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2012년 국립오페라단 창단 50주년을 기념하며 올려졌던 오페라 <라보엠>은 여백미와 수직과 수평의 대비가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현실과 비현실, 사실과 상징의 아이러니한 조화 또한 찬사를 받았던 오페라다. <라보엠>이 마르코 간디니와 정선영 재연출의 손을 거쳐 지난 5∼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다시 한 번 공연됐다.

프랑스의 로익 티에노(무대 디자인)는 어두운 다락방(1막)과 화려한 까페 모뮈스(2막)의 거리가 명확히 대비되게 디자인 했으며 자연스럽게 열리고 닫히는 영민한 무대 전환 시간에는 여지없이 객석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다소 어둡게 무대를 비춘 니콜라 마리의 조명디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뉠 수 있지만 가난한 다락방의 운치를 충분히 살려냈다. 캄캄한 방에서 울려 퍼진 ‘그대의 찬 손’ 아리아 또한 조명이 합세해 작품 흐름을 집중도 있게 이끌고 갔다.

성기선 지휘자는 결정적인 레가토 부분에서 템포 미스를 보여 가수와의 호흡이 완전 일치하진 않았지만,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절제된 볼륨과 상대적으로 깔끔한 소리로 조율해 서정적인 푸치니 선율을 효과적으로 끌어냈다. 국립합창단, PBC소년소녀합창단의 안정감 있는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지난 해에 이어 다시 한 번 국립 무대에 오른 소프라노 홍주영 미미는 훨씬 더 노련해진 감성과 서정적이고 진한 음색으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테너 정호윤 로돌포는 선명한 소리로 로돌포의 내면을 하나하나 꺼내놓은 점은 좋았으나, 소리의 공명감이 고루 퍼지지 않아 집중력을 온전히 이끌어내진 못했다. ‘마지막 미미가 숨을 거두고, 연주자들과 관객 모두 극에 대한 몰입이 최고조에 이르렀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그렇다’고는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소프라노 조선형 미미는 듣는 이를 기분 좋게 하는 좋은 음색을 가지고 있으나, 극적 표현력이 부족하여 동작에 있어서 무대적인 긴장감이 없었다. 특히 아픈 장면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심리 상태가 눈에 그대로 드러난 점이 아쉬웠다. 테너 양인준 로돌포는 애조 띤 음색으로 작품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준 점은 좋았다. 다만 로돌포가 이탈리안적인 테너의 전형적인 역할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동안 봤던 로돌포의 발성과 출동하는 지점이 있었다.

소프라노 김성혜 무제타와 바리톤 오승용 마르첼로는 활기차고 여유 있는 액팅, 명쾌한 소리로 관객을 집중시켰다. 바리톤 김진추 쇼나르, 베이스 임철민 콜리네는 1막과 4막에 보여준 앙상블에 힘을 실으며 가난한 파리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정서를 매력적으로 터치했다. 두 가수 모두 유연한 캐릭터 해석은 물론 힘 있는 성량과 선명한 소리 전달력으로 좋은 오페라 공연을 이끌어냈다.



소프라노 양제경 무제타는 잘 들리지 않는 중저음이 아쉬웠으며, 바리톤 김주택 마르첼로는 좋은 발성을 가지고 있지만 좀 더 유연하고 여유 있는 무대 매너가 동반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했다. 베이스 김철준 꼴리네는 고급스런 질감이 느껴지는 소리로 귀를 사로잡았으나 성대울림이 다소 과하게 나오는 경우가 몇몇 눈에 띄었다. 바리톤 안희도 쇼나르는 안정적인 보이스 컬러는 좋았으나 더 이상의 색채가 없는 점은 아쉬웠다. 알친도르/베누아 전문 베이스 임승종은 크지 않은 역할이지만 상당히 연륜이 느껴졌고, 극장에서의 울림도 가장 탁월했다.

크리에이티브 팀은 그대로지만 몇몇의 가수들을 빼곤 출연진이 전면 교체 되자, 전반적으로 지난 해 <라보엠>보다 몰입도가 떨어진 무대였다. <라보엠>은 세밀하고 설득력 있는 희곡의 에피소드와 잘 맞물리는 음악, 서정적이고 코믹한 디테일의 다양함이 제대로 드러내야 생명을 얻는 오페라다. 하지만 이번 무대는 푸치니의 생명력을 100% 온전히 살려내지 못했다. 연기와 가창이 혼연일체가 된 파리 보헤미안 예술가들이 그리워진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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