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산 상속을 미끼로 아들과 흥정하다니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드라마에서 어른다운 어른을, 부모다운 부모를 보기 어려워짐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젠 하다 하다못해 별 아비가 다 등장했다. KBS <로맨스타운>에 나오는 강건우(정겨운)의 아버지 강태원(이재용)은 젊고 아름다운 새 아내(양정아)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때 맞춰 혼외 자식이 들이닥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자 어수룩한 아들 건우를 꼬드겨 아기를 아들의 자식으로 삼아 버린 후안무치한 아비다.

생때같은 아들 발목을 잡아도 유분수지, 나는 저 여자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신혼 생활 좀 즐길 수 있게 해 달라, 너는 어차피 미국 유학을 떠나고 싶어 했으니 가서 몇 년 만 지내다 오면 깨끗이 누명을 벗겨주마, 하며 회유를 한 것이다. 고도비만에다가 우유부단하기까지 해 삶의 의지가 그다지 없었던 건우는 유학비 넉넉하게 대주겠다는 아버지의 제안에 말려들고, 그리하여 산(조휘준)이는 강 사장의 아들이 아닌 손자로서 자라나게 된다.

그와는 반대인, 자식의 철없는 실수를 부모가 감싸느라 손자를 자식으로 삼아 키운 예는 다른 드라마에서도 꽤 있었다. SBS <파리의 연인>만 해도 삼촌 조카 사이였던 한기주(박신양)와 윤수혁(이동건)이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가 다른 형제였으니까. 그런가하면 MBC <잘했군 잘했어>의 이강주(채림)의 어머니(김해숙)도 강주가 낳은 딸 별이를 남몰래 자신의 아이로 기르지 않았나. 그런데 이건 아들이 아버지의 실수를 대신 뒤집어쓴 꼴이 아닌가.






게다가 탈태환골을 하듯 변모한 건우가 귀국해 약속대로 누명을 벗겨 달라 요구하자 한다는 소리가 기가 차다. “이제 와서 번거롭게 뭘. 산이가 니 자식에서 내 자식 되면 너두 좋을 것 없어. 1000원 갈 거 500원으로 나눠야 되고. 굳이 형제가 필요할까?” 거액의 유산 상속을 미끼로 또 다시 아들과 흥정을 하려드는 건우의 아버지, 그리고 그 사실을 엿듣고 분기탱천해 부르르 떠는 젊은 아내, 이건 뭐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지긋지긋한 도박병 때문에 결국엔 딸 노순금(성유리)을 강 사장 집 가정부 노릇까지 하게 만든 순금의 아비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진상 들이라 할밖에.

‘부모란 하나의 중요한 직업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식을 위해 이 직업의 적성검사가 행해진 적은 없었다’라는 명언이 새삼 생각난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능력이 있든 없든, 속물이든 아니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었으면 자식의 울타리는 되어주지 못할지언정 최소한 구정물은 끼얹지 말아야하지 않겠나. 이런 부모들이 현실에는 결코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서글프다. 자식을 돈으로 조종하는 부모들은 왜 그리 많은지, 또 자식 등골에 빨대 꽂은 부모들은 왜 그리 넘쳐나는지.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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