 추면 뮤지컬 배우가 아니다’는 인식이 있었다. 음악 전공자들이 많아져 솔로 주연을 따내는 경우도 많아졌다. 어린 친구들이 빨리 클 수 있는 계기가 된 감도 없지 않다. 기회는 넓어지고 많아졌으니까. 그렇게 산업이 커지면서 소위 뜨는 배우들을 섭외하는 게 전쟁이 되 버렸다. ‘티켓 파워’란 말 이면의 씁쓸한 감이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긴 하지만 배우를 쫓아다니기 보단 좋은 크리에이티브, 좋은 배우들이 참여해 최고의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를 봐 주면 좋을 듯 하다.”



-성악가 출신 배우가 활동하기 시작한 게 그 즈음이었나
“그 때 무용과 출신 배우는 있었는데 성악가 출신으론 류정한 배우가 처음인 걸로 알고 있다. 정한이도 그 때 선생님들이나 주변에서 ‘미친 것 아니냐’며 반응들이 곱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 땐 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다.”

-요새는 어떤 배우가 출연하느냐만 따지지 않고 작품 자체를 너무도 좋아하는 팬들도 많다.
“마니아 관객이 다양하다. 한 배우만을 쫓아다니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작품을 너무도 좋아하는 작품 마니아가 있더라. 작품 마니아 중엔 <닥터지바고>, <두 도시 이야기>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있다. <두 도시 이야기>를 40회 본 관객이 있다고 들었다. 너무 감사하고 놀라웠다. 내가 더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분이다. 어쩔 때 보면, ‘배우인 나보다 더 좋아하는 거 아니야’란 생각이 들 정도다. 그 마니아 관객들은 전 배역의 대사와 동선을 다 알고 있으니 ‘제 3의 스윙’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어지간한 열정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다. 어떤 것 하나에 열정을 바칠 수 있다는 게 존경스럽다.”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다음 주에 <두 도시 이야기> 작품을 사랑하는 관객들과 함께 <두 도시민의 밤>을 올린다고 하던데 최용석(BOM코리아 대표), 최인숙(안무가), 배우 서범석, 최현주, 정상훈, 임현수, 김호섭과 함께 뭘 보여주나?
“극 형식이 아니라 ‘이석준 이야기쇼’ 같은 이야기 쇼이다. 진솔한 이야기와 노래로 꾸며진 무대라 거의 처음 보는 인간 배준성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래도 에드몽드 후작 노래가 아닌 다른 노래를 할 예정이다. (이석준 이야기 쇼는 나간 적 없나?)이야기 쇼에 섭외 됐는데 시간이 안 돼 나가지 못했었다. 배우로서 무대에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드라큘라>,<조로> 등에서 보면 몸을 잘 쓰는 배우이다.
“무용을 워낙 좋아해 레슨도 많이 받았다. 무용 비중이 큰 작품도 많이 했다. 그런데 최근에 <두 도시 이야기>에서 무대도 걸어다니지도 않고 마차를 타고 등장하고, 죽은 후엔 끌려나갔다. 거의 몸을 쓸 일이 없었다. 숨만 쉬는 정도였다고 할까. 하하”

-체코 뮤지컬 <드라큘라>에 이어 오디뮤지컬컴퍼니가 선보이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드라큘라>, 내년 <두 도시 이야기>에서도 얼굴을 봤으면 좋겠다
“<드라큘라>에도 함께하고 싶고 <두 도시 이야기>도 꼭 다시 하고 싶다. 그런데 배우란 선택 받아야 하는 거고, 그 쪽에서 써주셔야 하는 거다. 아직은 마음 뿐이다.”

배우 배준성은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을 때도 좋지만 그걸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더 좋다’고 말 했다. “배우로서 무대 위에 있을 때도 좋지만 연습할 때가 정말 좋다. 선택을 받아야 하는 배우들은 작품을 못하고 쉬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인데, 그런 기간을 거친 다음에 첫 연습을 들어갈 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동료들하고 연습할 때도 좋고, 소주 한잔 하며 동료들과 알아가고 친해지는 과정들이 좋다. 결과물도 좋지만 그걸 만들기 위한 과정이 행복하다. 정말 그 사람을 동료로 믿고 하느나 그렇지 않느냐가 무대에서 호흡과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시간이다. 연습시간은 첫 공연 때 무사히 결과물을 만들어냈을 때 느끼는 감동 이상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오디뮤지컬컴퍼니, BOM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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