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여구없이’·‘바람직한 청소년’이란?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한국공연예술센터(한팩)는 2014년 아르코예술극장 첫 연극으로 2인극 <미사여구없이>(허진원 작가, 민새롬 연출)를 선보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 공연했던 <택배왔어요>(이미경 작, 장우재 연출) 역시 수정 보완을 거쳐 올해 공연할 예정이다. ‘신진 작가 지원 프로젝트’(봄 작가 겨울무대)에서 ‘연극개발파트너’로 변모를 꾀해 작가, 연출팀과의 공동제작방식으로 현장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넓히고자 한 것.

CJ문화재단은 신인 연극인들의 공연 제작을 지원하는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연극 부문'에 '바람직한 청소년'(작 이오진·연출 문삼화), '소년B가 사는 집'(작 이보람·연출 김수희), '아폴로 프로젝트'(작 김상호·연출 이래은) 등 3편을 선정했다.

연극 <미사여구없이>와 <바람직한 청소년> 모두 신인 극작가들의 신선함과 대한민국 연극의 젊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또한 로맨틱 코미디 연극과 청소년 연극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했다.

■ 낯선 우주에서 경험한 로맨틱 코미디 연극 <미사여구없이>

<미사여구없이> 허진원 작가는 “관객들이 어쩌면 동의할 수 없고, 불편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작품 관람이 계기가 되어 향후 어느 순간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입체적인 시각을 갖기를 바란다. 이것이 연극이 가진 고유의 매력”이라고 밝혔다.

처음 연극을 보고 나선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뭔가 모호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낯선 우주에서 경험한 로맨틱 코미디 연극’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신기한 건 연극을 보고 나서 시간 차이를 두고 천천히 안개가 걷히면서 빙그레 웃음을 짓게 됐다는 점이다.

연극 <미사여구없이>는 20대에 만나 사랑하다 헤어진 후 10년 후 다시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은 십 년을 두고 만나게 된 소설가 동구(김태현)와 기자 서현(신정원), 이렇게 두 남녀의 스산하고 고독한 내면적 상황을 때론 하루키 소설처럼, 때론 영화처럼 결국은 연극처럼 불러냈다.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활화산처럼, 아니 고장난 라디오처럼 온갖 미사여구를 총 동원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던 남자와 휴화산 같이 가끔 감정을 표출하던 여자의 180도 달라진 10년 뒤 모습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행성인 남자와 여자, 그들이 상대의 몸을 탐하고 마음을 공유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10년이었을까. 마치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온 듯한 동구와 서현의 대화는 블랙홀에 빠져들듯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든다.

‘대사의 향연’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동구의 서재와 침대 안에서 대부분의 일이 벌어진다. 그들의 대화 속엔 ‘사랑과 욕망’의 온갖 빛깔 무지개가 감춰져있다. 뜨겁고 서늘하고 시원한 다양한 사랑의 촉감도 느낄 수 있다. 어지러울 정도로 아찔한 대사의 향연이 끝나면 다시 고요한 남녀의 내면을 만나게 된다. 민새롬 연출의 담백하고 음울한 서정이 극대화된 무대 연출도 작품과 조화를 이뤘다. 오태훈 무대디자이너, 정혜수 사운드디자이너, 김성하 영상감독 등 극단 청년단의 스태프가 총출동해 보고 듣는 재미가 있는 연극을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연극 <미사여구없이>는 미사여구 없이 한 마디로 ‘알 수 없는 사랑에 지친 이들을 위로 해주는 연극’이다.



■ <바람직한 청소년>의 바람직하지 못한 외침에 박수를!

<바람직한 청소년>은 동성친구와 키스한 사진이 학교 게시판에 붙은 사건으로 징계를 받게 된 전교 1등 모범생 이레(민재원)와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나 퇴학당하기 일보 직전인 일진 현신(이현균)이 한 달 간 반성실에 갇혀서 일어난 이야기를 그린다. 사진을 유포한 범인을 찾아과는 과정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청소년과 어른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비춘다.

작품의 주인공은 불량학생 현신 종철 기태, 왕따 피해자 봉수, 게이 고등학생 이레와 지훈, 유부남을 사랑하는 양호선생, 바람직한 학생들의 선도를 책임진다고 하지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학생주임과 교장 등 모두 문제적 인간이다. 그나마 가장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 있었던 모범생 ‘이레’마저 호모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상태.

작품의 한 축은 문제적 청소년으로 인식되는 주인공들의 성장통을 담았다. 동성애 증오범죄 및 사이버 괴롭힘을 둘러 싼 논쟁의 핵심이 된 미국의 ‘타일러 클레멘티 자살 사건’을 모티브 삼은 것에서 알 수 있듯 동성애에 대한 논쟁과 왕따 문제 역시 열린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다른 한 축은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믿고 있는 ‘바람직한 잣대’에 대한 날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실 ‘좋은 잣대’ 보다 더 강압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바람직한 잣대’는 그 기준에 들지 못하는 모든 일들을 하지 말아야 할 일들로 치부하게 된다. 이보다 무서운 잣대가 어디있나.



무대 중앙은 반성실이다. 이 곳에서 양 옆 혹은 위 아래로 인물들이 폴짝 뛰어오르면 과학실, 교장실, 양호실, 청소실 등으로 변한다. 마치 모두가 반성해야 할 공간이라도 되는 듯 각자의 공간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사건 사고가 펼쳐진다. 문삼화 연출은 각 공간을 부직포 문으로 닫아놓고 하나하나씩 뜯어내며 무대화시켜 보여줬다. 공간 전환 측면에서 연극적 재미가 있기도 했지만, 모두가 한꺼풀 만 벗겨보면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가슴에 쌓아놓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작가와 연출은 ‘미래를 선도해 갈 바람직한 청소년’이 아닌, ‘미래를 선도해 갈 자랑스런 하필인 육성’이란 슬로건을 내세워 재기발랄한 생각의 전환은 물론 ‘학교’라는 울타리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체감하게 했다. 반성 역시 ‘바람직하게’ 해야 나갈 수 있었던 반성실, 그리고 학교, 이후 나가게 될 사회에서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연극은 그 어떤 해답도 주지 않고 막을 내린다.

이들은 모두 숨막히는 바람직한 학생, 바람직한 어른, 바람직한 아빠, 바람직한 회사인으로 살아가도록 종용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하고픈 말은 뭐였을까’. 연극은 그 지점을 건드렸고, 거기에 동감한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배우 이현균 민재원 한규원 한상훈 나하연 오민석 구도균 모두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이오진 작가는 “연극 <바람직한 청소년>은 2010년 뉴욕 허드슨 강의 조지 워싱턴 다리에서 생을 마감한 타일러와 2013년 오늘날의 한국, 그리고 또 어딘가에 있는 모든 타일러에게 바치는 일곱빛깔의 꽃 한송이이다”고 전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한국공연예술센터,CJ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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