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셈버>가 ‘또 봐’ 뮤지컬로 불리는 이유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김광석…그는 지금 이곳에 없지만, 사라졌다고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 들은 이는 아무도 없지만 그는 우리에게 ‘안녕…또 봐’라고 말했을 것이다.“-<디셈버> 연출가 장진

지난 1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서울시뮤지컬단 <디셈버>(연출 장진, 음악감독 강수진, 편곡 김중우, 안무 이경화)에 대한 평이 엇갈리고 있다.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극인지 알 수 없다는 점, 김광석의 음악적 정서를 코믹함으로 변질시켜 놨다는 게 그 이유이다. 이야기 뼈대 위에 음악 줄기를 균형 있게 맞춘 장유정 연출의 <그날들>, 가객 김광석의 정서를 제대로 살려 낸 어쿠스틱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비교당하기도 했다.

장진 감독이 직접 쓰고 연출한 <디셈버>는 20년 전 과거와 오늘의 이야기를 오가며 펼쳐진다. 1992년 이연(오소연 김예원)이라는 여학생과 사랑에 빠졌던 대학생 지욱(김준수 박건형)은 20년의 시간이 흐른 후, 공연 연출가가 되어 과거 자신을 떠나갔던 이연과 똑같은 모습의 여인 ‘화이’를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디셈버>는 흔하디 흔한 로맨스 뮤지컬일까. 로맨스란 외투를 빌린 부조리극일까. 로맨스 시각으로만 보면 상당히 진부하고 기대 이하인 뮤지컬이란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반면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이야기 얼개와 클라이막스도 없고, 끝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않으며 막을 내리는 부조리극의 시각으로 보면 의미가 달라진다.

처음 <디셈버>를 관람한 후엔 ‘지난 해 관객의 호불호를 낳으며 대학로에서 막을 내린 부조리극 <허탕>의 또 다른 뮤지컬 버전인가?’ 란 생각이 들었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러닝타임(3시간 30분에서 3시간으로)을 조절하기도 했다. 연극 <허탕>에선 개막 초반 10분 분량을 덜어냈다.

다시 한 번 관람한 뒤엔 데이트용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세대를 불문하며 사랑 받는 ‘김광석’을 이야기 꾼 ‘장진’만의 색채로 탄생시킨 심오한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졌다. 물론 김광석의 음악만이 가지고 있는 애틋한 감성과 작품의 주제를 돌직구로 날리는 게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해석하게 만들어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 치명적인 약점인 동시에 장점이다.



극 후반, 장진의 영혼을 빌린 ‘지욱’은 말한다. “공연의 막이 오른 순간 작품은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저 들키지 않게 ‘더 이상 끝이 아니기를~’(‘꿈이 아니길’ 넘버 노래를)흥얼거릴 수밖에”

지욱은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떠나보내고 20여년 후, 잊고 있던 사랑과 꿈의 무대를 만난다. 1막은 ‘김광석’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두 남녀의 사랑을 통해 보여준다. ‘이연’은 김광석의 또 다른 얼굴이었던 셈. 변주곡 ‘스치다’란 넘버에서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다시 또 스치다’를 거쳐 상대의 얼굴을 기억하는 그들만의 암호로 무대화됐다. 1막의 마지막은 변주곡의 원곡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로 채워진다.

1막의 세부 스토리와 2막은 김광석의 노래와 함께 사랑하고 고민하고 투쟁했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불러낸다. 뮤지컬의 문법에 제대로 따랐느냐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더라고,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 인생의 어떤 시기에 대한 생생한 감정 역시 하나 하나 담아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미디어파사드’ 기술이 등장하는 '훈'이 근무하는 전방 지뢰 폭파 장면의 긴장감은 대단했다.

12월의 감성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땅만 보며 살기에 바쁜 현대인들의 머리를 다시 한 번 쓸어 올리는 ‘또 겨울이네’란 주인공의 한마디는 매 해의 마지막인 12월을 향해서 가고 있지만 또 그 ‘다음’을 생각하게 하는 우리네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암울한 시대와 답답하고 매캐한 현실에 정면으로 맞선 ‘이연’,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들고 싶어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척 하는 ‘지욱’,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청년에서 상처만 남은 평화를 얻고 180도 변신한 국회의원 ‘훈’ 모두 현실의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두 명의 지욱이 각기 다른 아우라를 선 보였다. 김준수는 객석 전체를 청춘의 감성으로 아스라이 번지게 했다. 찬란한 설렘과 눈물로 채워진 지나간 청춘, 불편하고 버거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간절하고 애틋하게 다가올 청춘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줘 모든 세대가 열광할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렇게 로맨틱 김준수 지욱이 웃음과 눈물이 함께하는 청춘의 열병을 돌아보게 한다면, 유쾌한 박건형 지욱은 부침이 심했던 그 시절 청춘들의 '마음의 빚'을 생각나게 했다. 박건형 지욱은 박호산 훈과 함께 출연해 농익은 연기를 선보였다. 또 다른 이충주 훈은 청춘들의 성장통을 떠오르게 해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배우 오소연, 김예원, 이창용, 김슬기, 조연진 송영창, 조원희, 홍윤희, 임기홍, 김대종 등이 제 몫을 해낸다.

그럼에도 장진식의 기발한 연극적 문법이 화려한 대극장 무대와 만나는 지점은 고민이 더 필요해 보였다. 한 번 보면 알 수 없고 두 번 이상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해서 "또 봐 뮤지컬 <디셈버>”란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표 값이 만만치 않은 공연을 한 번 이상 보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게다가 ‘완성도 부족한 뮤지컬’ 이라고 보기엔 담고 있는 게 너무 많다. 오히려 ‘속내를 천천히 보여주는 뮤지컬’이란 수식어가 더 알맞겠다. 뮤지컬 <디셈버>의 부제 ‘끝나지 않은 노래’처럼 시행착오를 겪은 장진 감독의 도전과 용기가 계속 되길 바란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뉴(NEW), 호호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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