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결여’ 김수현 작가의 꽤나 의미 있는 진보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SBS 드라마 <세 번 결혼한 여자>는 김수현 작가가 극본을 쓰고, 이지아, 엄지원이 주연을 맡은 주말드라마이다. <세결여>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동생과 비혼인 언니를 대비시키며, 여성들의 달라진 결혼관을 보여준다. 혹자는 <세결여>가 시월드나 불륜 등 진부한 소재를 다룬다고 말하지만, <세결여>는 막장드라마와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막장드라마들은 시월드나 불륜에 대한 극단적인 묘사를 통해, 결혼생활에 관한 시청자들의 불만을 대리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흔히 “욕하면서 본다”는 말은 드라마 속의 푸닥거리에 시청자들이 공분하면서, 현실의 결혼생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그러나 <세결여>의 목표는 해소가 아닌 성찰이다. <세결여>는 주인공의 실패와 성장을 통하여 가부장적 결혼관계의 본질을 묘파하며, 현실의 여성들이 품고 있는 결혼에 대한 헛된 욕망을 깨우치게 하는 교훈극의 가치를 지닌다.

◆ 윤회처럼 반복되는 결혼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결혼은 마치 윤회처럼 반복된다. 많은 로맨스 드라마들이 밀고 당기는 연애와 양가 갈등 등을 거쳐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거나, 수많은 막장드라마들이 시월드나 불륜 등을 통해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세결여>는 이 모든 과정이 일어난 ‘이후’를 그린다. <세결여>는 결혼이나 이혼이 문제의 해결이 되지 못하며, 서사의 종착점이기는커녕 이제부터 더 복잡한 문제들이 펼쳐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결여>는 결혼에 관한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결여>는 결혼을 반복하는 동생 은수(이지아)와 비혼인 언니 현수(엄지원)을 통하여 행복한 결혼에 이르지 못하는 양극단의 ‘사례1’과 ‘사례2’를 보여준다. ‘사례1’은 다시 첫 번째 결혼인 ‘사례1-1’과 두 번째 결혼인 ‘사례1-2’로 나뉜다. ‘사례1-1’은 사랑해서 결혼하였으나, 포악한 홀시어머니와 얄미운 시누이 세트로 이루어진 시월드로 인해 결혼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경우이다. 남편은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지배적인 어머니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마마보이였다. 은수는 시어머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결혼 4년 만에 딸 하나만 데리고 도망치듯 협의 이혼한다. 딸과 함께 친정에서 살던 은수는 2년 만에 다시 재벌2세의 이혼남을 만나 재혼한다.



평범한 집안 출신의 쇼호스트인 은수가 두 번이나 부자와 결혼하는 것은 매우 희박한 행운이다. <세결여>가 이 희박한 행운을 일종의 사고실험처럼 반복하는 이유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부추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환상을 깨주기 위해서이다. 천박한 졸부에 홀시어머니로 전통적인 의미에서 최악이었던 ‘사례1-1’의 시월드와는 달리, ‘사례1-2’의 시월드는 품위가 있다. 상류사회에 속한 산업자본가로 안정된 가부장제 가정이긴 하지만, 그 시월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은수는 종일 초긴장상태로 감정노동과 잡무에 시달리며, 무엇보다 사랑하는 딸과 헤어져야 한다. 드라마는 두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하여, 시월드가 그저 개인의 인품 문제가 아니며, 매우 구조적인 권력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즉 경제력에 의해 부모에게 종속되어 있는 남자와의 결혼은 필연적으로 시월드의 권력을 감수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결혼생활은 자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매우 중요한 통찰인데, 여성이 결혼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꿈꾸고, 그 경제력의 원천이 시부모인 결혼모델에서 시월드의 패권은 필연적이며, 자유롭고 평등한 결혼생활은 환상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즉 신데렐라 ‘이후’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아니라, ‘며느리로서의 고단한 복무’가 이어져 있음을 분명히 알고, 이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잘 따져보아야 한다고 드라마는 알려준다.

김수현 작가는 <내사랑 누굴까?>를 썼던 2002년에만 해도 가부장제에 대하여 일부 긍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명세빈이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데려와 키울 수 있을 만큼 시월드는 관대하였고, 이승연은 박사공부를 그만두고 화목한 중산층 대가족의 며느리란 직책을 택할 만큼 결혼을 가치 있는 일로 여겼다. 그러나 <세결여>에서 시월드는 고상하긴 해도 관대하진 않으며, 상류층가정의 며느리노릇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포기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 드라마는 회의적인 시선을 드리운다.



◆ 욕망이 바뀌지 않는 한 반복되는 문제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첫 번째 결혼에서 실패한 은수가 재혼에서도 실패를 반복하는 것을 보여준다. 시월드가 인품이 아니라, 권력의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임을 알았더라면 은수는 재벌 2세와의 재혼을 감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꾸만 “재혼하지 말았어야 했나?”라고 잘못된 질문을 던지지만, 문제는 재혼자체가 아니라, ‘어떤 재혼 인가’이며, 그에 앞서 ‘재혼에 임하는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였다. 그는 실패를 통해 처절하게 깨달은 결혼의 본질은 무엇인지, 재혼을 통해 얻고 싶은 최소한의 행복은 무엇인지를 바닥에서부터 자문해보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욕망을 통렬하게 반성하는데 실패하였고, 자신의 욕망은 그대로 둔 채 ‘사례1-1’에서 남자와 시월드만 교체된 재혼을 감행하였다. 하지만 욕망이 바뀌지 않은 이상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주된다. 그뿐이 아니다. 첫 번째 결혼에서 파생된 아이의 문제와 두 번째 결혼에서 새롭게 대두된 불륜의 문제까지 겹쳐 점점 더 복잡해진다.

마치 윤회를 거듭해도 깨달음이 없다면 업장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악업이 계속 쌓여가듯이, 이혼과 재혼이 쌓여갈수록 앞선 인연으로 인해 풀어야 할 문제들이 점점 더 복잡하게 누적된다. (극중 계속 불교의 경구를 읊는 강부자는 이를테면 작가를 대신해 주제를 말하는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셈이다.) 남편 역시 두 번째 결혼인 만큼, 재혼에 이르기까지 전사가 복잡하며 경제력의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진 만큼 불평등한 권력관계는 더욱 심화된다. 재벌2세인 남편이 재혼 전부터 사귀었던 여배우와 불륜관계를 맺었고, 관계가 발각된 이후에도 뻔뻔하게 거짓말로 일관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첫 번째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은수뿐이 아니다. 은수의 전남편 태원(송창의)은 어머니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채 은수와 결혼하였고, 그로 인해 이혼을 겪었다. 이혼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전처에 대한 애정을 접지 못하고, 어머니로부터도 독립하지 못하였다. 그는 어머니, 전처, 그리고 새로 만난 채린의 욕망과 갈등에 떠밀려 또다시 내키지 않은 재혼을 한다. 그의 두 번째 결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채린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댁과 친정의 돈 다툼으로 이혼을 하게 된 채린은 또다시 당사자 간의 공고한 신뢰와 사랑 없이 시어머니의 의지에 기대어 결혼한다. 그러나 당사자의 의지 없이 우격다짐으로 감행된 결혼은 결국 주변의 역관계가 틀어지면서 깨지게 되어 있다.

드라마는 은수의 세 번째 결혼이 전남편과의 재결합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데, 은수가 태원과 재결합을 하든 혹은 다른 이와 결혼을 하든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태원은 어떤 특단의 조치를 취해서라도 어머니와 절연하여 독립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둘째, 은수 역시 잘난 남자도 필요 없고 시부모가 주는 단 한 푼의 돈도 필요 없으며 오직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남자하고만 결혼할 수 있다는 원칙으로 삼혼에 도전한다면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욕망을 직면하지 못하고 유보하는 비혼 여성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자신의 욕망을 바로보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사람들의 한켠에, 아예 자신의 욕망을 유보한 채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현수의 근원적인 실패를 보여준다. 드라마는 현대사회에 급증하고 있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비혼 여성의 삶을 매우 현실감 있게 그린다. 드라마는 여성의 삶에서 결혼이 필수적이지 않다는 상당히 진보적인 시선을 견지하면서, 문제는 결혼이 아니라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드라마는 비혼 여성이라 할지라도 무성애자인양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요, 동성애자가 아닌 이상 남자와의 연애는 필요하지 않겠냐는 지극히 절실한 질문을 던진다. 현수는 15년간 친구로 지내는 광모(조한선)와 기이한 관계에 놓여있는데, 이는 외적인 금기나 억압 때문이 아니라, 짝사랑을 하는 자기 욕망에 대한 부정과 검열 때문이다. 현수는 동생 은수나 광모, 친구 주하(서영희) 등에 대해서는 매우 냉철한 분석을 통하여 날카로운 비판과 조언을 해대는 통찰을 보여주지만,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현수뿐 아니라, 자신의 일이나 주변인간관계에서 매우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많은 여성들이 정작 자신의 욕망을 바로 보지 못하고 계속 유보함으로써 연애관계에서 매우 소극적이고 미숙한 양상을 보이며, 심지어 이성애 관계에서 기존의 여성적 역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연애를 시작조차 못하는 양상을 띠기도 한다. <세결여>는 현수를 통해 현대여성이 처한 모순적 상태를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세결여>는 이혼/재혼/비혼 등이 아주 흔해진 시대에, 마치 결혼이나 이혼을 서사의 종착지처럼 다루는 여타의 드라마들에 비해, 매우 진보적인 드라마이다. <세결여>는 지금껏 별로 다루어지지 못했던 재혼가정의 현실이나 비혼 여성의 삶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욕망에 대한 근원적인 깨달음을 촉구한다. 즉 현대사회에서 이혼과 재혼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주체의 욕망이 바뀌지 않는 한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더라도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으며, 비혼 역시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사랑에 대한 자기 내면의 욕망을 바로보고 이를 실현할 수 없으면, 겉으론 별문제 없는 화려한 싱글이라 할지라도 그 공허함을 메울 수는 없다는 교훈을 두 자매의 예를 통해 명징하게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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