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과 과거에 대한 존중, 윤종신의 매력탐구

[엔터미디어=노준영의 오드아이] 요즘은 무언가를 많이 동원하는 게 대세인 것 같다. 엄청난 기술력에 화려한 볼거리들을 가져와야, 혹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지점이 있어야 한 번 이라도 더 쳐다본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력을 이용해 보기 좋은 그림을 만들어 보려 애쓰고, 선정성 논란을 일으키는 콘텐츠로 가장 즉각적인 시선을 빼앗곤 한다. 2014년에도 여전히 이런 상황들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무언가를 많이 동원하지도, 말초신경을 딱히 자극하는 포인트도 없는 아티스트가 앨범 예약 판매를 매진시켰다는 소식이다. 주인공은 바로 윤종신이다. 지난해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결산하는 ‘행보 2013’ 앨범이 큰 인기를 모으며 아티스트로서도 인기가 높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는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패밀리’를 구축한 남자다. 패밀리 비즈니스를 펼치는 대부분의 기획사들은 ‘성장형’ 패밀리를 만들었다. 신인 때부터 지켜본 유망주들을 대성시켜 패밀리의 일원으로 만들고, 나아가 패밀리의 중심에 세우는 성장형 구조를 구축했다. 일반적으로는 이게 맞다. 기획 시스템 안에서 아티스트를 키워내는 가요계의 일반적인 느낌에 의하면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집합형’ 패밀리를 쌓아올렸다. 자신의 사람들, 그리고 함께 했던 사람들과 탄탄한 네트워크를 형성한 뒤 ‘미스틱89’라는 목표를 놓고 의기투합했다. 지난해 독보적인 영입 행보를 보였던 것도 바로 이 지점과 닿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주변을 돌아보는 눈과 아티스트적인 고집이 탁월하다.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기 보단 자신의 연결 고리 안에서 만들어 갈 수 있는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 구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기 위해 약간의 고집스런 마인드를 들이댄다. 레이블을 통해서도 ‘미스틱89 스러운’이 아닌 ‘그 앨범의 아티스트 다운’ 음악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건 이런 멘탈 덕분이다. 자신이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는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에 쏟는 자신의 정체성만큼 손님격의 타 아티스트, 그리고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의 느낌도 중시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행보 2013’이 더욱 풍성해 질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각자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런 음악 속에서 굳이 자극적인 포인트가 많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윤종신과 다른 아티스트들이 내는 시너지 효과만으로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는데 뭣 하러 아까운 이미지 소비를 들이 대려 하겠는가?

게다가 그는 옛 것을 그냥 과거로 두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존중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남자다. ‘행보 2013’의 주제는 리페어였다. 그동안 발표했던 곡들을 다시 돌아보고, 그 속에서 다시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을 음악으로 펼쳤다. 현재를 따라가기도 바쁜 게 요즘 기획자들의 속사정이다. 히트하려는 코드들, 그리고 현재를 기준으로 가장 잘 나간다는 것들을 섞어서 버무리기도 바쁜 게 요즘의 추세다. 그런데 오히려 그는 시계추를 거꾸로 돌려버렸다. 자신이 했던 이야기들의 강점과 단점을 돌아보고 시너지 효과를 통해 재해석하는 여유를 내비친 것이다.

최근 ‘행보 2013’과 함께 발매된 ‘Just Piano’는 이런 그의 경향을 대변한다. 자신과 가까운 피아니스트인 김광민과 조윤성이 참여했다. ‘주변을 돌아보는 눈’을 여전히 발휘한 것이다. 더욱이 이 앨범에 실려 있는 ‘배웅’, ‘고백을 앞두고’ 등은 월간 윤종신에서 보여준 곡들보다 더 과거의 유산들이다. ‘옛 것을 과거로 두지 않는다’는 리페어의 성격을 그대로 구현했다는 점도 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훨씬 더 따뜻해 졌다. 트렌드 보단 음악이 먼저 앞서니 사람이 하는 음악이라는 느낌이 훨씬 더 강해졌다. 기계음과 아이돌 판도 속에서 길을 잃었던 사람 냄새 나는 음악에 대한 요구가 그의 손끝에서 한창 피어오른 느낌이다.



물론 좋은 요소들을 막대하게 끌어들이고 현재를 지향한다는 사실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좋은 요소들을 끌어들일 생각에, 혹은 현재의 트렌드만 읽으려는 생각에 놓치는 게 있진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윤종신의 사례를 보면 이런 움직임이 무조건적인 답이 되는 건 아닌 듯 하다. 관계를 형성하고, 이 관계 속에서 차분하게 콘텐츠를 뒤져보는 것도 지금과 같은 음원 홍수 시대 속에서는 색다른 방법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지금 그가 말하고 있다. 성급한 요소들을 가져다가 눈에 보기 좋도록 포장만 하는 음악이 얼마나 많았는가? 아쉬움 가득했던 ‘급함’의 이야기들 속에서 윤종신이 돋보이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2014년의 시작부터 벌어지고 있는 음원 전쟁은 가요계의 소리 없는 무한 경쟁 체제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눈길 말고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럴 때 역발상이 필요하다는 걸 왜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윤종신은 올해도 이 역발상을 통해 해법을 찾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더욱 돋보일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노준영 nohy@naver.com

[사진=CJ E&M, 미스틱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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