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렉스 상영관 전문가에게 부탁합니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자비에 돌란의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를 뒤늦게 보고 왔다. 이 영화는 상영하는 극장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실험하는 작품이다. 화면비율이 옛날 텔레비전처럼 4:3인 것이다!

고맙게도 내가 영화를 보았던 KU 시네마트랩은 이 테스트를 완벽하게 통과했다. 1.85:1 상영관으로 알고 있는데, 놀랍게도 와이드스크린 상영 때 위를 가리는 가림막 뿐만이 아니라 1.66:1과 4:3 화면 비율을 위한 양쪽 커튼을 모두 갖고 있었다. 이 정도면 이 영화관이 와일러의 <벤허>나 강스의 <나폴레옹> 등 괴물 같은 몇몇 와이드스크린 영화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영화를 커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많은 영화관들이 이 테스트를 그렇게 성공적으로 통과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다른 때엔 좋은 와이드스크린 상영관인 아트하우스 모모는 이 영화를 틀 때 커튼을 1.85:1까지만 쳤던 모양이다. 그랬으니 이 영화관에서 이 작품을 감상한 관객들은 커튼, 스크린의 빈 회색공간, 영화 화면으로 이어진 세 겹의 창문을 통해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시 이런 윈도 박스가 영화의 관음성을 증폭시켰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감상에 별 도움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관객들과 적극적인 대화를 하는 영화이니 완벽한 어둠 속에서 화면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아트하우스 모모의 상영조건에 대해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와이드스크린 상영관이야 말로 4:3 화면 비율을 온전하게 상영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냥 양쪽에서 적절하게 커튼을 조절해주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1:85대 1 화면비율의 상영관들은 이런 영화를 온전하게 상영할 능력이 없다. 처음부터 이런 비율 영화의 상영을 염두에 둔 적이 없었던 것이다.

4:3 화면 비율 영화의 상영조건에 대해 이렇게 꼼꼼하게 따지게 되는 건, 이 화면비율이 최근에 다시 부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내가 본 영화들만 해도 소쿠로프의 <파우스트>, 장건재의 <잠 못 드는 밤>, 김지현의 <요세미티와 나>가 여기에 해당된다. 물론 최근에 복원된 고전영화들을 포함하면 수는 더 늘어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영화들이 화면손실 없이 그럭저럭 상영될 수 있는 것은 디지털 상영의 도움이 크다. 필름 상영으로 같은 화면 비율의 영화를 튼다면 어쩔 수 없이 위아래가 잘려나가는 상영관에서도 디지털 상영으로는 이런 영화들의 상영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양쪽에 빈 스크린 공간이 남기 때문에 상영관에서 보완해주어야 한다. 가림천과 커튼으로 화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검은색으로 가려주는 것을 마스킹이라 하며 이를 방치하는 게으름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가에 대해서는 내가 지난 1년 내내 떠들고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려 하는 것은 마스킹이 아니라 4:3이라는 화면 비율의 매력과 기능, 가능성이다.

지난 몇 년 동안 4:3의 화면 비율은 일종의 감옥과 족쇄처럼 여겨져 왔다. 대다수의 영화관에서는 온전한 모양으로 상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코아아트홀에서 채플린의 <황금광시대>를 상영했을 때 채플린의 머리 대부분이 잘려나갔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다른' 영화를 보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던 사람들에게 이 화면비율은 원래 영화의 영상 정보 좌우를 잘라먹는 괴물이었다. 심지어 양쪽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보이는 건 양쪽의 코끝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으니 얼마나 갑갑했었는지!

하지만 이 화면 비율은 50년대 이전에 나온 대부분의 영화들과 20세기에 나온 거의 모든 텔레비전 드라마들이 가능성을 탐구해왔던 영역이다. 지금은 와이드스크린 텔레비전의 보급과 함께 거의 사장되는 분위기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비율이 아니다. 더 크고 넓은 화면의 초라한 대안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목소리인 것이다.

<로렌스 애니웨이>와 역시 주인공 옆에 바싹 붙어 험악한 통과제의를 따라가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분명해진다. 4:3 화면 속에서 로랑스(로렌스)는 길고 좌우대칭인 통로를 느릿느릿하게 통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2.35:1의 긴 화면 속에서 이마가 잘려나가는 클로즈업으로 배우를 따라가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캐릭터의 가장 은밀한 영역까지 들어와 자잘한 일거수일투족까지 감시하는 스토커 같다. 얼핏 보면 이 두 영화에서 더 넓은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은 와이드스크린 영화인 <가장 따뜻한 색, 블루> 같겠지만, 실제로 주인공에게 더 많은 공간을 주는 영화는 <로렌스 애니웨이>다.

다시 말해 4:3 영화는 '작은 화면'이 아니다. 그냥 다른 비율의 영화인 것이다. (수많은 영화들이 주인공을 '감금'하기 위해 2.35:1 화면을 사용한다. 제대로 마스킹되지 않아 위아래가 뻥뚫린 상영관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본 관객들은 이모개 촬영감독이 전도연을 좁고 긴 프레임 안에 감금하기 위해 들인 노력의 절반도 감지하기 어렵다.)



와이드스크린 화면만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있듯이, 4:3 화면 비율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진 켈리와 프레드 아스테어는 4:3 비율의 화면을 위해 춤을 췄고 와이드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긴 그들의 후기 영화는 전보다 헐거워 보인다. 하워드 혹스 영화의 무심한 듯 꽉 짜여진 미디엄 쇼트는 다른 화면 비율로는 쉽게 번역되지 않는다.

4:3의 화면비율을 버린다는 것은 이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을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태생적으로 4:3이면서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영화관에 맞는 다른 비율을 택한 영화들이 있다. 큐브릭의 <샤이닝>이 그렇고, 봉준호의 <설국열차>도 그럴 것이다.

그들과는 달리 자비에 돌란은 용감하게 4:3 화면비율을 택했고 그 결과는 올바른 상영관에서 본다면 압도적이고 아름답다. 그리고 아마 이런 선택을 하는 영화들은 많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늘어날 것이다. 그건 디지털 시대가 우리에게 다시 흑백 화면을 돌려준 것과 비슷한 변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의 극장들은 그런 영화들을 온전하게 보여줄 준비가 되었는가? 예를 들어 웨스 앤더슨의 신작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4:3부터 2.35:1까지 다양한 화면 비율을 오가는 영화가 될 텐데, 이런 영화가 마스킹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한국 멀티플렉스 1.85:1관에서 상영되면 어떻게 보일까. 영화 내내 조각난 화면이 허공에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런 걸 신경 쓰지 않는 관객들도 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영화를 틀어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이 이 문제점을 그냥 넘기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의 기준은 결코 일반 소비자의 기준과 같아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들을 전문가라고 불러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설국열차>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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