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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원 “‘필로우맨’ 작가와 용의자 사이 줄타기”
기사입력 :[ 2013-12-13 11:04 ]


[인터뷰] <필로우 맨> 카투리안 배우 김준원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필로우 맨>은 쇼잉(showing)보다 텔링(telling)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다. 연극 속에선 작가 카투리안이 쓴 7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작은 사과맨(‘예상 가능한’ 스토리는 없다)▲ 사거리의 세 사형대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강 위의 한 마을 (모든 스토리는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작가와 작가의 형제(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삶을 위로한다)▲ 필로우맨 (작가의 사고관이 작품을 통해 발가벗겨진다)▲ 작은 초록돼지(작가는 순수함을 욕망한다)▲ 작은 예수(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세계의 거대한 모순을 그린다). 이 이야기들은 작품의 방향성을 대변하는 교집합으로 존재했지만 또 각각의 생명력을 가진 이야기로 기능한다. 이렇듯 작품 자체가 지닌 스토리텔링의 힘이 많은 관객의 공감대를 높였다.

노네임씨어터컴퍼니가 2012년 첫 선을 보인 <필로우맨>에서 두 시즌 연속으로 주인공 카투리안을 맡은 배우 김준원을 만났다. 이번 인터뷰가 흥미로웠던 점은 <필로우맨>과 마찬가지로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가 끝없이 계속 됐다는 점. 그의 모든 스토리는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과연 이 이야기는 작가 카투리안의 이야기인가. 스토리텔러 카투리안의 이야기인가. 작가 마틴 맥도너의 세계관인가. 변정주 연출의 영혼이 김준원 배우의 몸을 빌려 해주는 이야기인가. 순수한 인간 김준원과 배우 김준원 모두의 이야기인가.

■ “이야기를 사랑하는 괴물 카투리안”

-변정주 연출이 <필로우 맨>에 대해 말을 꺼내기 전부터 하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들었다. 어떤 점이 그렇게 끌렸나
“고등학교 때 연극반을 했는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놓치지 않고 있는 모든 연기관과 배우로서 제 모든 걸 다 응집시켜서 보여줄 작품이라 생각했어요. 희랍극 정도의 세기 혹은 강도가 있으면서도 모던한 <필로우 맨> 같은 희곡을 못 봤어요. ‘현재 나오는 희곡 중에서 배우들이 연기로 포식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줄 수 있는 작품이 또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또 있었으면 좋겠고 도전해보고 싶어요.

모든 배우라면, 또 남자배우라면 자신을 다 녹여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이 작품에 끌렸을 겁니다. 엄청 힘들 거라는 것도 예상했고요. ‘카투리안’은 분명 유명한 배우가 할 거란 생각이 들어... ‘마이클’ 역이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카투리안‘을 하게 돼서 행복합니다.”

-작년에도 한 차례 <필로우 맨> 작업을 했지만 다시 한 번 ‘카투리안’이 돼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졌을 것 같다
“작년에도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는데, 작가로서 역할 외에도 ‘스토리 텔러’로서 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형 ‘마이클’을 진짜 사랑하려고 노력했어요. 더 깊이 사랑하려고. (그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는 건 인터뷰가 끝나고 마지막 사진 컷을 찍을 때 였다. 충무아트홀 극장 로비에 펼쳐진 커다란 포스터 앞에 선 김준원은 카투리안(사진)에게 ‘오늘 하루도 힘 내’라는 의미로 커피를 권하는 장난스런 포즈를 취하더니, 바로 옆으로 움직였다. 그리고선 배우 홍우진 마이클(사진)앞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우진이가 아니 마이클이 더 절 좋아할 것 같아서’란 한 마디도 남겼다. 인터뷰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이야기는 계속 되고 있음을 캐치한 순간이다)

크게 카투리안이란 캐릭터를 바꾸려고 한 건 아니고 섬세한 거에 더 신경을 썼어요. 작년엔 요만큼 팠다면 이번엔 더 깊이 파려고 노력했다고 할까요. 힘든 점은 대사가 조금씩 바뀌었다는 거요. 작년 버전과 지금 버전의 미세하게 달라진 대사들, 상대방 호흡 등이 제 안에서 계속 부딪치는 게 있어요. 치열하게 하고 있죠. 그래도 더 어렵게 바뀌지 않고 쉽고 친절하게 바뀌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두산아트센터에서 충무아트홀로 옮겨와 무대가 커져 힘든 점도 있겠다.
“무대가 커지니 배우로서 느낌도 달라지는 게 있어요. 두산에선 배우 에너지가 구석구석 간 느낌이었다면, 이번 공연 초반엔 훨씬 무대가 커지니 구석까지 가지 못하고 흩어지는 느낌이 있었어요. 새로운 극장 앞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게, ‘에너지를 흩어지지 않고 구석구석 저 끝까지 보내도록 노력하자’ 였어요. 모든 배우들 다 노력해서 공간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이번 주가 정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하”

-괴상한 상상력의 작가를 만들기 위해서 아이들을 학대한 ‘카투리안’의 부모님은 또라이 혹은 정신 나간 사람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대본을 보고 카투리안의 부모님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나?
“처음에 캐릭터를 잡을 때 부모님이 사이코 같다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 그 다음에는 ‘가정에는 어떠한 방식으론 폭력이 있다’는 전제를 이끌어냈어요.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은 폭력성을 내재하지 않나. 흔히 세 명만 함께 있어도 누가 더 친한 게 있으니까요. (변)정주 형은 어디서든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말했어요.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키우고 싶어서 실험을 한다면서요.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행위 내면 안에도 그런 마음이 있는거라면서도. <필로우 맨> 속 부모 이야기가 상상력에 의해서 ‘부모님이 많이 간 거’라고 볼 수도 있어요. 마이클의 대사에도 있죠. ‘니 이야기가 너무 간 건 아닌지 실험해보고 싶었어’라고. 그런 의미에서 잔혹함은 너무 간 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부모의 육체적 학대든 정신적 학대든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부모님의 실험 외에 ‘카투리안’은 왜 작가가 됐다고 생각하는가
“어렸을 때 창작 동기가 심어져 무의식 안에 있었을거라 생각했어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작가가 된 거고요. 그런데 부모님의 폭력적인 실험 안에서 태어난 작가죠. 어떻게 보면 실험에 의해 태어난 괴물 즉 ‘몬스터’입니다. 그 자체가 악이 아니라 주변상황이 만들어 준 괴물이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혹은 <프랑켄슈타인>이란 작품을 봐도 괴물은 혼자 크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죠. 카투리안은 이야기만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우선으로 하는 괴물이 되요. 괴물은 슬픈 존재에요. 페이소스를 같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작가 카투리안의 실제 작업장은 도살장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이해했나
“‘소녀 예수’ 이야기에서 정육점 고기 트럭에 치여 죽는 친부모가 나와 연관시켜 보는 경우도 있는데...글쎄요. 작가 성향이 왜 그럴까요? 대본엔 취조실에서 ‘정육점에서 일하시냐’는 질문에 ‘나쁘지 않다. ‘뒤처리만 합니다’라고 답해요. 단어에서 여러 가지 의미가 파생되기도 하는데 ‘뒷처리’란 (한국어로 해석 과정에서) 단어 선택은 제가 했어요.

그런데 작품 안에선 동문서답식 대사가 많아요. 나는 이렇게 말 했는데 다른 사람은 저렇게 받아들이는 것 처럼요. 도살장 뒤처리 장면에서도 ‘범죄를 저지르면 뒤처리하는 사람이냐?’ ‘칼질은 마이클에게 시키고 조절 혹은 뒤처리는 카투리안이 했다는 의미냐?’란 질문이 계속 나올 수 있거든요. ‘이름 장면’에서도 보면 ‘두 번째 이름도 카투리안이야? 이름이 카투리안 K 카투리안이야?’ 라고 말하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 카투리안을 카프카의 <심판> 속 'k‘라고 보기도 하니까요. 둘 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왔다는 점에서 통하는 지점도 있고요.”

-현대사회의 모습을 비추는 동문서답식 소통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죄인을 만들어내는 기득권층이나 권력의 세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투폴스키 형사 입장에서는 미리 정해둔 자신만의 결론을 가지고 사건을 구성하고 처리하기 때문에 소통할 필요가 없는거죠. 투폴스키는 소통하려고 질문하는 게 아닌, 본인이 듣고 싶은 답을 들으려고 질문을 해요. 소통이 한 방향으로만 가는거죠. 자기네 식으로 소통하기만 원하는 모습도 감지할 수 있어요”

■ “카투리안의 이야기는 ‘마이클의 피’로 나온 결과물”

-어찌보면 ‘카투리안’은 마이클의 희생으로 탄생한 작가이다. 카투리안에게 마이클은 어떤 존재인가
“카투리안의 이야기는 카투리안의 피가 아닌 마이클의 피로 나온 결과물 일 수 있어요. 마이클의 7년간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카투리안이 글을 쓴 것이죠. ‘이야기’와 ‘마이클’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누가 먼저냐고 물어 본다면, 마이클을 사랑하는 깊이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깊이가 같다고 말 할 수 있어요. 마이클의 그런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보여요. 그래서 ‘미카엘’이란 단어를 쓸지 말지 올해 많이 고민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마이클은 아이를 살해한 세 번째 방식을 거짓으로 말하게 되는 데, 이 장면을 관객들이 많이들 궁금해 한다. 마이클 홍우진 배우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물어보고 싶지만 없으니 카투리안으로서 이 장면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말해 달라.
“마이클의 거짓말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이해할 수 있지만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마이클의 세계관은 단순해서 오히려 위에 있어요. 물론 마이클의 세계관이 복잡함을 거친 단순함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다만 동생이 자신을 예수님처럼 떠받들다가, 아이를 죽였다고 하니까 카투리안이 화를 내며 놀래고 자신을 세게 잡으니 (순간 떠오른 잔혹한 이야기)‘작은 예수다’라고 말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번 마이클이 베개로 눌리는 장면에서 본인의 죽음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작년 마이클도 숙명처럼 받아들였는데, 이번 마이클이 더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네요. 우진이도 그렇게 이야기 했고요. ‘자기도 숙명으로 받아들여’라고. (초연과 재연 다 본 결과 이번 마이클은 숨이 막히는 현실에서 다리를 많이 버둥거리지 않더라) 작년엔 제가 현철이를 올라타서 베개로 눌렀어요. 못 움직이게 올라타서 누르니 더 그런 느낌이 전해진 것 같아요. 이번엔 올라타지 않고 힘을 빼고 마이클 옆에 앉아서 눌러요. 이 장면에서 마이클이 반항하면 베개가 벗겨질 거란 생각도 했었을 거고. 그래서 덜 버둥거린다는 느낌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네요.”

-카투리안이 쓴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내래이션된다. 무대 위에서 카투리안 일 때와 아닐 때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준다면?
“1막 2장과 2막 2장과 그리고 에필로그 장면은 카투리안이 이야기를 한 게 아니라 맥도너가 이야기 한 걸로 봤어요. 물론 또 다른 작가일 수도 있겠죠. 카투리안의 이야기로 생각하기 보다, 무대 위 스토리 텔러로 등장하는 겁니다.

그런데 1막 2장은 약간의 함정이 있어요. 카투리안으로 있다 ‘띵’ 소리에 웃은 뒤 바로 맥도너로 바뀌어요. 그러나 다시 카투리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있어요. 제 3자처럼 이야기하다 감정이 들어가 슬퍼하니 예리하신 몇몇 분들은 알아차리기도 할 텐데요. 침울한 결말을 이야기 한 다음에 다시 카투리안으로 바뀌어요. 아빠의 머리를 베개로 눌렀을 때 감정이 떠오르고, 곧 형을 베개로 누르게 되고 그런 감정을 연결 시켜 놓은 거죠. 2막 2장도 마지막 내래이션 대사인 ‘텅빈 숲속으로’ 할 때 다시 카투리안으로 돌아오는 큐들이 있어요."

-카투리안으로서 ‘작은 중국인 귀머거리 아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투폴스키란 인물은 어떻게 바라봤나.
“투폴스키가 카투리안에게 이야기를 할 때 아들 같은 느낌이 있어요. 옛날에 술 드시고 아버지가 이야기 해줬던 것도 기억나고요.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가 원하는 이야기를 찾으려고 했던 기억이요. 그런 말이 안 나오면 아버지가 저에게 ‘덜 컸구나’라고 말 하면서 삐지니까요.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비슷한 질문이 나왔는데요 투폴스키 (손)종학 배우는 ‘배틀 한번 뜨자는 거죠’라고 답했어요. 관계는 가끔 우리 시대의 아빠 같아요.

에리얼과 투폴스키 관계도 부자 관계로 보이죠. 제가 정주 형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물론 당시 정주 형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에리얼이 성적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부모를 죽였을 때, 그 살인 사건을 본 사람이 투폴스키 형사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에리얼을 거둬 키워 형사 일까지 하게 만든 사람이 투폴스키 아니었을까? 하고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상상입니다.”



■ “에리얼이 카투리안을 구원해 주는 거죠.”

-카투리안과 에리얼의 숨겨진 관계도 엄청나다.
“카투리안은 뜬금없이 점쟁이 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어요. 형사들에게 ‘아이를 잃었어요? 엄마야 아빠야’ 라고 물어봐요. 형 마이클이 그러고 다니는 건 모르는 점쟁인데(웃음) 스토리 텔러고 인간을 연구하는 작가이다 보니 에리얼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요.

‘에리얼이 카투리안과 비슷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한 거죠. 곧 죽게 되는 상황 앞에서 카투리안은 상위 권력자인 투폴스키가 아닌 ‘제발 에리얼’ 하며 에리얼을 붙잡아요. 이렇게 되기까지는 뭔가 사전 교감이 없고는 그게 안 되겠죠. 분명히 에리얼이 내 이야기를 살려 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마지막 반장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붙태울 거라는 이야기를 전달 받았음에도 한시도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게 죽을 수 있는 거죠. 이야기는 에리얼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사실 에리얼이 구원자죠. 에리얼이 카투리안을 구원해 주는 거죠.”

-에리얼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대본엔 구체적으로 언급이 안 돼 있다.
“후반에 나오는 에리얼의 처형용 고슴도치 ‘헷지호그’(hedgehog)에 그 의미가 담겨 있어요. ‘헷지호그’에 성기라는 의미도 있다고 하는데, 에리얼은 아동 학대자를 처형할 때 마다 흥분을 해요. 그 전엔 성도착증 아버지 밑에서 자란 에리얼이란 의미만 알려졌다면, '헷지호그'라는 단어로 인해 더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게 됐어요. 에리얼이 카투리안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하면서 때리려고 하는 장면의 지문을 보면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끼고 쥐어박는다’고 써져있는데 펠라치오(Fellatio)의 의미로 유추할 수 있어요. 맥도너란 작가가 은유적으로 써 놓은 부분들이 많죠. 그래서 사람마다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기도 해요.”

-작품 해석상도 그렇고 작년 공연에 비해 에리얼과의 관계가 더 끈끈해진 건가
“작년에 함께한 (조)운이도 좋아하는 후배이고 이번에 에리얼로 나오는 태민이도 좋아하는 후배입니다. 태민이의 장점은 번역도 자기 말로 체화시켜 보여주는 점이죠 이게 번역극인지 아닌지 모르게 체화 해 날 것으로 만들어 내는 아이에요. <쉬어 매드니스>를 보며 누가 그런 조지가 나올지 알았겠어요? 무대 위에서 계속 살아 있으려고 노력하는 배우입니다.”

-(정확성을 기해 변정주 연출에게 다시 한 번 ‘고슴도치’란 단어에 대해 물었다)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필로우 맨> 속 ‘고슴도치’란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면 되나
“‘헷지호그’ 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에리얼의 트라우마 강도나 학대의 내용이 명확해졌어요. 투폴스키 대사 중에도 있지만 에리얼은 섹스 환타지를 위해 범죄자를 고문하게 돼요. 이 단어 의미가 초연 땐 명확하지 않았던 게 있어요. 우리가 완벽한 영어를 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말로 써진 최인훈 혹은 오태석 작가 작품을 다 읽어낼 수 없듯이 간단하게 이해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영문학자에게 의뢰한다고 해서, 혹은 영국사람 미국사람이라 하더라고 희곡 속 대사의 숨겨진 의미를 온전히 찾아내긴 힘들다고 봐요. 같이 토론하면서 찾아 낸 것입니다.”

-에리얼의 트라우마 강도가 공연 속에선 특별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마지막에 자루를 쓰고 나서 10초를 준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에리얼이 자위 이야기를 한다거나 행동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시도가 연습 과정에서 있었어요. 그런데 프로덕션과 논의 과정에서 ‘앞에서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데 이번에는 할 수 있겠나’ 란 의문과 한국 관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내놓고 말했을 때 정서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우려가 나왔어요. 결국 많은 사람들과 상의 끝에 현재의 표현으로 굳어지게 된 거죠.”



■ 정태민 “‘카투리안’은 에리얼의 분노를 완전 연소시키는 존재”

-(정태민 배우에게도 에리얼의 트라우마에 대해 질문했다)고슴도치의 의미가 명확해지며 관객으로서 에리얼을 다시 보게 됐다. 배우로선 어떤가?
“이전엔 에리얼이란 인물이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았고 거기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는 인물 정도로만 알려졌다면, 이번엔 그렇게 성적 학대를 받은 무의식 속에 본인도 성적인 것을 좇으려고 하는 게 보여져요. 물론 이런 걸 생각하지만 무대 위에 표현은 많이 하지 못했어요. 상의 끝에 수위가 조절 돼 관객에겐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배우들끼린 명확해져 있는 거죠. 대사를 수정하진 않았지만 투폴스키가 내 뱉는 대사의 의미가 명확해졌어요. 그 의미를 알고 하는 거랑 애매하게 이해하는 거고 말 하는 거랑은 다르니까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1막에서 카투리안을 때리는 장면에서 대본 상 성적인 게 묘사됐는데 (표현을)많이 못하고 있어요. 정주 형은 마지막에 카투리안이 죽어갈 때 투폴스키가 카운트다운을 세는 장면에서 ‘카투리안이어서 안되고 또 그게 싫지만 에리얼은 성적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고 말 했어요.”

-‘고슴도치’ 란 단어가 성적 환타지란 맥락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가시(폭력)를 앞세워 자기를 방어하려는 ‘고슴도치 딜레마’로도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에리얼과 카투리안의 관계가 그렇게 보여 더 안쓰러웠다.
“에리얼은 카투리안에게 가시 돋친 채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그렇게도 이해 될 수 있겠네요. 카투리안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투폴스키가 끊어버리는 게 있기도 하지만요. 거기에 대해서도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필로우 맨>은 아는 마음 만큼 보이는 작품이 맞네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인터뷰 할 때 ‘에리얼’이란 인물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공연의 후반을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가? 에리얼의 감정이 다 이해가는가?
“에리얼의 감정은...다 이해 됐어요. 표현의 수위에 대해 말하라면, 아직은 물음표가 많아요. (에리얼은 카투리안에게 시선을 떼지 않는다) 1차적인 건 아동살해범에 대한 증오심이고, 2차적으론 카투리안이 던지는 말 중 에 걸리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와 작가 형제의 이야기’란 자전 이야기를 통해 카투리안이 부모를 죽인 것을 확실히 알게 되지만, 무의식 중에 ‘자신과 비슷한 카투리안에 대한 느낌이 있지 않을까’란 측면에서 접근해 갔어요. 그래서 누군가 부모 이야기를 할 때면 한 번씩 더 보게 되고, 그런 성향이 에리얼에게 흘려버리지 못하는 단서들이 되는거죠.

물론 에리얼의 기본적인 성향은 분노입니다. 카투리안에 대해선 관찰하고 있는 겁니다. 에리얼의 감정분출 시점은 카투리안과 단 둘이 남았을 때(3막 1장 에리얼의 증오심을 길게 독백하는 장면)입니다. 카투리안을 이해해버린 거죠. 이 전엔 ‘이 놈이 나랑 똑같은 놈이네’ 부모님한테 학대를 받고 그걸 이겨내려고 난 경찰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아인 이걸 다른 쪽으로 풀어? 그게 싫어서 형을 구해 준 놈이 똑같이 하고 있어? 부모에게 물려받은 피를 이겨내지 못하고 반복하고 있구나! 란 분노와 의문을 가졌다면 둘이 남아 있는 그 장면에서 이해하고 분출해요. 여전히 에리얼의 감정은 복잡하긴 해요. 에리얼이 제 그릇 밖의 캐릭터란 생각이 들어요. 제 그릇보다 더 큰 물이 공중에 떠 있죠. 그걸 받아내야 하는 거죠.”

-인터뷰가 이렇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경우도 오랜만이다. 준원배우의 해석은 카투리안에게 에리얼은 구원자였다. 에리얼에게 카투리안은 어떤 존재가 되는 건가
“에리얼과 카투리안과 연결 끈은 마지막 장면입니다. 마지막에 불을 켰을 때 (제 안에)카투리안이 들어와요. 불교 용어로 완전 연소라고 하죠. 불을 보면서 ‘아 이런 놈이 있구나’ 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요.

제가 에리얼이란 캐릭터에 다가가며 이야기를 만들어갔어요. 제 생각에 에리얼은 카투리안이 죽은 다음 날 다른 경찰이 돼 있을겁니다. 지금까지 에리얼은 (학대를 받았지만 범죄자가 되지 않아)‘내가 최고다’고 생각한 사람이죠. 아동학대범을 잡아 아동에게 분노를 풀지 않고 학대범 그놈을 족치는 인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카투리안을 보고 흔들려요. 처음엔 형과 같이 아동을 학대하는 같은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 친구는 피해자고 글로 승화하려 했던 아이인 걸 알게 돼요. 물론 이야기를 지키려는 게 컸지만 자기를 희생하려고 했던 아이잖아요. 거기서 뭔가 크게 와요.

카투리안은 이야기를 지키려는 마음이 크고 죽지만, 그 때 카투리안이란 사람이 에리얼 안에 들어와요. 카투리안이 저의 모든 걸 안고 죽은거죠. 그 장면에서 불의 열기를 마음껏 느끼고 불을 끄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는 ‘분노’를 다 꺼요. 새로운 에리얼이 태어나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그 동안 고통스런 이야기를 다 잊고 편하게 살라면서 자극을 줬던 투폴스키가 절 훈련시킨 거라 볼 수 있는데 카투리안은 그 이상인거죠. 늘 옆에 있어줬던 아버지 같은 선배보다 카투리안이란 존재가 더 큰 예수님이 된 걸로 받아들였어요.”



■ “살아있다는 절실한 기분을 갖게 하는 <필로우 맨>”

-3시간의 러닝타임 외에도 주인공으로서 긴장감은 어마어마 할 것 같다.
“겁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참 묘한 3시간이 지나면 탈진 상태가 되요. LG아트센터에서 했던 <필로우 맨> 공연 때 최민식 선배도 1막 지나면 그냥 드러누웠을 정도로 힘든 역입니다. 저도 1막이 끝나면 그런 상태가 되지만 선배가 있어 그렇게 드러눕진 못해요(웃음) 대신 우진이가 와서 ‘형 고생했어’ 라고 어깨 주물러주면 추스르고 다시 2막 무대에 오를 수 있어요. 1막보다 2막이 신체적인 건 덜 힘들어요 투폴스키와 에리얼이 끌어가는 게 있어서요. 그런데 그 순간에도 놓치지 않고 듣고 살아있으려고 하다보니 진이 빠지려고 하죠. 그러다 커튼콜 때 관객의 눈을 보고 정화가 돼요. ‘아 살아있다’란 기분도 좋고요.”

-무대 올라가기 전 기도를 하나?
“무신론자라 기도는 안 하지만 오프닝 음악을 듣고 있어요. 음악과 더불어 작품에 녹아나려고 하는 저만의 방식입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거기서 3시간을 살아야지’란 생각, 또 몇 가지 상상을 해요. 저의 이런 방식이 또 다른 누군가의 기도 혹은 묵념이나 명상 같은 것과 비슷한 거겠죠.”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해 두려움도 살짝 있던데 카투리안을 하기에 가장 적당한 나이는 언제라고 봤나
“희곡 속 이야기를 종합해 볼 때 카투리안의 나이를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봤어요. 그들이 엄마 아빠를 죽여 소원의 무덤에 보내고, 학교를 다니고 원반 던지기에서 1등 하고...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탈출한 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어요. 이야기 400개를 언제 썼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렇게 추정해본 결과 20대 초중반에서 많으면 20대 후반의 남자가 그려지더라구요. 제 나이가 30대 후반인데, <필로우 맨>을 더 시켜준다면 동안을 유지하겠습니다. 혹시 보톡스 맞고 못 생겨진 동안이어도? 하하”

-다른 배역은 몰라도 카투리안은 더블 캐스팅으로 하면 어떨까? 란 생각도 들던데
“정주형의 원칙이 네 배우 모두가 프리한 조건에 한해서 할 수 있다는 거 였어요. 글쎄요. 더블 캐스팅 시스템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우선 대사 양이 너무 많아 어려워요. 지금은 외워놔서 시스템 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을 수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한 차례 공연 해 로딩이 돼 있는 저에게도 몇 주간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저 만해도 7주간 쉬지 않고 거의 이 작품만 붙들고 있었어요. 분명한 거 7~8주가 절대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다는 거죠. 두 명의 카투리안이면 14주의 연습이 필요한 건데,,, 나머지 배우들도 그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겠죠. 다른 한편으론 다른 카투리안을 보고 싶기도 해요. 궁금하거든요. 더블 캐스팅이 좋은 점이 그것인데, 그동안 제가 놓친 부분을 보고 싶어요.“

-본인이 나온 작년 공연 DVD는 보지 않았나
“‘필로우맨’ 조명 그림자 장면을 사진 찍어놓은 거 보면 예뻐서 궁금하긴 했는데, 막상 제 공연을 제가 보면 오글거릴까봐 보지 않았어요. 연극이란 게 무대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그 순간에 살아있으려고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더 그랬나봐요. 3시간 공연 한 다음에 내 공연을 DVD로 다시 보면, 동시에 생각나 대본이나 대사 발음이 모두 엉킬 것 같아요. 반면에 영화 작업을 할 땐 꼭 DVD로 보는 편이죠. 다시 <필로우 맨>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들었을 때, DVD달라고 해서 제 공연 모습을 보려구요. 하하”

-변 연출은 좋아하는 장면으로 맨 마지막 에필로그를 꼽기도 하던데 본인은 어떤 장면이 좋나
“정주형도 좋아하지만 저 역시 사랑하는 장면입니다. 사실 엔딩 에필로그는 마틴 맥도너의 육성을 녹음하려고 했어요. 정주 형이 원작자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답을 못 받아 결국 카투리안이 캐비넷 문으로 나가서 작가의 책상에 앉는 장면이 됐어요. 내레이션도 좋아요. ‘침울하게 세련되게 그렇게 끝났어야 했는데’라고 말하지만 우리 이야기도 희망의 불씨를 넣어놓고 끝내요. 작가의 변명 같기도 하지만 좋아요. 어쩌면 작품의 영혼에 더 잘 어울리는 결말이구요. 이걸 재미있게 풀어가는 것은 제 몫이구요.”

-카투리안의 7개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이야기 룰을 따르지 않는다. 이야기들이 다 이해가 되던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걸 느끼려고 노력해요. 이야기와 목숨까지 바꿀 수 있는 카투리안의 절실함의 크기를 이해하다보면 매번 진이 빠져요. 그러기 위해선 바닥까지 내려가야 해요. 제가 절실함을 아무리 표현해도 모자르죠. 전 카투리안의 절실함을 뛰어넘을 수 없어요. 죽기 직전의 3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거잖아요. 남들은 왜 그렇게 진을 빼냐고 할 수도 있지만, 목숨을 포기한다는 게 뭔가요? 사람을 강제로 물 속에 집어넣고 1분이 지나면, 살려고 어머 어마한 에너지를 내며 별 짓을 다 해요. 그 에너지랑 비슷할 수 있어요. 매번 어떻게 다 느끼고 할 수 있을까 겁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로딩이 잘 돼 있을까?’ 날 믿고 가야 해서 매번 컨디션 체크를 하게 되죠.“



■ 작가와 용의자로서 완벽하게 줄타기를 한 배우 김준원

-<필로우 맨>이란 작품을 한 마디로 말 하면?
“‘마틴 맥도너가 변정주다. 혹은 그 둘의 장난질이다’ 이 말을 듣고 누군가는 의아해 할 수 있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장난’이란 정말 연극을 가지고 잘 논다는 의미입니다. 연극의 모든 걸 이야기로 풀어냈잖아요. 스토리란 게 연극의 본질에 가까워 요. 옛날에도 이야기가 있었고 희랍극도 이야기에서 시작해요. <필로우 맨>은 가장 정통 연극에 가까운 방법을 가지고, 마틴 맥도너와 변정주가 연극의 미학을 만들어 낸 작품이죠. 또 정말로 맥도너 만큼 정주 형이 장난을 잘 쳐요. 맥도너가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자기 자신에게 ‘그’ 또는 ‘카투리안’이란 호칭을 썼듯 정주형도 아이디어가 대단해요. 연극 속에서 잘 살펴보세요.”

-연극 <날 보러와요>, <쉬어 매드니스> 등 변정주 연출과 작업을 자주 했다. 변 연출이 신뢰하는 배우 중 한명이다. 그 이유는 뭐라 생각하나
“알고 지낸지 20년이 넘었어요. 그래서 워낙 신뢰하는 게 있나 봐요. 그런데 뮤지컬은 안 시켜주고 연극 작업 할 때면 빼지 않고 같이 했어요. 하하. 왜 그러냐? 그걸 저 입으로 말 하라고 하면 답하기 어렵네요. 글쎄요. 더 잘 이해하기 때문 아닐까요. 오래 알고 지내왔으니 정주 형이 저런 언어를 사용하면 저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바로 캐치해낼 수 있어서요. 제가 빨리 이해를 해서 같이 작업하는 주변 배우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요.”

-(변정주 연출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다)김준원 배우를 꼭 만나봐야 한다고 적극 추천했는데, 신뢰감을 준 이유를 구체적으로 들려달라

“이전 시즌엔 작가로서의 태도와 권력기관에 불려 간 용의자로서의 태도가 충돌했다면 이번엔 그 사이의 줄타기를 완벽하게 잘 했어요. 아무리 깡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경찰에 불려가게 되면 위축이 되거나 제대로 자기 말을 못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개기는 정도가 심하면 형사는 용의자를 패버릴 수 있는 건데 그 사이 균형을 잘 잡았어요. (예술가로서)너무 한 쪽으로 가서 형사의 해석을 건드리지 않고, 또 너무 반대쪽으로 가서 건드리지도 않은거죠. 그 선을 넘지도 않으면서 또라이 같은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기가 쉽지 않거든요.

대본을 보면 이 공간은 알 수 없는 공간이지만 작품을 만들면서는 취조하는 사람과 취조받는 사람과의 상식적인 관계에 기본을 둘 수 밖에 없어요. 정서적으로 한국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면 더더욱 그렇죠. 그런데 따지고 보면 예술가로서의 이야기와 취조실 상황이 충돌하게 돼요. 그래서 준원 배우에게 요구한 건 모차르트적인 또라이 모습과 한 편으로는 취조실에 끌려왔을 때 위축된 상반된 모습을 함께 보여주라는 것이었어요. 작년엔 이런 부분에서 이 모습, 저 부분에서 저 모습 이었다면 이번엔 구분할 수 없게 줄타기를 한 거죠.

제가 가장 높이 산 점은 ‘카투리안이 형사도 이해할 수 있게 했고 관객도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는 점입니다. 관객이라면 먼저 연출인 저겠지만요. 이번 공연을 보면서 ‘카투리안의 정확한 해석을 찾아냈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준원 배우가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는데 만약 다른 배우와 하더라도 이 수준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제가 준원이 칭찬을 너무 했나요. 그런데 트위터나 다른 곳 관객 평을 봐도 준원 카투리안을 만장일치로 좋아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김준원 배우는 ‘현재 만약의 사고가 일어났을 시 카투리안을 대체 할 수 있는 배우는 변정주 형 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전에 장난으로 정주 형이 ‘너 다치거나 죽으면 안 된다. 너 다치면 최민식 배우 밖에 없다. 그 다음에 나 밖에 없다’라고 말 했어요. (변 연출이 작품에 대한 애정 못지 않게 배우로 출연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 보였다. 정식 공연은 아니더라도 <필로우 맨 밤>같은 특별 공연에서 변정주 카투리안을 보여줘도 좋을 것 같다) 저도 언젠가 같이 술 먹으면서 <필로우 맨> 속 카투리안으로 출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번 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토크쇼도 곁들여지고, 배우들이 역할을 바꿔서 갈라 형식으로 선 보이는 <필로우 맨 밤> 제안도 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우선 이번주 일요일에 막을 내리는 <필로우 맨>이 금방 매진되지 않을 까 걱정되니 서두르셔야 할 것 같아요. 하하”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노네임씨어터, 허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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