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 “가르시아는 배트맨의 악당 조커의 눈빛에서 시작”
[인터뷰] 뮤지컬 <카르멘> 배우 에녹 인터뷰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호세는 카르멘이란 여인을 만나 ‘혼돈과 두려움’, ‘사랑’을 느낀다면, 가르시아는 ‘내 법칙 안에서 나가려는 여자 카르멘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란 점이 더 크게 작용했을거라 생각했어요. 그 법칙 안에서 가장 비뚤어지게 나가는 사람이 ‘카르멘’인 것을 알고 가르시아만의 뒤틀린 사랑 방식이 나왔을 겁니다. 그런데 내면적 충돌을 겪는 호세에 비해 가르시아의 속은 더 편하지 않았을까요. 비뚤어진 법칙이라도 자기만의 법칙이 확실하게 있는 사람이니까요.”

지난 6일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카르멘>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고전소설을 바탕으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 혼, 작사가 잭 머피, 작가 노먼 알렌 등으로 이루어진 브로드웨이 드림팀에 의해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한 작품. '카르멘'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소유를 주장하는 ‘가르시아’ 역 배우 에녹(정용훈)을 만났다.

■ <배트맨>의 살인마 악당 ‘조커’의 얼굴과 눈빛을 가진 ‘가르시아’

-<카르멘> 대본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대본을 받기 전에 자료 조사 차 관련 글도 읽어보고, <카르멘>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그 다음에 대본을 받았는데 내용과 캐릭터 모두 완전 달랐어요. ‘이게 무슨 카르멘인가?’란 생각이 들어 (김동연)연출님께 여쭤봤는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카르멘>이란 설명을 하셨어요. 원작 <카르멘>의 모티브와 캐릭터적인 부분만 끄집어 와서 분해하고 완적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처음에 이 작품을 만들었던 체코 연출자의 의도대로 윤회란 의미 또한 들어가 있어요. 작품을 보면 칼을 던지는 판도 원이고 밑에 바닥 판도 원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전체적으로 영원히 반복되는 ‘카르멘’의 운명을 상징하는 원형의 무대를 보여줘요. 완전 다른 <카르멘>인 것 같아요.”

-원작을 기대하고 온 관객은 당황할 수도 있다
“원작 카르멘을 기대하고 왔다 당황할 수도 있고, 모르는 분은 이게 <카르멘>인가? 의견을 낼 수 있겠죠. ‘우리가 알고 있는<카르멘>은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다’며 배우들도 의견이 분분 했어요. 그런데 워낙에 <카르멘>이란 소재가 다양하게 변주되었잖아요. 오페라로 바뀌면서 ‘미카엘라’(뮤지컬 속 카타리나), ‘에스카미요’란 인물이 새로 생기고 ‘가르시아’란 캐릭터는 없어졌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봐주심 좋을 것 같아요.”

-뮤지컬 속 ‘가르시아’란 인물이 밀수 도적단 두목인 ‘단카이로’의 협잡꾼 리더의 이미지와 (오페라 속)‘에스카미오’의 남성미를 함께 가지고 있는 인물이란 생각도 들었다. ‘가르시아’란 인물을 어디서부터 그려나가기 시작했나?
“대본 안에서 인물의 의미, 혹은 잠깐 잠깐 나오는 인물의 대사 톤을 잘 분석했어요. 물론 연출님의 해석을 기본으로 뒀어요. 연출님이 생각한 ‘가르시아’는 염세주의적이고 세상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모습은 <배트맨>의 살인마 악당 ‘조커’의 얼굴, 눈빛과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했어요. 저 역시 거기서부터 캐릭터를 풀었어요. 세상을 다 비뚤어지게 보는 ‘가르시아’의 시각부터 출발했어요. 그래서 ‘가르시아’란 인물이 등장했을 때 (세상을)비웃는 듯한 이미지를 그려내려 했어요. 그게 관객들 눈에 안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전 그런 생각을 가지고 무대에 올랐어요.”

■ 자신만의 법칙으로 카르멘을 사랑하는 남자

-‘가르시아’는 ‘카르멘’을 사랑하는가?
“그럼요. 사랑을 하는 방식이 다른 거죠.”

-‘가르시아’의 마음이 왜 그렇게 뒤틀려진 사랑으로 표현이 됐을까?
“먼저 ‘가르시아란 인물은 <스칼렛 핌퍼넬> 쇼블랑 악역과 뭐가 다른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어요. ‘쇼블랑’은 신념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점점 변해가는 사람이라 소심한 방법으로 마그리뜨를 사랑하는 남자입니다. 누가 봐도 찌질한 부분이 있죠. 자신의 신념과 부딪치는 게 있으니까요.

반면 ‘가르시아’는 세상 자체를 비관적으로 보는 인물이죠. 오히려 그런 인물일수록 ‘가장 큰 나만의 법칙’을 가지고 있어요. ‘명심해. 여긴 바로 나의 세계야 ’란 대사도 그렇고요. 그래서 전 ‘가르시아’란 인물이 서커스단을 만들고 자신만의 법칙이 존재하길 바란다고 생각했어요. 또 자신만의 법칙 안에 들어오길 바라는 이가 바로 ‘카르멘’이란 여인이었고요. 그런데 그 법칙 안에서 가장 비뚤어지게 나가는 사람이 ‘카르멘’인 것을 알고 가르시아만의 사랑 방식이 나왔을 겁니다. 윽박지르기도 하고 폭력도 행사 했을 거고, 성적으로도 많이 학대 했을 거란 생각도 들고요. 그런 식으로 법칙을 만들어 카르멘을 가둬 뒀기 때문에 뒤틀려진 사랑으로 표출 된 거라 봤어요. 무대에선 직설적인 말투로 ‘넌 내게서 못 벗어나’라고 하지만 그게 결국 가르시아만의 사랑인거죠.”

-카르멘과 가르시아는 어떤 삶을 살아왔나?
“극 중에 그런 대사가 있어요. ‘부모에게 버림받고, 남자들 노리개 감이나 되고, 길거리에서 쳐 맞기나 하던 너를, 그 만신창이 걸레가 된 너를, 구해주고, 보살펴주고, 모두에게 환호 받는 여자로 만든 게 누구더라?’ 그 대사로 보면 카르멘이 성숙되기 전, 나이로 따지면 사춘기가 오기 전부터 데리고 다녔을 겁니다. 지금 제 나이보다 더 나이가 들었어야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가르시아가 카르멘을 만나 변하는 건 아닙니다. 카르멘을 키우면서 사랑이 생겼겠죠. 카르멘 덕에 먹고 살았다, 즉 불쌍한 아이를 앵벌이 시켰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게 애증이든 사랑이든 다 사랑인거죠. 최근 본 영화 중에 배우 여진구가 나오는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도 떠올랐어요. 가르시아가 카르멘을 키워가는 마음도 비슷했을 수 있었겠구나. 이 아이만은 깨끗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 한 편에 (살인마 인)나처럼 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을 거란 생각이요.”

-카르멘을 만난 대표적인 두 남자 돈 호세와 가르시아, 그 둘의 차이점은 뭘까?
“카르멘을 만나 세상이 달라진 남자는 호세죠. 완전 다른 인물이 됐으니까요. 호세 같은 인물은 워낙에 정직하고 자기 안에 윤리나 도덕성이 가득했었는데 카르멘을 만나 자기 안의 위선을 알게 되죠. 지금까지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내면적 갈등이 많은 인물로 볼 수 있어요. 또 자기가 사랑했던 인물(카타리나)과는 다른 여인인 카르멘 이 다가와 내면적 충돌이 많이 일어나게 되죠.

가르시아는 내면적인 충돌보다는 외적인 충돌이 있는 인물이죠. 크게 봤을 때 호세는 카르멘이란 여인에게 혼돈과 두려움을 느끼는 거라면, 가르시아는 ‘내 법칙 안에서 나가려는 여자 카르멘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란 점이 더 크게 작용했을 거라 생각해요. 가르시아란 인물은 자기 법칙에 방해되면 가차 없이 살인도 저지를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호세에 비해 속은 더 편했을 겁니다. 비뚤어진 법칙이라도 자기만의 법칙이 확실하게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렇다면 에녹 배우는 호세 형 남자인가? 가르시아 형 남자인가?
“어려운 질문이네요. 물론 배우가 자기 안에 없는 걸 표현할 순 없겠죠. 어떤 부분에선 가르시아적인 고집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가르시아처럼 세상을 살 순 없는 거잖아요. 보이지 않는 내적인 갈등 측면에선 호세 같은 면도 있죠. 전 제 안에서 많이 싸워요. 드러났을 땐 쭉 가구요. 신중하게 선택하고 선택한 다음엔 과감하게 나아가요. 가끔 충동적일 때도 있고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다보니 마치 고해성사처럼 털어놓게 되네요.(웃음)

신기한 건 악역을 자꾸 하다 보니 악역처럼 행동 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어머님이 ‘악역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시기도 했어요. 전 모르겠는데 평소 말투나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가 반응하는 게 다르나봐요. 예전보다 세졌나봐요.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게 부모님이니 틀린 말은 아니겠죠. 공연하다보면 대사가 입에 편해져서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그 어휘를 던져버리는 경우가 있었나봐요. ‘쥐새끼같은’, ‘별 것도 아닌 것들이’같은 대본의 말투는 평소에 쓰지 않는 어휘가 많은데요. 저도 모르게 일상에서 튀어나오는 어휘들을 보며 겁날 때가 있어요.”



■ 에녹만의 설득력 있는 악역에 대한 기대감

-에녹만의 설득력 있는 악역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캣츠>에서 럼 텀 터거 역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악역의 첫 시작인 <레베카>의 잭파벨, <스칼렛핌퍼넬> 의 쇼블랑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카르멘> 가르시아 악역까지 연달아 악역을 맡으며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설득력 있게 봐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우선 제가 캐릭터 접근을 다르게 했던 이유가 일부러 관객들에게 동정을 사려고 하는 게 아니었어요. 더블 캐스팅 된 배우(최민철 양준모 최수형)들과 다른 해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외모와 목소리를 지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다르게 봐줬다면 감사한 거죠. 악역을 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한 것이고요.

이런 말씀 드리는 게 그렇지만, ‘강한 이미지를 지닌 사람이 악역을 하지 않고 악역처럼 생기지 않은 사람이 악역을 했네?’ 란 점이 좋은 부분으로 보여 진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악역을 맡으면서 긴장감이 더 해져 제 나름의 한계에 부딪치면서 힘들었거든요. 일부러 두꺼운 목소리로 힘을 주니 컨디션도 안 좋아졌고요. 그런데 이번엔 더 센 역이 들어왔어요. 동료들과 연출부들 의견을 들으며 지금은 일부로 바꾸지 않고 제 목소리로 악역을 그려내고 있어요. 겉을 바꾸는 게 아닌 보이든 안 보이든 안을 바꾸려고 마음 먹었거든요. 그렇게 노력을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요. 또 제가 바꿀 수 없는 외모적인 인상은 의상 선생님과 분장 팀에서 많은 도움을 주세요. 처진 눈도 올려주고 강한 문신도 새겨주고, 없는 상처도 만들어주니 그게 굉장히 도움이 돼요.”

-연출부의 요청으로 초반과 달리 가발을 벗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에녹 가르시아는 애꾸눈 분장을 하고 최수형 가르시아는 서클렌즈를 낀다. 차별 분장을 한 이유는
“저도 처음에 서클렌즈를 끼었어요. 그런데 렌즈가 눈에 맞지 않았는지 계속 눈물이 나왔어요. 비강이 연결 되서 눈물이 코로 나올 지경이 된 거죠. 적응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노래하는 배우에게 영향을 주니 렌즈는 끼지 말자는 결정이 내려졌어요. 그래서 전 눈의 상처 분장만 하게 됐어요. 원래 가르시아의 분장 콘셉트는 렌즈도 끼고 애꾸 눈 분장 두 가지 다 하는 거였는데, 개인적인 렌즈 부작용 외에도 두 가지 다 하는 게 과해 보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와 저는 눈의 상처를 선택하게 됐어요.”

-가르시아의 서클렌즈가 앞자리 앉은 관객들 눈엔 보일 수 있겠지만 커다란 대극장에 앉은 대다수 관객들에겐 잘 보이지 않는 요소이기도 하다.
“사실 가르시아의 눈동자가 다치면서 생긴 거친 삶의 흔적들을 보여주기 위해 서클렌즈를 낀 겁니다. 그래서 애꾸 눈 분장도 같이 하게 된 거구요. 물론 관객 입장에서는 잘 안 보일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무대 위에서 함께 공연하는 배우들이 느끼는 기분은 달라요. (무서운 인상을 주는)렌즈를 끼고 하는 액션을 하면, 상대 배우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 디테일이 달라요. 두 배우의 매력,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이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는 있겠지만, 연출 의도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을 보여주도록 허용해주셔서 감사하고 있어요.”

-두 카르멘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달라
“두 배우가 너무 잘하세요. 차지연과 바다(최성희) 배우 모두 연습벌레인데다 센스가 뛰어나요. 외모적으로 비춰지는 게 다를 순 있겠지만 저에겐 둘 다 카르멘입니다. 그리고 카르멘이 단순히 섹시한 여자가 아니라 서커스단 안에서 어머니와 같은 존재죠. 집시는 가족 같이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가르시아는 나쁜 아버지지만 버팀목 같은 아버지 같은 존재이구요. 카르멘은 집시 동료들을 보듬어 안는 어머니인거죠. 두 배우 모두 각자만의 색깔로 섹시한 여인의 모습은 물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가르시아는 러브 씬 보다는 거친 이미지를 많이 보여주긴 하지만, 그래도 근접거리에서 여배우와 액팅을 하면 신경 쓰이는 게 있을 것 같다.
“스킨십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상대 배우 특히 이성일 때는 단순히 1미터 거리 안에 들어가는 씬이 있을 때는 신경이 쓰여요. 그래서 열심히 가글도 하고 잘 씻으려고 해요.(웃음) 무엇보다 신경 쓰는 점은 칼 던지는 장면과 멱살 잡는 장면에서 여자 배우가 다칠까봐 힘 조절을 잘 해야 한다는 점이요. (폭력 행사)그렇다고 안 했는데 한 것처럼 보일 순 없잖아요.

동료들과 많이 친해져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점이 좋아요. 끈끈할수록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잖아요. 이번에 재미있었던 점은 배우들과 끈끈해서 표현이 무궁무진하게 나올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배우들이 연습 중 계속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서 보여줬어요. 그러면 ‘이건 너무 과하고 더러워’. ‘그거 괜찮아’란 멘트를 연출부에서 해주세요. 다양한 표현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작업들이 좋았어요.“



■ “가르시아는 무대 위에 많이 나오진 않지만 키(key)를 가지고 있는 인물”

-칼 밖에 믿을 게 없는 남자 가르시아는 칼과 함께 등장한다. 칼 던지는 연습도 많이 했겠다.
“칼 던지는 유튜브 영상과 영화를 정말 많이 봤어요. 실제처럼 보여야 하니까요. 칼이 생각보다 날카로워요. 싸움이 격한데 더 조심해야죠. 또 초반엔 저 뿐만 아니라 주니가 역 임재현 배우도 많이 다쳤어요. 주니가 배우는 손에 상처가 많이 생겨 공연에선 장갑을 낄 정도였죠. 저도 멍이 안 든 경우가 없었어요. 어떤 날은 손목이 제대로 꺾여서 엄지손가락이 안 움직여졌어요. 그래서 위험한 장면은 빼서 조금씩 수정을 가했어요. 주니가와 가르시아의 총격 장면도 연습 공간과 무대 공간이 달라지면서 충돌이 생겨, 무술감독님이 와서 다시 손을 봐주기로 했어요. 격투 긴장감이 떨어지면 안 되잖아요.”

-극중 가르시아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가르시아 역을 제안 받고 배우로서 기분은?
“대본을 보고 노래를 듣고, ‘너무 등장 장면이 적은 거 아니야?’란 생각도 했어요. 사실 등장하는 씬이 세 번입니다. 무대에서 많이 보여드리고 싶은 배우로서 욕심만큼 다 보여줄 수 없는 역이죠. 물론 처음에 망설였던 부분도 있었어요.

또 다른 한 가지는 제가 원래 가지고 있는 캐릭터와 목소리로 ‘과연 가르시아를 표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다른 작품보다 작은 역일 수 있지만 배우로서 집중적으로 캐릭터를 찾으려고 했어요. 가르시아는 무대 위에 많이 나오진 않지만 키(key)를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가르시아란 인물 때문에 전체적인 비극이 일어나는 거죠. 그게 다 표현이 안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모든 배우들이 다 그렇겠지만 많은 시간을 투자해 노력하고 몰입했어요. 컴퍼니 측에서 배우들의 의견도 많이 반영해줘서 감사하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류)정한이 형만 봐도 원작 호세가 너무 매력이 없는 인물인데 배우의 노력으로 인물이 더 풍부하게 창조됐어요. 정한이 형이 소통하는 걸 좋아하세요. ‘이런 거 아닐까’ 하며 계속 배우들에게 물어봐요. 뿐만 아니라 가르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만들어 간 부분들도 있어요. 처음에 가르시아란 인물이 조악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정한이 형과의 대화를 통해 인물에 대한 정당한 이유와 타당성을 찾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스스로 카리스마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나. 보이는 외모도 무시할 수 없지만, 에녹 가르시아의 등장만으로 관객이 집중한다면 카리스마 있는 배우 아닌가. 그렇다면 배우의 카리스마는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는가?
“무대 위 배우라면 당연히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죠. 아직 전 더 내공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눈빛만 봐도 관객을 집중시킬 수 있는 게 배우의 카리스마겠죠. 많은 선배들을 존경하지만 서범석 형님 눈을 보면 보자마다 고정이 돼요. 특히 범석이 형은 우락부락 한 외모도 아닌데, 배우에게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사람을 집중시켜요. 1미터 안에서 범석이 형 눈을 보면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겁니다. 편안한 가운데 사람을 집중시키는 힘이죠. 뮤지컬 <모차르트!> 때 함께 작업하며 범석이 형에게 많이 배웠어요.

뮤지컬 배우로서 저의 첫 번째 롤 모델이었던 류정한 선배의 카리스마는 대단하죠. 뮤지컬 <스위니토드>를 보면서 ‘저 분과 공연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생각했던 뮤지컬 꿈나무였던 제가 <레베카>에 이어 <카르멘>을 함께 하게 됐어요. 정한이 형은 집중하시는 게 남달라요. ‘왜 류정한, 류정한!’이라고 하는 지 알 정도로 무섭게 집중하세요. 연습 아닌 시간엔 ‘나 힘들어’ 하다가도 연습시간엔 초집중해서 하는 게 달라요. 정한이 형 무대 위 모습은 관객들이 더 잘 알거구요. 옆에서 많이 보고 배우고 있어요.“



■ 어떤 역에 갖다 놔도 빛을 발하는 ‘이 배우’ 에녹

-7년차 배우이다. 35세를 코 앞에 둔 지금, 본인의 뮤지컬 배우 인생을 돌아보자면?
“처음엔 마냥 좋았어요. 배고픈 힘듦도 있었지만 뭔가 마냥 좋았는데, 이젠 점점 책임감이 커지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20대 후반 늦게 배우로 데뷔해 고민이 많았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배우가 조금 이름 알려지고 조금 좋은 역할 맡게 되면. 그것 이상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캐릭터 부분에서도 겹치는 게 있는 거 아닌가. 사람이 똑같은 데 매번 다른 역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 같은거요.

다시 생각해보면, 그게 책임감인 것 같아요. 처음엔 ‘얼마만큼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을까’란 배우가 느끼는 책임감이 컸다면, 나이가 들수록 단순히 열심히 나 혼자만 하면 되는 게 아닌 ‘내가 캐릭터를 소화하는 게 컴퍼니 전체에 얼마만큼 기여도를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생각으로 커지게 되요. 정한이 형이 그런 말씀을 많이 해줘요. ‘점점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고. 저도 책임감에 대한 생각이 커지고 있는데, 오랜 시간 배우로 살아 온 정한이 형이 느끼는 책임감은 어마 어마 할 것 같아요. ’주인공이니까 무대에서 잘 하면 돼‘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자기 역이 아닌 상대 배우는 물론 후배 배우들을 더 많이 이끌어주시고, 컴퍼니를 끌고 가는 힘 있는 배우시죠. 저도 그렇게 책임감 있는 배우로 성장하고 싶어요.“

-2007년 뮤지컬 <알타보이즈>로 데뷔했고 당시 함께 출연 했던 배우들인 주원, 한지상, 이창용 등이 스타가 됐다. 그들을 동창생으로 놓고 본다면 현재 에녹은 어떤 배우가 됐나?
“그때 함께 했던 배우들이 스타가 돼서 저 역시 기분 좋죠. 다 잘 됐으면 하구요. 전 아직 멀었어요. 이제 조금 늦깎이 배우로 관심을 써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어요. (흔히 이름이 알려진 배우들에 대해 ‘스타’란 수식어를 가져다 붙이는데) 스타라는 말을 떼고 나면 다 배우 아닌가요. 전 스타로 반짝이고 나서 없어지고 싶진 않아요. 이런 예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흔히 ‘믿고 보는 저 배우가 출연하니 뮤지컬을 봐야겠다’란 생각을 하잖아요. 그 뒤 (전체 캐스팅을 보니) 이 배우도 출연하네? 그러면 이왕이면 다홍치마니 이 배우 캐스팅으로 봐야겠다‘ 라고 결정할 때, 전 ‘이 배우’를 선택하겠어요.

주인공만 계속하는 배우가 아닌 어떤 역에 갖다 놔도 빛을 발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 송강호란 거대한 산맥이 존재할 수 있었던 건 처음부터 주인공 얼굴을 가지고 섰던 게 아니라, 단역 혹은 ‘씬 스틸러’로 내공을 쌓아 온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잖아요. 조연도 했다 주연도 했다. 작은 역도 했다 못난이 아빠 역도 했다가...그렇게 폭 넓게 오고 갈 수 있는 배우의 컬러와 파워 그게 너무 존경스러워요. 전 오래 갈 배우가 되고 싶어요.”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오넬컴퍼니, 뮤지컬해븐, 프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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