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아지, 그 고양이’가 남긴 스마트폰 영화의 가능성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세계 최초 아이폰 장편 영화'로 홍보되는 <그 강아지, 그 고양이>가 최근 개봉했다. 정말 홍보문구대로 '세계 최초'인지는 잘 모르겠다. 원론만 따진다면 스마트폰으로 장편 영화를 만드는 것은 지독하게 쉬우며 누군가가 이미 스마트폰으로 찍고 앱으로 편집해 만든 몇시간 짜리 대작을 자기 스마트폰 안에 넣고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극장 개봉되는 스마트폰 촬영 장편 영화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고, 그것만 해도 굉장한 일이다.

영화는 한국 최초로 '페어 필름' 인증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는 공영영화심의위원회에서 근로계약서 사용여부, 일일촬영시간준수, 임금체불, 4대보험, 사회공공적기여 등을 심의하여 인증했다는 뜻이다. 험악하기 짝이 없는 한국 영화 산업의 환경을 고려해보면 이 역시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이런 종류의 영화가 극장에서 걸릴 때마다 예상 외로 좋은 화질에 놀라게 된다. 영화는 분명히 우리가 들고 다니는 것과 같은 기종의 기계로 찍었겠지만 나온 결과물은 우리가 찍어서 컴퓨터 모니터로 보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물론 여기엔 전문 조명팀의 도움과 후반 작업의 공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결과물은 상당히 준수해서 남은 영화를 스마트폰으로 찍겠다고 선언하는 <아티스트 봉만대>의 봉감독의 행동이 그리 만용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이런 걸 보면 늘 떠오르는 게 있다. 옛날 교과서에 실렸던 <연극과 영화>라는 글인데, 제목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하여간 이 글의 필자는 앞으로 영화는 대규모의 자본이 들어가는 거대한 대중 오락이 될 것이고, 연극은 아마추어들의 자기 개발 활동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 예언은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 십만 원을 훌쩍 넘기는 뮤지컬 공연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할리우드 대작과 캠코더로 찍은 극저예산 영화가 공존하는 지금을 보면 말이다.

주변에 널린 흔한 기기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영화예술가들의 오랜 꿈이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지옥의 묵시록>을 찍던 1979년에 예언했다. 어느 날, 갑자기 오하이오에 사는 뚱뚱한 소녀가 그 시대의 모차르트가 되어 아빠의 캠코더로 자기만의 걸작을 찍을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계는 붕괴되고 영화는 새로운 예술이 될 것이라고.



엄밀하게 말한다면 코폴라도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세계는 자기 스마트폰으로 장편 영화를 찍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기존의 영화계는 건재하며 유튜브 시대의 아이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화 예술이라는 개념을 뒤집을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 같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한 시대의 모차르트를 기다리는 건 인내가 필요한 일이고 예전에는 자본과 인력 없이는 할 수 없었던 온갖 것들이 가능해진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무엇이 나올지 어떻게 알겠는가. 아니, 이미 그 무언가가 나왔는데 우린 아직 그것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 강아지, 그 고양이>는 '그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가치는 일단 비교적 보수적인 목표, 그러니까 새로운 기기로 찍은 영화를 극장이라는 기존의 방식을 통해 배급한다는 온화한 실험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인간 배우들과 동물 배우들이 귀엽지만 이야기 자체는 지나치게 인공적이고 익숙하다. 남자를 개, 여자를 고양이로 놓고 이야기 재료들을 완벽한 대칭으로 쌓아가는 이야기 방식은 많이 갑갑했다. 감독이 실제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고 영화의 이야기도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고양이 묘사에 조금 기대를 했는데, 두 동물을 은유 속에 가두다 보니 그 가능성이 많이 날아가 버린 것 같다. 고양이 묘사만 놓고 본다면 역시 같은 고양이 배우를 기용했던 단편 <도둑고양이들>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일단 영화 속 고양이 배우를 이렇게 편하게 볼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으니까. 동물과 어린이들의 집중력에 의존하지 않는 이런 환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연기의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 이 자잘한 가능성을 탐구하다보면 언젠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우리 시대의 모차르트가 나오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그 강아지, 그 고양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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