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제작자 “영화 주인공 원래 이름은 노우현”
“<변호인> 통해 인간 노무현을 그리고 싶었다”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생생인터뷰] 영화 <변호인>이 곧 천만 고지다. 개봉 5주째에 들어서면서 흥행세가 약간 주춤하고는 있지만 천만 관객은 떼놓은 당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 사실, 천만 관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왜 이 영화가 나왔고, 또 왜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모으고 있으며,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이 영화적으로 혹은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우파적 시각을 가진 인사들 중 어떤 이들은 왜 한국에는 좌파 인물을 그린 영화만 있고 우파의 영웅을 그리는 작품은 없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충무로는 ‘빨갱이의 소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화인들을 군부독재 시절 마냥 삼청 교육대로 보내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는 섬뜩한 얘기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질문은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왜 이 영화가 만들어졌을까. 제작자 최재원 위더스 필름 대표를 만난 것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명료하게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일단 당신은 누구인가? 요즘 일반 대중들은 프로듀서에 관심이 없다. 당신의 영화 경력을 말해 달라.
"원래 금융 쪽에서 일을 시작했다. 영화 일은 무한투자조합을 만들면서, 역시 투자 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투자전문회사인 아이 픽쳐스를 만들어 독립했다가 다시 바른손 엔터테인먼트로 들어가 투자와 제작을 담당했다. 이때 만든 것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마더> <헨젤과 그레텔>이었다. 바른손을 나와서는 지금 한창 잘 나가고 있는 배급사 NEW의 초기 CEO를 했다. 위더스 필름으로 다시 독립해서는 창립작 격으로 청년필름과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공동 제작했다. 이재용 감독의 작은 영화 <뒷담화 : 감독이 미쳤어요>도 내가 투자한 작품이었다. 이번 <변호인>은 위더스 필름이 만든, 공식적으로 두 번째 상업영화다."

-원래 기획한 대로 제작이 진행된 건가? 노무현 대통령 얘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했었던 건가?
“이걸 노무현 영화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하기에는 좀…그건 아닌 것 같다. 물론 그 옛날 대우자동차 노조 시위 현장에서 최루탄 한 가운데에서도 요지부동 물러서지 않는 한 남자의 모습이 늘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에 대한 당초 나의 관심은 그 시위대 앞의 남자였지 통칭 얘기하는 노무현 대통령 전체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조금, 아니 큰 뉘앙스의 차이다.”

-이 영화는 당신의 것인가, 아니면 양우석 감독의 것인가.
“양우석 감독의 것이지만 우리 둘의 것이기도 하다. 나도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이니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둘이서 같이 개발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원래 양우석 감독과는 다른 영화를 한편 준비 중이었다. 양우석은 당시 일종의 웹툰 스토리 작가였는데 나는 이미 그 이전부터 그를 잘 알고 있었다. 평소 시나리오 구축 능력이 대단한 친구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불릴 만큼 똑똑했다.

어쨌든 그와 준비하던 영화는 <스틸 레인>이란 작품이었다. <스틸 레인>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후에 벌어지는, 한반도 내 일촉즉발의 핵전쟁의 위기 상황을 그리는 내용이었다. 액션이 많고 서스펜스가 강한 데다 규모도 큰 작품이었다.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덜컥 죽고 말았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기 직전이었다. 영화는 물 건너갔다. 나는 절망했었다.
바로 그때 양우석 감독이 마치 그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54페이지 짜리 시놉시스를 내게 보냈다. 그는 <스틸 레인> 등을 만들어 성공하고 나서 나중에 세 번째 작품 쯤으로 하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 영화였다. 그런데 당시 시놉시스를 보니 노무현에 대한 느낌이 너무 강했다. 주인공 이름도 지금의 송우석이 아니고 노우현이었다.(웃음) 양우석을 불러서 말했다. 정치인 노무현을 배제하자. 그러면 해 볼 만하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이 됐다.”



-송강호 캐스팅은 처음부터 염두에 둔 것인가?
“아니다.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단 나이가 걸렸다. 시나리오 상으로는 30대 후반쯤이 돼야 한다. 그래도 송강호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다. 예상했던 대로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거절하는 답신이 왔다. 그런데 송강호로부터 다른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지난 해 부산영화제를 할 때 연락이 왔는데 자꾸 시나리오가 어른거린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출연 제의를 받겠다는 것은 아니었고 일단 감독이 어떤 친구인지 한번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올라간 양우석을 급히 불러 내려 술자리를 한번 같이 가졌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또 안되나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송강호로부터 문자가 왔다. 진심으로 연기하겠다고 써있었다. 그때 송강호는 <관상> 촬영을 가는 중이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어리석은 질문이겠지만 이 <변호인>의 성공은 송강호의 힘인가, 아니면 시대의 힘인가?
“둘 다이다. 아니다. 성공의 요소는 두 개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송강호란 배우가 이 영화에 힘을 실어준 것, 프로덕션 내내 다른 후배 배우들과 공들여 장면들을 찍어 나간 것 등등 그의 힘이 막강했다. 그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 모든 스탭들이 진심을 다해 힘을 합한 작품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모두의 에너지가 하나가 됐던 작품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지금의 시대를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관객들도 그렇고. 내가 제일 우려했던 대구 시사회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이 영화를 만들어 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바로 그 관객의 마음이 지금의 흥행성공을 이끌었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반 정부적이고 좌파적인 영화라고 비판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소재만 보고서 영화를 이념적으로 이쪽 저쪽하고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건 좌파 영화가 아니다. 노무현을 미화하지도 않았다. 영장없이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했던 1980년대의 상황, 상식이 버려졌던 시대에 대한 얘기이다. 그때를 생각하며 지금을 한 번 되돌아 보자는 얘기다. 나는 정치인 노무현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인간 노무현을 그리고 싶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그게 흥행의 제1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휴머니즘보다 정치가 전면에 나서있는 상황이었다면 영화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노무현을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그를 기본적으로 존경한다.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그게 나의 정치적 소신이라면 소신이다. 솔직히 난 그가 대통령일 때의 집무 방식, 정치철학 등에는 반대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사람을 바라보던 시선만큼은 참 좋았다. 그걸 그리고 싶었다. 만약 그런 노무현이 상대 정당에 있었다면 난 그 정당을 지지했을 정도다.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마음이 따뜻했던 한 사람에 대한 얘기다. 영화를 노무현만의 얘기로 해석할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참 바보 같은 짓이다. 나는 그 논쟁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

-관객 수가 국내 기록을 또 한번 경신할 것이라고 보는가?
“언제부턴가 이 영화와 관한 한 최다 관객 수 돌파 등등의 얘기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은 영화다. 우리 사회가 한편으론 힘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성숙한 모습을 갖춰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된다. 더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영화평론가 오동진 ohd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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