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춤이 말하다>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8일부터 15일까지 여러 장르의 댄서들이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공연 제목은 <춤이 말하다-Cross Cut>. 출연진은 춤의 4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무용가로 김운태(한국전통춤), 이나현 이선태(현대무용), 김주원 김지영(발레), 디퍼(본명:김기헌, 비보이), 안지석(스트리트 댄스)이다. 혹자는 이번 공연 콘셉트가 TV 프로그램 <댄싱 9>와 비슷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 출연 무용수 이선태는 “<댄싱 9>는 춤을 춰야 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거라고 이해했다. 춤의 콜라보가 아니라 댄서의 콜라보라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모든 장르가 자기를 낮추고 들어와야 콜라보레이션이 되는거니까, 일반 사람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실제로 공연을 다 본 다음에 느낀 관객의 감상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7명의 춤꾼들이 얼마나 춤을 잘 추느냐’를 보러 간 게 아닌, ‘얼마나 교감했느냐’에 더 초첨이 맞춰졌으니 말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새롭게 선보인 <춤이 말하다>는 동시대 무용가들이 관객에게 본인의 춤을 들려주고 보여주는 ‘렉처 퍼포먼스’다. 무용수들이 마이크를 찬 채로 거친 동작 중간 중간 이야기를 해 인간적인 숨소리도 함께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관객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한 점은 아름답게 포장된 몸짓, 추상적이고 난해한 은유적 설명이 없었던 점. 관객과 같은 눈높이에서 무궁무진한 춤의 세계를 탐구한 기분이랄까.

발레리나 김지영은 <지젤>의 한 장면을 시연한 뒤 25년간 계속해 온 발레 인생을 들려줬다. 잊을 수 없던 순간은 얼마 전 국립발레단 무대에서 만날 수 있었던 롤랑프티 <카르멘>의 민낯을 경험할 때다. 무대 위에서 강인하고 섹시하고 자유로운 ‘카르멘’ 그 자체였던 김지영은 하나하나 말로 동작을 설명하며 춤을 췄다. 마치 만화 속 말 풍선이 하나하나씩 터져나오듯 리얼한 속마음이 흘러나왔다. 특히 “힘들지만 웃어야 돼요”라고 말하자 공감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무대 위에서 매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춤꾼들이 말을 하자, 팽팽한 무대 위 공기에 부드러운 바람이 들어왔다. LDP무용단 단원인 이선태는 “고교시절 무용콩쿠르에서 상을 타기 위해 별 의미는 없지만 멋있고 잘 해보이기만 하는 동작을 짰음”을 이야기했다. 곧 직접 시연을 하며, “‘좋은 그림, 좋은 모습’보단 의미있는 나 만의 춤, 동작을 추고 싶다”는 바람을 들려줬다.

비보이 배틀 현장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에 곁들여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지키는 게 좋은 무브’라고 밝힌 디퍼는 “내 춤의 철학은 장르가 다 다르더라도 춤은 하나라는 것이고, 모든 게 다 비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우스룰즈 멤버이자 또 다른 스트리트댄서 안지석은 “움직임과 비트”의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현대에 유행하는 춤과 사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스트리트 댄서 자체가 현대무용이란 것이다. 테크닉도 그렇지만 음악이 그 당시 사람들의 정서를 굉장히 많이 표현하기 때문에, 그 음악을 표현하는 게 스트리트 댄서란 점에서도 그렇다.” 안지석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배틀 혹은 길거리 춤으로만 인식해 온 ‘스트리트 댄스’가 아닌 보다 넓은 의미의 동시대 춤으로 안내했다.



출연자 중 유일하게 리허설을 거부하고 무대에 오른 전통춤(채상소고춤)의 김운태는 “이 모든 게 우연의 드라마”라고 말 문을 열었다. “모든 게 설레야 하고 낯설어져야 한다고”고 강조한 김씨는 “리허설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것은 신혼 첫날 밤을 미리 치르고 다시 신혼 밤을 겪는 것과 비슷하다”고 색다른 의견을 전했다. 그의 말대로 ‘현대 무용의 몸성, 즉흥성’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졌음은 물론이다.

UBIN 댄스 대표 이나현은 “몸을 0의 상태로 비워 말랑 말랑한 젤리 상태에서 다양한 질감의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했다. 상대 무용수(이선태)와 시연을 하면서 ‘접촉과 배려의 철학’도 조목조목 차분히 들려줬다.

‘공간의 밀려나감’에 관한 그녀의 무용관은 ‘현대무용이란 무엇인가. 동시대 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신선하게 사유할 수 있게 도왔다. “춤은 공간을, 파장을 만드는 거다. 공간이 안 움직이면 절대 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움직이면 내가 움직인 그 에너지에 관객이 밀려나가는 거다. ‘아 그렇구나, 어머 아름다워, 어머 즐거워’가 아니라 무용수들이 내 뿜은 공간의 밀려나감을 관객들도 온 몸으로 느끼다 나갈 수 있는 게 최고의 공연이라 생각 한다”고 전했다. 2014년 연말에도 송년기획공연 <춤이 말하다> 두 번째 버전이 나오길 기대하게 된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국립현대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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