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 김구라는 왜 ‘꽃누나’를 띄엄띄엄 봤을까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JTBC <썰전>이 예능이 아닌 교양으로 분류되는 건 ‘비평’이라는 틀이 그 이유일 게다. <썰전>을 대표하는 앞 코너가 작금의 정치 실태를 속 시원히 파헤쳐주기도 하지만 뒤편의 ‘예능 심판자’ 또한 신변잡기 같은 흥미위주가 아닌 예능의 전반적인 동향과 흐름의 변화를 조목조목 짚어보고 다양한 의견을 나눈다는 점에서 비평 프로그램으로서의 자격이 있었다. 사석이라면 모를까 카메라를 앞에 두고 동종 업계, 같은 연예인 동료들의 정황을 이렇게 첨예한 수위로 언급한 프로그램은 처음이었으니까. 때로는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불이익은 없으려나? 내심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초심을 잃은 것인지 정체성을 잊은 출연자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비평의 기본이 ‘대상에 대한 충분한 숙지’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이들이 보인다는 얘기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없으니 대본에 적힌 내용 말고는 아는 것이 있을 리 없고, 그러니 뜬구름 잡는 소리들이 나올 밖에. 2013년을 대표할 참신한 포맷의 예능이건만 왜 책임과 긍지를 다하지 못하는 것인지, <썰전>의 탄생과 빠른 성장에 박수를 보낸 한 사람으로서 그저 아쉬운 마음이다. 짐작컨대 제작진도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조짐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 일컬었던 KBS 수목드라마 <비밀>을 다루던 즈음부터 두드러졌다. 여주인공 황정음의 흥행 퀸으로 성공한 비결을 논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어떠한 노력으로 연기력 논란을 극복해왔는지, 그녀가 걸어온 길을 꿰뚫고 있는 이는 없었으니까. 아니 관심이 없어 보였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지 싶다. 그냥 <비밀>이라는 화제작 얘기를 할 예정이라니까 인터넷 검색 좀 해보고 몇 장면 들여다본 느낌이랄까?

그러나 그건 약과였다. 급기야 지난 달 tvN <응답하라 1994>가 주제였을 적에는 잘 모른다고 당당히 말하는 이가 등장했으니 그는 바로 가장 중심을 잘 잡아야 할 간판 MC 김구라다. 여러 MC들의 발언에 귀 기울여가며 조합하고 분배하는 역할을 해야 할 메인 MC가 오히려 곁가지만 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주제고 초대 손님이고 연구 없이 방송하는 진행자들이 흔히 일삼는 변명이 ‘그 자리에서 알아가야 더 생동감이 있다‘인데, 그러나 그건 일명 ’떼토크‘에서나 용납되는 상황이 아닐는지.



그리고 이번 주 월요일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Mnet <댄싱9> 참가자들이 초대됐는데 이 프로그램 또한 본 적이 없음을 당당히 밝히는 무례를 범하는 게 아닌가. 아무리 바쁘다 해도 세상이 오죽이나 좋아졌나. 마음만 있다면 다운로드 받아서 이동 중 차 안에서라도 볼 수 있는 일이다. 우승자 하휘동이 얼마나 대단한 이력을 지녔는지, 두 팀의 대결이 얼마나 긴장감 넘쳤는지, 간발의 차이로 패하는 바람에 갈라쇼 무대의 주역이 될 수 없었던 블루팀의 한선천, 김명규, 두 무용가의 심경이 어떨지 전혀 가늠을 못하는 상태에서 무슨 생동감 있는 인터뷰가 나올 수가 있으리. 다행히 또 다른 MC 홍은희가 <댄싱9>과 출연자들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어 무마가 되었지만 같은 날 밤 김구라가 게스트로 출연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의 재탕 토크 열전을 대하고보니 성의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토크쇼며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썰전> ‘꽃보다 누나’ 비평 때 나온 ‘하도 재미없어서 여덟아홉 번씩 끊어서 봤다, 감아가며 봤다’, 대상이 되는 프로그램을 띄엄띄엄 봤다는 식의 발언도 다른 방송이라면 해도 되는 얘기다. 순전히 취향의 문제니까, 역할 분담이라는 것도 있는 거니까. 주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한 둘쯤은 있어도 무관하니까.

그러나 ‘예능 심판자’에서만큼은 자세를 달리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비평, 토론, 심판은 반드시 ‘숙지’를 전제로 해야 옳다는 얘기다. 안 본 이들이 오히려 열심히 보고 연구해온 이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상황, 그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이지 뭔가. 솔직히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게 된다. 올 초 <썰전> 출발 당시와는 입지가 사뭇 달라진 출연자들, 스스로의 발자취를 돌아봐야 좋을 시점이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JTBC,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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