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은 정말 우리에게 무엇인가?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영화일기] 다시 한번, 우리는 우리의 김기덕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가를 놓고 치열한 논쟁에 휩싸이게 됐다. 김기덕은 지난 11일 개막된 제64회 칸 국제영화제에 자신의 16번째 신작 <아리랑>을 내놓으면서 국내의 비평가들, 그리고 대중관객들을 향해 직설적인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감행했다. ‘당신들에게 나는 무엇이냐, 어떤 존재냐?!’

13일 오후 5시(현지시각) 칸영화제 공식 상영관 가운데 하나인 드뷔시 극장에는 전 세계에서 모인 관객들로 인사인해를 이뤘다. 1천석 가까운 객석은 일찌감치 모인 관객들로 꽉 찼으며 극장 바깥에서는 기를 쓰고 김기덕 감독의 신작을 보려는 유럽 관객들은 행사 요원들과 시비를 벌였다. 김기덕은 이들에게 이미 아시아의 거장이자 영화의 신이다. 상영시간에 임박해 극장에 들어가는 김기덕 감독에게 관객들은 숨이 막혀 차마 환호성을 지르지도 못하는 대상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김기덕 감독이 하얗게 센 머리를 질끈 묶고, 진나라 진용 시대의 복장인 듯한 기이한 외모를 선보인 것도 이들에겐 경외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신작 <아리랑>은 칸 영화제 상영 후 여러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온 얘기처럼 불편하고, 어두우며, 때론 섬뜩하고 우울한 얘기로 가득 차 있다. 이번 영화는 일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이며 그가 지난 시절 영화를 만들어 오면서 실망하고 좌절한, 그리고 (스스로가 토로하듯) 배신당한 얘기로 점철돼 있다. 그가 치를 떨며 복수하고자 실명을 거론한 사람들은 현재 영화계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모두들 그의 후광으로 유명해지고 성공한(것이라고 그가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김기덕은 그 사람들을 넘어서서 한국 영화계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고 비판하며, 저주한다. <아리랑>의 내용이 칸영화제에 소개되기 전까지 거의 극비에 붙여지다시피 공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엄청난 파장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아리랑>을 본 관객들이 한쪽은 비교적 극찬에 가까운 반응으로, 한쪽은 극도로 불쾌하다는 비판적인 반응으로 양분되는 것, 그리고 그 경계가 해외인사와 국내 관계자들로 나뉘어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일이었다. 해외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일반적 모듈로 받아들인다. 이유와 원인이 무엇이든 결국 영화만들기의 어려움, 영화작가의 실존적 괴로움을 토로한, 보편적 틀거리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국내 영화인들과 평자들은 극도로 불안정해진 김기덕 개인의 정서와 국내 영화계에 대한 불만이 합쳐져 표출된 작품으로 폄하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영화를 본 어떤 사람들은 모든 건 다 ‘김기덕의 치기’ 때문이라며 비아냥거리며 비판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 더 옳은 가는 결국 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건 한국 영화계의 현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김기덕에 대한 호불호 등등 복합적이고 정치적인 태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자체는 성과와 의미가 있다. 김기덕은 이번 영화로 자신이 한국을 뛰어 넘는 세계적 거장의 대열에 서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물론 본인은 그 점에 대해 다분히 초월적 위치에 서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쨌든 그런 점에서 한국 영화계는 다시 한번 김기덕에게 큰 빚을 지게 됐다. 김기덕은 자신이 싫든 좋든, 혹은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 브랜드가 됐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고한 자본의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국내 영화계에 다시 한번, 영화란 무엇인지, 우리는 과연 영화를 통해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기덕은 작품을 통해 늘 논란을 일으켜 왔다. 지난 시절의 논란과 논쟁은 이번 작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문제는 그런 파장만큼 김기덕의 영화가 대중적 공감을 얻는 데는 일정한 실패를 겪어 왔다는 것이다. 우리 중의 일부는 그것을 늘, 김기덕 탓이라고 치부해 왔다. 이번 영화 <아리랑>은 이제는 그게 김기덕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 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김기덕이 조금 편해졌으면 좋겠다. 사람들도 그의 영화를 편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해외 관객과 평자가 그의 영화를 가지고 아무리 이러쿵 저러쿵 논한다 한들, 우리 서로는, 곧 김기덕과 국내 관객은 이제 화해할 때가 됐다.


칸=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사진=카날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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